[OSEN=이상학 객원기자] 농구는 높이의 스포츠다. 기본적으로 높이가 높을수록 경기를 하기 유리하다. ‘백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는 오래된 농구 격언은 여전이 유효하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높이만큼이나 스피드가 점점 더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전주 KCC와 대구 오리온스는 이상민과 김승현의 전성기 때 스피드 농구의 진수를 보여주며 성적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전력이 있다. 올 시즌에는 안양 KT&G가 스피드 농구로 성적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태세다. ▲ KT&G, 왜 빨라야 하나 풀타임 첫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유도훈 감독은 시즌 전부터 “빠른 팀으로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주희정이라는 최고의 속공 전개 능력을 지닌 포인트가드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빠른 스피드 농구를 펼치는 것은 KT&G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주희정이 합류한 이후 지난 2시즌 동안 KT&G는 속공에서 1위와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스피드 농구만이 유일한 답안이기 때문이다. KT&G는 오프시즌에 간판슈터로 활약한 양희승을 FA 재계약 직후 트레이드를 통해 부산 KTF로 보냈다. 팀에는 양날의 검이었지만 득점력 하나만큼은 폭발적이었던 단테 존스도 외국인선수 제도 변화에 따라 안양과 작별을 고했다. 확실한 득점 루트가 2명이나 빠지면서 공격력 약화가 불가피했다. 결국 주희정을 중심으로 한 스피드 농구로 세트오펜스에서 확실한 공격 옵션 부재를 해결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은 분명 주목해야 할 대목이었다. 유 감독은 대전 현대(현 KCC)에서 선수생활 말년 속공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이상민의 백업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속공을 앞세운 스피드 농구의 위력을 직접 실감한 것이다. 코치로 변신한 뒤에도 신선우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스피드 농구를 채득했다. 결국 양희승을 보내는 대신 황진원과 옥범준을 영입하며 스피드 농구의 진용을 갖췄다. ▲ KT&G, 얼마나 빠른가 KT&G는 1라운드를 5승4패로 마쳤다. 개막 2연패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마지막 3경기 3연승으로 5할 승률을 넘긴 채 1라운드를 마감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유도훈 감독이 선언한 스피드 농구가 실현됐다. KT&G는 1라운드 9경기에서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경기당 평균 5.78개의 속공을 성공시켰다. 매경기 최소 4개 이상의 속공을 성공시킬 정도로 편차가 적었다. 그만큼 꾸준하게 팀 스피드를 살렸다는 증거. 게다가 속공허용도 평균 1.89개로 최소를 기록하고 있다. 공수전환이 최고로 빠른 팀도 KT&G인 것이다. KT&G 스피드 농구의 중심에는 역시 주희정이 있다. 속공전개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희정은 수비 리바운드 이후 쭉 밀고 나가는 단독 속공이 일품. 속공을 펼쳐 단독 레이업으로 마무리하는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비단 단독 속공뿐만 아니라 속공 때 뒤따라오는 동료들에게 내주는 어시스트 능력도 뛰어나다. 속공 마무리 능력이 남다른 황진원과 은희석이 주희정의 백코트 파트너로 팀 스피드를 더하고 있다. 양희종-김일두 등 포워드들은 물론 외국인선수 마퀸 챈들러와 T.J 커밍스도 속공 가담이 좋다. 단독 속공은 물론 전원 속공이 가능할 정도로 KT&G는 공격 템포가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실점이 77.7점으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적다. 끈끈한 수비조직력으로 상대 창끝을 무디게 만들고 수비 성공을 바탕으로 재빨리 속공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공격적인 수비’. 평균 26.3점으로 득점랭킹 전체 2위에 랭크돼 있는 챈들러를 제외하면 확실한 득점 옵션이 없으며 챈들러 또한 정지된 상태에서 팀 동료들과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KT&G에게는 스피드만이 정답이다. 기대대로 KT&G는 10개 구단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고 있으며 가속도가 붙으면서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최근 3연승 기간 동안에도 속공을 21개나 성공시킨 대신 속공을 7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역시 스피드가 붙을수록 KT&G에게도 상승세가 붙는 것이다. 주희정(왼쪽)이 빠른 드리블로 공격을 전개하는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