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그러나 올해 신분은 엄연히 마이너리거가 되어버린 박찬호(34).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힘을 발휘했다. 박찬호는 지난 1일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겸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선발 류현진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구원등판, 3이닝 4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대만전 5-2 승리의 결정적 디딤돌을 놓았다. 경기 후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1점차 승부에서 낼 투수로는 박찬호가 가장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다. 박찬호가 중요할 때 잘해줬다”고 칭찬했다. 사실 박찬호는 대만전 유력한 선발후보였다. 그러나 대표팀은 좌완 류현진을 내보내며 연막작전에 성공했다. 줄곧 선발로 뛰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온 박찬호로서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은 결정이었다. 또한, 2006년 막판 샌디에이고 시절을 빼면 중간계투로 활약한 경험도 거의 없었다. 물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마무리투수를 맡았지만 중간계투는 박찬호에게 매우 생소한 보직이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선발을 결정할 때부터 박찬호를 중간으로 결정했다”고 믿음을 보였다. 박찬호는 3-1로 앞선 6회말 무사 1루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다. 첫 타자는 3번 펑정민. 코칭스태프는 박찬호와 호흡이 잘맞는 조인성으로 포수를 교체하며 박찬호를 배려했다. 기대대로 박찬호는 펑정민을 3구 삼진으로 처리했다. 1구·2구를 바깥쪽 직구로 카운트를 잡는 이후 몸쪽 변화구로 스탠딩 삼진을 유도했다. 이어 4번 천진펑에게도 바깥쪽 직구만으로 승부, 역시 3구 삼진으로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박찬호의 직구에 힘이 밀린 천진펑은 1구·2구를 파울로 커트했지만 마지막 3구에는 방망이가 헛돌고 말았다. 박찬호는 5번 장타이산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허용하며 승계주자였던 1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바깥쪽 떨어지는 변화구를 툭 갖다 댄 것이 운 좋게 라인 안으로 들어온 타구였다. 이어 6번 가오궈칭을 3루 땅볼로 처리하며 더 이상의 실점을 허락하지 않은 박찬호는 계속된 7회말에도 2사 1루에서 1번 후진룽을 바깥쪽 직구로 스탠딩 삼진을 잡아냈다. 바깥쪽 코스로 꽉 차는 직구는 가히 언히터블에 가까웠다. 8회말에는 2사 이후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를 자초했지만 실점없이 위기를 넘기는 ‘박찬호다운’ 노련미를 과시했다. 이날 박찬호는 3이닝 동안 46구를 던졌다. 그 중 스트라이크는 32개로 전체 비율의 70.0%를 마크했으며,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도 69.2%(9/13)였다. 선발 류현진의 전체 스트라이크 비율(60.0%)과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50.0%)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로, 급박한 상황에서 올라온 셋업맨다운 공격적인 피칭으로 대만 타자들을 제압했다. 직구와 변화구 비율이 거의 5대5일 정도로 변화구 승부가 많았지만 직구가 줄곧 140km 중반대를 찍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불펜이 얇아진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박찬호는 일본전에서도 등판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로써 박찬호의 국제대회 방어율은 0.68로 내려갔다. 총 8경기에서 26⅔이닝을 던져 2승3세이브를 기록했다. 선발승과 세이브에 이어 공식기록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홀드까지.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 출신 박찬호는 국제대회에서만큼은 선발-중간-마무리로 다용도 활용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구대성 못지않은 진정한 국제용 투수라 할 만하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