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역시 중심이 바로 잡혀야 하는 모양이다. 전주 KCC가 최근 5경기에서 4승1패를 거두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시즌 13경기에서 7승6패를 마크, 5할 승률에서도 조금씩 벗어날 조짐이다. 그 중심에 ‘국보급 센터’ 서장훈(33·207cm)이 있다. 서장훈은 최근 5경기에서 평균 20.2점·7.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서울 삼성에서 KCC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맞이한 이적 첫 시즌, 극도의 부담감에 짓눌리며 극도의 부진을 보인 서장훈이었지만 이제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한층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다. ▲ 컨디션을 회복하다 출발부터 좋지 못했다. 지난 10월 19일 원주 동부와의 시즌 개막전에서부터 철저하게 짓눌린 기색이 역력했다. 한산한 느낌마저 들었던 잠실체육관이 아닌 시끌벅적한 전주체육관을 홈으로 쓰는 것부터 어색했다. 좀처럼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서장훈은 김주성의 동부에 완벽하게 눌렸다. 이날 서장훈은 21분8초 동안 단 2점에 그쳤다. 다음 경기인 안양 KT&G전에서 18점·7어시스트로 활약하며 KCC의 시즌 첫 승을 이끈 서장훈이었지만 여전히 부담감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처음 농구공을 잡고 경기에 나섰을 때보다 더 부담이 됐다. 주위의 격려도 상당한 부담이 됐다”는 것이 서장훈의 말이었다. 서장훈이 부진하자 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초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된 KCC는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질 때는 무기력하게 지고, 이길 때도 좀처럼 찜찜한 기운을 떨쳐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장훈이라는 빅맨과 함께 임재현이라는 포인트가드까지 새로 가세하는 등 지난 시즌과 비교할 때 주전이 추승균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서장훈으로서도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도 빅맨이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팀플레이에 포커스를 맞추며 손발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부담을 벗으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터닝포인트는 지난 10일 대구 오리온스전이었다. 오리온스는 외국인 센터 로버트 브래넌이 허리 부상으로 빠지며 외국인선수가 한 명 빠진 채 경기를 임해야 했고 KCC는 이를 집중공략했다. 서장훈은 이날 경기에서 1쿼터에만 13점을 몰아넣는 등 이적 후 최다인 25점을 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찾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골밑에서는 이동준과 주태수를 농락했고 외곽에서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3점슛을 터뜨렸다. 지지부진하던 내외곽의 밸런스가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 포함 5경기에서 서장훈은 20점대 득점력을 회복했다. 움직임이 겹치는 부분이 없지 않았던 추승균과도 역할이 분리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개인기록에서도 시즌 초반 8경기와 컨디션과 자신감을 회복한 최근 5경기가 확연하게 차이를 보였다. 시즌 초반 8경기에서 서장훈은 평균 10.5점·5.1리바운드·야투성공률 39.2%에 그쳤다. 자유투도 경기당 평균 3.4개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5경기에서는 평균 20.2점·7.6리바운드·야투성공률 53.2%에다 자유투도 경기당 평균 5.2개를 얻어내며 위력을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초반 8경기에서 18개를 던져 2개밖에 넣지 못하며 11.1%라는 극악의 성공률을 보인 3점슛도 최근 5경기에서는 20개를 시도해 11개를 성공, 3점슛 성공률 55.0%를 자랑하고 있다. 컨디션과 자신감을 완전하게 회복한 서장훈은 역시 상대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 내외곽을 유연하게 이제 서장훈에게 ‘국보급 센터’라는 호칭은 조금 어색해졌다. 지난 시즌까지 공식 포지션이 센터였지만 올 시즌부터 공식 포지션도 포워드로 변경됐다. 여전히 국내 최장신(207cm)이지만 최근 몇 년간 골밑에서의 움직임은 전성기와 비교할 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장훈에게는 웬만한 슈터들을 뺨치는 슛 감각이 있다. 전성기 골밑에서 활약할 때에도 서장훈은 중거리슛으로 상대 수비를 밖으로 끌어내고 그 빈공간을 나머지 팀원들이 효과적으로 공략한 바 있다. 비록 예전처럼 골밑을 활보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서장훈은 2~3쿼터에서 만큼은 골밑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 올 시즌 서장훈은 2~3쿼터에 평균 8.6점을 올리고 있다. 전체 득점의 60.5%에 해당하는 수치다. 컨디션을 회복한 최근 5경기에서는 평균 12.0점을 2~3쿼터에 몰아넣고 있다. 전체 득점에 59.4%였다. 득점력이 늘어나면서 2~3쿼터 파괴력도 더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5경기에서 이동준·주태수(이상 오리온스), 김일두·이현호(이상 KT&G), 한정원(전자랜드), 송창무(LG) 등 젊은 토종 빅맨들이 견제했지만 여전히 서장훈은 서장훈이었다. 한 수 위의 기술과 노련미로 2~3쿼터를 장악한 것이다. 함지훈(모비스)만이 거의 유일하게 서장훈을 견제한 토종 빅맨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서장훈은 외곽에서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서장훈이 외곽에서 움직이며 팀원들의 위치를 지정해주는 것은 이제 익숙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신장에 비해 포스트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추승균과 1대1 상황에 능한 제이슨 로빈슨의 개인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장훈이 유연하게 골밑과 외곽을 오가는 것이 KCC에는 정답이다. “이제 나이가 조금 들었기 때문에 젊었을 때 같지는 않다”는 서장훈 본인의 말대로 분명 전성기 기량이 아닌 서장훈에게 외곽 움직임은 하나의 생존 돌파구가 됐다. KCC 허재 감독은 “서장훈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덧 베테랑이 됐지만 여전히 토종 빅맨들을 상대로는 골밑에서 경쟁력을 갖춘 서장훈이며 이제는 상황에 따라 내외곽을 유연하게 오갈 수 있기 때문에 팀 전술에도 다양화를 꾀할 수 있는 다목적 카드가 됐다. 최근 5경기 4승1패라는 호성적에서 나타나듯 서장훈이 바짝 힘을 내면 KCC도 우승후보다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입증되고 있다. 서장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런 것이 경기에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며 “팀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에 농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연습을 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적 후 첫 시즌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체중도 빠진 서장훈이지만 여전히 승부욕과 책임감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는 서장훈의 말이 어느 때보다 믿음이 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