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입단' 임창용의 족적과 도전
OSEN 기자
발행 2007.12.08 09: 38

[OSEN=이상학 객원기자] ‘애니콜’ 임창용(31)이 마침내 현해탄을 건넜다. 임창용은 지난 7일 3년간 최대 5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행을 확정, 입단식을 가졌다. 한국인 투수로는 역대 6번째로 일본무대 도전. 보장된 계약기간과 금액은 2년 및 80만 달러밖에 되지 않지만, 임창용은 안주보다 도전을 택했다. 해외 진출은 임창용의 오랜 꿈이었다. 임창용은 입단식에서 “한국에서는 오래 뛰었다. 일본의 마운드에서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창용이 한국에서 남긴 족적을 되돌아보고 일본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전망해본다. 최고의 마무리투수 임창용은 프로 13년간 통산 534경기에서 1455⅔이닝을 던져 104승66패168세이브 방어율 3.25를 기록했다. 통산 100승-100세이브는 선동렬·김용수·송진우 그리고 임창용까지 단 4명밖에 세우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외에도 역대 통산 출장경기수 10위, 통산 승수 15위, 통산 세이브 4위에 올라있다. 31살에 각종 누적기록에서 상위권에 랭크됐다는 것은 임창용이 얼마나 위력적인 투수였는가를 잘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물론 한국 프로야구에서 반짝 불태우고 장렬해버린 비운의 투수들이 많았지만 임창용은 팔꿈치 부상을 당하기 전인 2004년까지 근 10년간 특급투수였다. 지난 1995년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임창용은 그해 6월18일 대구 삼성전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중간계투로 나와 6이닝 동안 8피안타 6실점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6월23일 사직 롯데전에서 데뷔 처음으로 선발등판했지만,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아내지 못한 채 3실점하고 선발패했다. 데뷔 첫 해 14경기에서 2패 방어율 5.83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사이드암으로 150km 내외의 빠른 공을 던졌으나 써먹을 변화구가 없었고,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듬해 중간계투로 49경기에 등판해 7승7패 방어율 3.22를 기록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 입단 3년차가 된 1997년부터 임창용은 특급투수 반열에 올라섰다. 시즌 시작부터 선배 김정수를 제치고 당당히 주전 마무리투수로 발돋움했다. 그해 64경기에서 무려 135이닝을 소화하며 14승8패26세이브 방어율 2.33을 기록했다. 풀타임 마무리투수 2년차가 된 1998년에는 59경기에서 133⅔이닝을 던져 8승7패34세이브 방어율 1.89로 활약했다. 9이닝당 탈삼진이 무려 9.5개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구위를 뽐내며 생애 첫 구원왕을 차지했다. 삼성으로 이적한 1999년에는 무려 71경기에서 138⅔이닝을 던지며 13승4패38세이브 방어율 2.14를 기록했다. 극단적인 타고투저 시즌에서도 당당히 방어율왕에 올랐다. 그해 12차례나 구원등판으로 3이닝 이상 던질 정도로 연투능력이 좋았고, 타자를 윽박지르는 힘과 자신감이 대단했다. 특유의 뱀직구는 임창용에게 최고의 무기였다. 임창용은 2001년부터 선발투수로 변신했다. 2004년 다시 마무리투수로 복귀할 때까지 3년간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선발로 뛴 3년 동안 거둔 승수는 44승. 최고 17승(2002년), 최소 13승(2003년)을 올렸다. 그러나 2002년 17승에는 3구원승이 포함돼 있다. 전성기 임창용이 선발투수로 거둔 평균 승수는 13~14승이다. 특급이지만 초특급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실제로 3년간 선발등판시 방어율도 3.49로 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피안타율은 1할9푼이었지만 선발투수 전환 후 3년간 피안타율도 2할5푼1리로 상승했다. 그래도 이닝소화능력은 좋았다. 3년간 평균 선발등판 투구이닝은 6.09이닝이었다. 그러나 완투는 완봉승 2차례가 전부였다. 하지만 마무리투수로서 짧은 호흡으로 던질 수 있고 선발로도 긴 호흡으로 던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특급투수가 바로 임창용이었다. 예상치 못한 도전 임창용의 일본 진출은 의외라 할 만하다. 