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은퇴' 주형광, '형광등'처럼 빛난 에이스
OSEN 기자
발행 2007.11.23 08: 25

[OSEN=이상학 객원기자] 형광등(螢光燈)은 ‘반딧불 빛으로 된 등불’이란 뜻이다.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빛을 내는 특징을 따와 형광등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형광등은 전압이 높으면 흑화가 진행돼 수명이 짧아진다. 또 전압이 낮으면 점등 자체가 되지 않는다. 반딧불 형자는 아니지만 뜻이 비슷한 빛날 형(炯)자를 쓰는 롯데 투수 주형광(31)의 운명도 형광등과 같았다.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났지만 혹사라는 이름의 흑화와 함께 수명이 짧아져 이제는 점등조차 되지 않아졌다. 결국 지난 22일 수명이 다 된 형광등의 운명이 되어버린 주형광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최연소 사나이 지난해 ‘괴물’ 류현진(한화)의 등장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큰 신장에서 뿌리는 강속구, 위력적인 좌우 코너워크, 배짱 두둑한 자신감으로 단숨에 리그를 지배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19세6개월7일의 나이로 ‘200이닝-200탈삼진’을 기록했다. 종전 기록을 1년 가까이 앞당긴 최연소 기록이었다. 바로 전 경기에서도 류현진은 19세2개월29일의 나이로 최연소 200탈삼진 기록까지 깨뜨렸다. 공교롭게도 종전 기록의 보유자는 모두 주형광이었다. 그러나 그 류현진도 최연소 승리투수(18세1개월18일), 최연소 완투승(18세1개월18일), 최연소 완봉승(18세3개월), 최연소 세이브(18세1개월14일)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화려하고도 풋풋한 최연소 기록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주형광이다. 가히 ‘최연소의 사나이’라 할 만하다. 부산고 시절부터 주형광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학년 때부터 대통령배·화랑대기 우승과 함께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하며 에이스로 군림한 주형광은 3학년 때에는 봉황기 우승과 함께 또 다시 최우수 투수상을 차지했다. 이미 떡잎 시절부터 부산과 롯데 야구를 이끌어나갈 에이스였던 것이다. 1994년 입단 때 받은 계약금(9200만 원)은 당시 기준으로 고졸 신인 최고액이었다. 기대대로 주형광은 데뷔 2번째 경기였던 4월11일 사직 LG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최연소 세이브를 따냈고, 데뷔 3번째 등판이자 2번째 선발등판이었던 1994년 4월19일 대전 한화전에서 9이닝 2피안타 9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프로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경기는 최연소 승리투수·완투승·완봉승이 될 수 있었다. 1실점도 수비 실책에 따른 비자책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봉승을 거두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해 6월8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로 나와 9이닝 2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따낸 것이다. 데뷔 첫 해부터 28경기에서 11승5패1세이브 방어율 3.04를 기록하며 차세대 에이스의 면모를 발휘했다. 그해 롯데 팀 내 다승-방어율-탈삼진-승률 1위가 바로 주형광이었다. 4차례 완투 포함 투구이닝은 무려 186⅔이닝이었다. 고졸 신인투수가 데뷔 첫 해부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리그에서 7번째로 많은 투구이닝을 소화한 것이다. 이듬해에도 주형광은 30경기에서 5차례 완투를 포함 10승7패 방어율 3.05를 기록했다. 투구이닝은 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200⅓이닝이었다. 전성기와 추락 고졸 3년차가 된 1996년은 주형광에게 전성기였다. 30경기에서 무려 10차례 완투를 기록하는 등 18승7패1세이브 방어율 3.36을 기록했다. 리그 최다승과 함께 221탈삼진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주형광보다 더 많은 탈삼진을 잡아낸 투수는 ‘전설’ 최동원(1984년·223개) 뿐이었다. 게다가 투구이닝은 무려 216⅔이닝으로 전체 2위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투구이닝이 늘어났다. 주형광은 그해 MVP를 차지한 구대성(한화)과 함께 최고의 좌완으로 명성을 떨쳤다. 구대성이 무려 19차례나 구원등판으로 3이닝 이상을 소화한 슈퍼 마무리였다면 주형광은 무려 21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책임진 '슈퍼 선발'이었다. 마운드 분업화가 채 뿌리내리기 전이었던 그 시절 구대성과 주형광은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러나 당시 주형광은 만 20살이었으며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던지는 투수였다. 이듬해인 1997년 주형광은 32경기에서 6승13패3세이브 방어율 5.88로 부진했다. 