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이동준, '기대와 실망 그리고 적응'
OSEN 기자
발행 2007.12.11 09: 00

[OSEN=이상학 객원기자] 선수는 물을 주면 쑥쑥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대구 오리온스 이동준(27·198cm). 귀화 혼혈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 프로농구 무대에 발을 디딘 그에 대한 기대가 바로 물을 주면 쑥쑥 자라는 나무와 같았다. 잘생긴 외모와 넘치는 운동 능력은 이동준에 대한 기대치를 부풀렸다. 연세대 시절 아마추어 선수자격 문제로 단 2경기만 뛰지 못하며 국내 팬들에게 제대로 된 플레이조차 보여주지 않아 일종의 신비주의까지 이동준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그런 그가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인기구단 오리온스에 지명된 것도 팬들로 하여금 기대를 부풀리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 기대와 실망 올 초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동준은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인천 전자랜드에 지명됐다. 하지만 전자랜드의 지명권은 이미 오리온스가 트레이드를 통해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오리온스는 전희철의 이적 이후 스몰포워드 포지션에 대한 오랜 갈증이 있었다. 마침 드래프트에는 양희종이라는 국가대표 스몰포워드가 있었다. 양희종이 공격보다는 수비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오리온스의 부족한 부분을 더욱 잘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오리온스는 양희종 대신 이동준을 택했다. 검증되지 않은 귀화 혼혈선수를 지명한 것이다. 처음부터 큰 위험 부담을 안고 결정한 선택이었다. 드래프트 지명 후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동준은 곧장 제2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에서 눈에 확 띄는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날렵한 움직임과 저돌적인 플레이로 가능성을 엿보였다. 시범경기 2경기에서도 평균 22.0점·8.0리바운드로 순조롭게 프로무대에 적응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데뷔전이었던 울산 모비스와의 시즌 공식 개막전에서 같은 신인 함지훈에게 공수 양면에서 농락당하며 조금씩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함지훈이 18점·8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동안 이동준은 단 5점·3리바운드에 그쳤다. 좋지 않은 출발은 좋지 않은 미래를 예고했고 이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1라운드 9경기에서 이동준은 경기당 20.8분을 뛰며 평균 6.9점·4.0리바운드·1.00블록슛·야투성공률 42.4%를 기록했다. 프로 첫 시즌을 보내는 신인치곤 썩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지만 외국인선수 수준이 하향평준화된 점, 드래프트 2순위라는 점, 10순위 함지훈이 맹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실망스러운 성적표였다. 공격에서 어정쩡한 위치 선정으로 동료들과 동선이 겹치기 일쑤였고, 골밑에서 슛을 마무리 능력도 부족했으며 볼처리도 미숙했다. 스몰포워드로는 슈팅력이 떨어졌고 파워포워드로는 테크닉에서 밀렸다. 특히 함지훈·현주엽·서장훈 등 토종빅맨들과의 1대1 대결에서 매번 농락당해 실망감은 두 배가 됐다. ▲ 실망과 적응 하지만 이동준에게는 데뷔 첫 해부터 많은 악재가 겹쳤다는 것을 감안해야 했다. 팀 전체를 이끌어갈 포인트가드 김승현이 개막전 이후 허리부상으로 개점 휴업하자 이동준은 물론 오리온스 팀 전체가 선장을 잃고 목적지를 잃어버린 가라앉기 일보 직전 난파선이 되어버렸다. 한국식 농구에 대한 적응을 채 끝마치지 못한 이동준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었다. 물론 꾸준히 비교되고 있는 함지훈도 소속팀 모비스의 사정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지훈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농구한 선수였다. 이동준과는 성장 환경이 달랐다. 어딜 가도 어차피 농구는 같은 농구지만 엄연히 고유의 색깔과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김승현이라는 길잡이를 잃은 이동준에게 한국식 농구의 적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마치 네비게이션 없이 초행길을 찾아가는 운전자의 신세였다. 