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야구' SK, 코나미컵 '진정한 승자'
OSEN 기자
발행 2007.11.12 09: 58

[OSEN=이상학 객원기자] 9회말. 주니치 ‘철벽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가 SK 이재원을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27번째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주니치 드래건스 선수들은 마운드로 한데 모여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 11일 도쿄돔에서 열린 주니치와 SK의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결승전의 마지막 풍경이다. 주니치는 재팬시리즈 우승 때만큼이나 선수들이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너스 게임’으로 여겼던 코나미컵이었지만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주니치 선수들에게 보너스 게임은 어느덧 국가대항전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SK는 강했다. 6-5 스코어대로 딱 1점이 부족했지만 내일 경기가 또 있으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 고급야구 이런 야구가 있으면 저런 야구가 있는 법이다. 지키는 야구가 있으면 치는 야구도 있다.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야구에도 굳이 정석은 없었다. 하지만 야구에도 분명 ‘급’은 있다. 어떤 야구를 하든 기본이 탄탄할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의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야구는 실수를 얼마나 줄이고 상대의 급소를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우승팀끼리 대결에서는 더욱 그렇다. SK 김성근 감독은 비록 아쉽게 준우승했지만 “힘에서 졌다는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코나미컵에서 SK는 고급야구를 했다. SK의 고급야구란 실수를 줄이고 상대 급소를 공략하는 야구의 기본이 발달한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SK는 4경기에서 38안타로 37득점했다. 안타 10개를 치고도 1점을 뽑지 못해 패하는 것이 야구다. 하지만 SK는 매우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경기를 했다. 4경기에서 상대 실책 7개를 유도한 것이 컸다. 대만 우승팀 퉁이 라이온스와 중국을 상대로 한 2경기에서 실책이 하나밖에 없었던 주니치가 SK와 대결한 2경기에서 3개의 실책을 저지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주니치의 실책 남발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닌 SK표 발야구 노력의 산물이었다. 예선 첫 경기에서 4회초 주니치는 1루수 아라이 료타가 포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실책을 저질렀다. 2루수 아라키 마사히로의 송구도 부정확했지만 그만큼 이진영이 열성적으로 달렸다. 그 사이 2루 주자 김재현은 홈으로 내달려 선취득점을 올렸다. 6회초에는 3루수 모리노 마사히코가 조동화의 평범한 땅볼을 더듬으며 실책을 기록했다. 까다로운 타구였지만, 조동화의 빠른 발을 의식한 감이 없지 않았다. 조동화는 김재현의 2루타 때 홈을 밟았다. 결승전에서도 SK는 1회말 정근우가 2루 도루를 성공한 후 송구 실책을 틈타 3루까지 내달렸다. 정근우도 이진영의 우전 적시타 때 무난하게 선취 득점했다. SK는 상대가 실책을 범할 때마다 꼭 득점으로 연결짓는 집요함을 보였다. 반면 SK는 4경기 32이닝 동안 실책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결승전 7회초에 나온 투수 송은범의 2루 악송구였다. 엄밀히 따지면 수비수들의 실책은 전무했다. 오히려 7회초 1사 1·3루에서 모리노의 우익수 뜬공 때 이진영이 홈 노바운드 송구로 태그업했던 3루 주자 후지이 아쓰시를 되돌아가게 하는 위력을 보였다. 한 베이스 더 전진하고 한 베이스 더 저지하는 야구의 기본을 SK는 그대로 실천했다. ▲ 진정한 승자 결승전에서 8회말 인상적인 동점 투런 홈런을 작렬시킨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이번 코나미컵에서 다시 한 번 국제용 선수임을 입증해냈다. 이진영은 비록 결승전에서 패했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국제대회에서 일본과 많은 경기를 했는데 한국 프로야구가 일본과 대등한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에서 등판한 주니치 선발투수 정도는 한국에도 있다. 거의 대등하다”는 게 이진영의 말이다. 평소 남다른 입담으로 유명한 이진영이지만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예선 첫 경기에서 SK를 상대로 선발등판한 주니치 나카타 켄이치는 올 시즌 14승8패 방어율 3.59를 기록한 정상급 투수였다. 그러나 SK를 상대로 6이닝 4피안타 3볼넷으로 3실점했다. 자책점은 1점뿐이었지만 수비수들의 실책을 유도한 것도 다름 아닌 SK 타자들이었다. 니혼햄과의 재팬시리즈 5차전 8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뜬 야마이 다이스케도 결승전에서 7이닝 동안 3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홈런 하나 포함해 5피안타 3볼넷으로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일본의 대표적인 셋업맨 중 하나인 오카모토 신야도 이진영에게 비거리 135m 대형 홈런을 맞고 고개를 숙였다. SK가 넘지 못한 산은 ‘철벽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뿐이었다. 비단 타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마운드도 전혀 처지지 않았다. 1차전에서 6⅔이닝 3피안타 3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일본 열도를 완전하게 잠재운 ‘큰 투수’ 김광현의 위력은 가히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주니치를 상대로 2경기에서 7타자를 퍼펙트로 처리한 ‘백전노장’ 가득염은 기름이 아니라 찬물을 도쿄돔에 가득부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박경완이라는 당대 최고 포수의 현란한 볼 배합과 투수리드가 있었다. 1991년 첫 한일 슈퍼게임에서 일본야구가 자랑하는 명포수 후루타 아쓰야의 지능적인 인사이드워크에 수준 차이를 절감한 한국야구였지만 16년 만에 후루타 못지않은 포수를 내세워 코나미컵에서 일본을 맞아 수준 높은 고급야구를 펼쳤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집중력이다. 예선에서는 주니치에 6-3으로 완승했고, 결승전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8회말 동점을 만드는 등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주니치를 괴롭혔다. 스스로 제 풀에서 무너질 법도 했으나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의 집중력과 저력을 발휘했다. 어느 한 선수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SK표 전원야구에 주니치도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다. 코니미컵 전까지만 하더라도 “승패는 운에 달려있다”며 대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주니치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조차 ‘쑥스러운 우승’ 후 “역시 이기는 것은 어렵다”고 소회를 밝힌 것도 결국 SK 야구의 힘이었다. 비록 결과는 준우승이었지만, 과정은 SK의 우승이나 진배없었다. 감히 SK를 2007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의 진정한 승자로 경배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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