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정치판이 코미디보다 더 웃긴다”고. ‘코미디의 황제’가 실제 정치를 경험하고 난 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최근 정치판을 풍자하고 있는 코미디 한 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어쩌면 정치판보다 더 정치판 같은,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하는 이름으로 숱하게 반복됐던 모양새들이 TV 오락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을 웃기고 있다. 바로 SBS TV ‘라인업’(김재혁 김용권 연출)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의 대선’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주부터 2주 동안 모의 대통령 선거를 펼치고 있다. 김구라 김용만 신정환 이경규가 대선 후보로 나서 ‘거짓말처럼 모두가 불만 없는 세상(김구라)’ ‘호빵 같이 따뜻한 대한민국(김용만)’ ‘누구나 신나는 사회(신정환)’ ‘욱! 할일 없는 사회를 위해(이경규)’ 등의 기치를 내걸고 저마다 열띤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선 토론회를 거쳐 1차 탈락자로 신정환이 빠진 가운데 이번 주 방송분(12월 1일)에서는 명동 거리유세와 시민 투표가 이어진다. 거리유세는 실제 선거만큼 시끌벅적하게 치러졌다. 17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들이 탐낸다는 ‘텔미’ 송도 모의선거에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울려 퍼졌다. 이경규 후보의 선거송으로 개사돼 명동 거리를 흥겹게 했고 김용만 후보는 아이들 스타 슈퍼주니어를 참모진으로 구성해 열띤 선거전을 펼쳤다. 유세에 참여한 원더걸스는 ‘텔미’를 개사한 선거송과 춤, 특유의 애교 넘치는 표정 등으로 이경규 후보를 지원했다고 한다. 특히 소희는 이경규에게 ‘어머나’ 표정을 전수해 ‘욱하는’ 성격을 한결 부드럽게 했다는 소식도 있다. 특히 지난 주 방송된 토론회 장면은 ‘버럭 정치’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상대방을 비방하는 억지가 난무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으면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버럭 정치’가 액면 그대로 그려졌다. 참모들도 툭하면 벌떼같이 일어나 후보 감싸기에 나섰지만 정작 자신들의 공약을 피력하는 데는 얼렁뚱땅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은 이런 장면이 웃음을 던져준 이유가 씁쓸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모습들이기에, 우리가 보아 온 ‘정치란 게 결국 호통 개그였구나’는 생각을 짙게 만들었다. ‘모의 대선’을 기획한 ‘라인업’ 제작진은 “12월 19일 있을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이런 아이템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정 정당의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실제 정당의 고유색은 물론 혹시나 비슷한 공약이라도 있을까 봐 세심히 체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우리네 정치판이 요즘 인기 절정의 ‘호통 개그’와 왜 그리 비슷했는지에 대한 씁쓸함이다. 혹시 ‘호통 개그’에 앞서 ‘호통 정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100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