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맨발의 힘'이 그립다
OSEN 기자
발행 2007.11.14 10: 31

새벽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등교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1998년 IMF로 나락에 빠졌던 사람들은 미국에서 날아온 한 골프 선수 활약 소식에 텔레비전에서 눈을 못 뗀다. '동양인 최초란다'. US 오픈 우승이 확정되면 '최연소 우승이란다'. 박세리가 우승하면 우승 상금이 내게 오는 것도 아닌데 등교길을 멈추고 텔레비전을 통해 그녀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다. 골프를 잘 모르고 경기를 마냥 지켜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리라. 관중이 많았다. 소위 LPGA 4대 메이저 대회 중에 한 대회라서 그렇다는 캐스터의 친절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또한 연장전 18홀에서 맞붙은 상대가 태국계 이민 2세대 제니 추아시리폰이었다. 국적은 미국이었기에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었다. 동률 상황에서 마지막 18번홀이 시작됐다.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18번홀'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서 경기가 끝날 수 있는지는 다 알고 있었다. 상대 선수의 드라이버샷이 안정되게 안착됐다. 이제 박세리 차례. 날아간 공은 언덕쪽으로 떨어졌다. 데굴데굴 구른 공은 가까스로 연못 앞에서 걸렸다. 박세리가 불리한 상황임을 전국민은 직감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다시 양말까지 벗었다. 그녀의 하얀 발이 드러났다. 너무나 대조적인 그녀의 거므스름한 종아리 색깔은 기나긴 연습의 시간과 고생을 대변했다. 침착했다. 지켜보는 사람들보다 더 침착하게 그녀는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샷을 했다. 'IMF'라는 경제위기 때문에 시름에 빠진 국민들을 건져내듯 공을 쳐냈다. 18홀을 힘겹게 동타로 마감한 박세리는 '서든데스' 방식으로 치러지는 플레이오프에 들어갔다. 대결을 펼치고 있는 추아시리폰이 아마추어 선수이지만 실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첫 번째 홀도 동타로 마친 두 선수는 두 번째 홀로 들어갔다. 홀컵과 비슷한 거리에서 버디샷을 시도한 두 선수. 상대는 실수를 범했지만 박세리는 '맨발의 힘'을 되새기며 공을 홀컵에 넣었다. 기나긴 승부의 끝이 마무리 되었을 때 아버지 박준철 씨는 박세리를 번쩍 안아 치켜 들었다.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준철 씨가 경기 후 뛰어들어간 행동이 골프 예의 범절에 어긋났다는 외신의 질투어린 '꼬집기'도 그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박세리는 지난 13일 미국 플로리다주 오거스틴의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총 24승을 따내 명예의 전당 입회자격을 갖춘 뒤 꼭 3년 만이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외신 사진을 볼 때면 1998년 US 여자오픈 우승 당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크게 소리질러 보고 손을 번쩍 들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웃음 가득 머금고 집을 나설 수 있게 했던 박세리의 '맨발의 힘'이 그립다. 7rhdwn@osen.co.kr 박세리가 지난 7월 20일 LPGA HSBC 월드 매치 챔피언십서 벙커샷을 날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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