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 하루 만에 스티브 매클라렌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과 운명이 뒤바뀌어 버린 거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이다. 맡은 팀마다 최고의 성적으로 이끌어 승승장구했던 히딩크 감독이지만 이제는 '운'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묘한 처지에 놓여있다. 오는 22일(이하 한국시간) 펼쳐질 2008 유럽선수권 예선 조별리그 최종전. 러시아는 안도라를 꺾더라도 런던 뉴 웸블리 구장서 열릴 잉글랜드-크로아티아전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자력 진출은 불가능한 상황. 잉글랜드에 승점 2점이 뒤진 채 예선 3위를 달리고 있는 히딩크 감독으로선 크로아티아가 원정에서 잉글랜드를 꺾어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사실 크로아티아와 히딩크 감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 98 프랑스월드컵 당시 조국 네덜란드를 이끈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과 준결승에서 승부차기로 패한 뒤 이어진 3, 4위전에서 크로아티아에 1-2로 져 4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2001년에는 크로아티아와 2차례 친선 경기에서 1승 1무를 올려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오세아니아 호주로 옮긴 2006 독일월드컵에선 예선에서 만나 2-2로 비겼다. 이쯤 해도 될 텐데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크로아티아와 유럽선수권 예선에서 나란히 같은 조에 편성됐고, 2번 모두 득점없이 무승부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적의 입장에서 크로아티아와 직접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응원하는 처지가 됐다. 정말 얄궂다. 크로아티아가 잉글랜드를 꼭 꺾어야만 러시아가 구사일생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가 구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던 시기부터 시작된 히딩크와의 관계. 이번에는 어떤 결말이 찾아올까. 오는 22일 오전이면 모든 게 가려진다. yoshike3@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