그러나 실망이라는 그림자가 이동준의 유니폼을 뒤덮은 순간부터 조금씩 적응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에 적응되면, 길눈이 어두워지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길눈이 좋아질 수 있다. 김승현이 빠지자 팀 전체가 방황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동준은 조금씩 한국농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인 센터 로버트 브래넌이 허리 부상으로 빠진 이후 이동준에게 출전시간이 대폭 늘어났고, 그에 맞춰 차차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2라운드 이후 10경기에서 경기당 29.6분을 뛰며 평균 13.1점·6.9리바운드·1.44블록슛·야투성공률 59.3%를 기록해 비약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서서히 시즌 전 이동준에게 기대한 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안양 KT&G전에서는 시즌 첫 더블-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상승세의 밑천이다. 이동준처럼 야생마 스타일의 선수들에게 자신감은 최고의 무기다. 1라운드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지만 2라운드부터 외국인센터난으로 출전시간을 보장받자 부담을 털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확실한 포인트가드가 없지만 스스로 볼을 갖고 적극으로 골밑 돌파를 하고, 공격 리바운드에 이은 풋백 득점을 올리며 진가를 보였다. 특히 질풍같은 속공 가담능력은 향후 김승현과의 조화를 기대케 만들었다. 오른쪽 어깨 위로 쌀 한 가마니를 얹은 듯한 슛 폼은 딱딱하지만, 최근에는 꽤 쏠쏠한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 자세가 높아 양 옆이 뚫리기도 하지만 높이를 앞세운 수비는 외국인선수들을 찍어누를 정도로 위력적이다. ▲ 적응과 미래 이동준의 평균 기록은 어느덧 두 자릿수 득점을 돌파했다. 평균 10.1점이다. 국내선수 중 전체 18위. 하지만 신인으로 한정하면 함지훈-정영삼-김태술 다음으로 많은 득점이다. 빅맨 중에서는 함지훈-김주성-서장훈 다음이다. 리바운드는 평균 5.6개로 당당히 국내선수 전체 5위에 올라있다. 블록슛도 평균 1.16개로 전체 8위. 덩크슛은 국내선수 중 가장 많은 11개를 작렬시켰다. 1라운드 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을 감안할 때 기록상으로나 체감상으로나 비교적 빠른 적응속도다. 김승현이 없고, 팀이 11연패라는 악몽같은 수렁에 빠져드는 가운데에서도 이동준은 성장하고 있었다. 선수는 나무가 아니지만 출전시간은 분명 나무를 자라게 하는 물이었다. 사실 이동준의 적응속도는 김효범(모비스)이나 한상웅(SK) 같은 재미교포 출신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지난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지명된 김효범은 프로 3년차가 된 올 시즌에야 제대로 된 ‘선수’ 구실을 해내고 있다. 같은 해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뽑힌 한상웅은 여전히 적응 과정이다. 자유분방하고 선수 중심의 미국식 농구와 끈질기고 조직적인 팀 중심의 한국식 농구에는 적잖은 괴리감이 있었다. 김효범과 한상웅의 경우에는 세밀함과 섬세함이 요구되는 가드라는 점에서 적응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과거 한국계 외국인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실패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포워드보다도 빅맨에 가까운 이동준은 팀이 확실하게 바로 잡히면 아무래도 적응이 빠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동준은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귀화 혼혈선수의 선두주자는 김민수(경희대)지만, 프로농구에서 첫 테이프를 끊은 선수는 다름 아닌 이동준이다. 현재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롤-모델은 더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 이동준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하드웨어와 운동능력 그리고 열정이 있다. 한국농구에 대한 깊은 이해도, 힘을 분배할 수 있는 완급조절, 부족한 테크닉을 보완해야하는 등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이동준에게는 분명한 동기가 부여돼 있다. 바로 어머니의 나라에서 귀화선수로 성공적인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출발은 좋지 못했으나 이동준은 지금 성공적으로 적응 중이다. 가까운 미래 이동준의 맹활약을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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