투구이닝은 131⅔이닝으로 그제서야 하강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투구이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구잡이식 등판이었다. 그해 주형광은 군에서 의병제대하고 막 복귀한 상태였다. 하지만 32경기 중 20경기가 선발등판, 12경기가 구원등판이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주형광은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지만 2년 연속으로 180이닝 이상을 던졌다. 1998년 183⅓이닝으로 이 부문 전체 4위에 올랐고, 1999년에는 무려 190이닝을 소화하며 이 부문 3위에 올랐다. 다시 한 번 투구이닝이 상승곡선을 그린 것이다. 게다가 2년간 소화한 62경기 중에는 구원등판 9경기도 포함돼 있었다. 2000년은 주형광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26경기에 등판해 8승6패 방어율 3.49를 기록했다. 애석하게도 2000년은 롯데에게 마지막 가을잔치의 기억이며 그 끝자락에 바로 주형광이 있다. 그해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주형광은 3경기 모두 등판, 2⅔이닝을 던져 1승1패를 기록했다. 최종 3차전에서 주형광은 1-3으로 뒤진 7회초 신동주에게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 끝에 좌월 솔로 홈런을 맞으며 승부의 물줄기를 내주고 말았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주형광에는 마지막 가을잔치였고, 롯데에게도 마지막 가을잔치였다. 2000년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주형광은 급추락했고, 롯데도 가을잔치와 인연이 끊겼다. 주형광의 추락을 롯데의 추락과 연관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형광이 없었더라면 이 지긋지긋한 암흑기가 더 빨리 찾아왔을지도 모를 롯데에게 마지막 보루처럼 여긴 주형광의 추락은 몰락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소등된 형광등 팔꿈치 수술 이후 쳇바퀴 도는 재활훈련을 거친 주형광은 그러나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첫 7년간 77승을 거둔 주형광이었지만, 마지막 7년간 고작 10승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했다. 첫 7년간 무려 5시즌이나 180이닝 이상 던진 이닝이터였지만, 마지막 7년간 단 한 번도 80이닝조차 넘기지 못했다. 2004년 4승 방어율 3.41을 기록하며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그것이 마지막 불빛이었다. 결국 주형광은 그러 그런 중간계투 요원으로 전락했고, 좌타자 원포인트 릴리프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해야 했다. 프로 14년간 통산 성적은 386경기 1524⅓이닝 87승82패9세이브 방어율 3.83. 형광등이 백열등에 비해 효율이 좋고 빛이 부드럽듯 전성기 주형광의 피칭도 그랬다. 자로 잰 듯한 제구력으로 스트라이크존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스트라이크존 바같쪽으로 꽉 들어차는 직구와 슬라이더는 수많은 스탠딩 삼진을 유도했다. 게다가 바깥쪽 승부를 할 수 있는 모태가 된 몸쪽 승부도 대담했다. 주형광에게 150km 이상 강속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과 핀포인트 제구력만 뒷받침되면 그 어떤 타자도 두렵지 않았다. 마치 열을 거의 수반하지 않은 채 반짝반짝 빛을 내는 형광등과 같은 피칭이었다. 그러나 이제 형광등은 소등됐고 주형광의 피칭에도 불이 꺼졌다. 이제 겨우 31살. 스포츠의학이 발달하고 관리 시스템이 철저한 요즘 시대에 너무 이른 은퇴가 아닐 수 없다. 결과만 놓고 볼 때에는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결과라며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으나 용두사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도 손가락질을 할 수 없는 애증의 선수가 바로 주형광이다. 비록 현역선수로서 주형광의 피칭은 소등됐지만 야구인생은 계속된다. 롯데 구단의 일본 코치연수 제의를 수락한 주형광은 2008년 롯데 마린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을 계획이다. 주형광은 “14년간 프로선수로 뛰면서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후배 선수들이 더 나은 여건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많이 배워 지도자로서 좋은 모습 보이도록 노력하겠다”며 “지도자 생활을 하더라도 부산 팬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고 선수로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비록 이제 더 이상 마운드에서 그의 피칭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수명이 다 된 형광등이 불빛 아래 놓여있는 것처럼 주형광이라는 이름은 팬들의 뇌리에 은은하지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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