물론 임창용은 예부터 일본 진출에 남다른 의지를 표해온 것은 사실이다. 2004시즌 종료 후 일본 진출을 모색하다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마무리로 복귀한 2004년 당시 36세이브를 거두며 구원왕을 차지한 임창용이었지만 몸값 조율에 실패하며 국내에 눌러앉아야 했다. 하지만 2005년초 삼성과 2년간 18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FA 계약을 체결할 때 ‘해외 진출을 원하면 조건없이 풀어준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을 정도로 일본 진출에 미련이 남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임창용은 전성기가 지나고 몸값도 떨어졌지만, 도전정신으로 기어이 일본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임창용이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하향세를 보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해 팔꿈치 수술과 재활 후 온전하게 한 시즌을 치렀지만 예의 위력을 찾지 못했다. 올 시즌 40경기에 등판해 119⅓이닝을 던져 5승7패3홀드 방어율 4.90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특히 선발로 등판했을 때 부진했다. 21경기에 선발등판했지만 4승7패 방어율 5.50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무려 10차례나 5회 이전 조기강판되는 등 선발등판 평균 투구이닝은 4.39이닝에 불과했다. 피안타율도 3할1푼6리였고, 이닝당 출루허용률도 1.61이었다. 물론 선동렬 감독 특유의 선발투수 퀵-후크는 임창용에게 전혀 득이 되지 못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불펜이 가동되는 경우도 있었다. 베테랑 임창용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임창용은 불펜에서는 좋은 투구내용을 보였다. 올 시즌 구원등판한 19경기에서 1승3홀드 방어율 2.93으로 활약했다. 구원등판시 피안타율이 2할3푼으로 뚝 떨어졌고, 이닝당 출루허용률도 1.23으로 낮아졌다. 최정상급 마무리투수로 수년간 활약한 경험이 있는 만큼 짧은 이닝 동안 구위를 극대화해 던지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임창용은 평균 직구 구속은 사이드암임에도 여전히 시속 140km를 상회할 정도로 빠르다. 물론 ‘뱀직구’라 불릴 정도로 다이내믹한 볼 무브먼트는 회복하지 못했지만 옆구리 투수로서 빠른 공을 던진다는 점은 틀림없다. 종종 무리한 정면승부로 화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직 힘으로 타자를 누를 수 있는 구위는 지녔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그 빠른 공을 효과적으로 던질 수 있느냐 여부였다. 투수진이 고갈된 야쿠르트는 아직 임창용의 보직을 확정짓지 못한 상황이다. 입단식에서 임창용은 “선발과 마무리, 어디서 던질지 모른다. (다카타 시게루) 감독의 지시에 따르겠다. 하지만 사이드암이기 때문에 마무리로 자신있다”고 밝혔다. 임창용 본인도 선발보다는 마무리가 적합하다고 어느 정도 판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어 “선발이라면 10승, 마무리라면 30세이브를 하고 싶다”며 “한국에서도 정면승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힘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유의 정면승부를 일본에서도 고집하겠다는 의지는 변함없었다. 이는 곧 그만큼 자신의 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년이면 팔꿈치 수술 후 2년째를 맞는 만큼 부상에 대한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떨어지는 변화구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물론 마무리투수로 뛴다면 단조로운 구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결정구로 쓸 변화구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그동안 임창용이 효과적으로 써먹은 변화구는 커브 정도밖에 없었다. 슬라이더도 거의 컷패스트볼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에서 도전하고 벽에 부딪치면 변화구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일본 진출은 그동안 정체된 임창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임창용의 일본 도전이 가장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 . .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