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선두 동부, '위기를 기회로'
OSEN 기자
발행 2007.12.12 07: 35

[OSEN=이상학 객원기자] 위기는 없다. 기회만 있을 뿐이다. 부동의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프로농구 ‘최강 군단’ 원주 동부가 8일간 5경기라는 살인 일정에서 비롯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으며 슬기롭게 극복할 조짐이다. 현재 나란히 공동 2위에 랭크돼 있는 안양 KT&G와 전주 KCC에게 지난 주말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시즌 첫 연패를 기록, 하락세 조짐을 보인 동부는 지난 11일 서울 삼성과의 원주 홈경기에서 82-74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고 분위기 쇄신에 성공했다. 특히 전창진 감독 특유의 '사석작전'이 먹혀들었다. 불가피한 승부수 어느덧 정식 감독으로 프로무대 지휘봉을 잡은 지 6시즌째가 되는 전창진 감독은 정규리그-플레이오프를 통틀어 프로농구 현역 사령탑 중 최고 승률(0.596)을 자랑한다. 승률에서 나타나듯 자타가 공인하는 승부사가 바로 전 감독이다. 특히 매시즌 고비 때마다 외국인선수 교체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2004-05시즌 전신 TG삼보 시절 아비 스토리를 영입하며 통합우승을 일궈낸 것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레지 오코사와 파트너를 이룰 외국인선수가 계속해 부상으로 바뀌었다. 일시 대체할 예정이었으나 완전히 대체된 더글라스 렌의 경우 8주 진단의 종아리 부상으로 퇴출시킬 수 밖에 없었다. 전 감독으로서는 불가피한 승부수였다. 렌은 퇴출되기 전까지 14경기에서 평균 10.3점·3.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기록 자체는 크게 돋보이지 않지만, 수비와 높이에서 동부에 보이지 않게 힘을 보탰다. 투박하지만 탄력 넘치는 플레이로 속공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분위기 전환용 덩크슛도 곧잘 터뜨렸다. 그러나 부상으로 렌의 퇴출이 불가피해자 동부는 어쩔 수 없이 카를로스 딕슨을 부랴부랴 영입했다. 힘과 높이를 갖춘 렌과 달리 딕슨은 높이가 낮지만 기교를 갖춘 스타일의 선수였다. 외국인선수의 재기 발랄함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 전창진 감독과 동부의 팀 컬러를 고려할 때 분명 좋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2연패를 당해 암운이 드리우는 듯했다. 하지만 전 감독은 삼성전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딕슨에게 적응의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국내무대 데뷔 6번째 경기였던 삼성전에서 딕슨은 데뷔 후 가장 많은 24분12초를 소화하며 18점·5어시스트로 활약했다. 역시 국내무대 개인 최다득점이자 어시스트였다. 전 감독은 경기 초반부터 딕슨에게 아이솔레이션을 지시하며 선수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딕슨 역시 삼성의 국내 선수들을 상대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공격을 펼침과 동시에 골밑의 김주성이나 오코사에게 적절한 어시스트를 찔러주며 공격의 윤기를 더했다. 올 시즌 접전에서 다소 약한 면모를 보인 동부였지만 표명일이 빠진 4쿼터에도 리드 점수를 지켜내며 승리했다. '사석작전'의 성공 경기 후 전창진 감독은 “경기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딕슨의 컨디션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딕슨은 앞으로도 끌고가야 될 선수이기 때문에 한 번 기회를 줘서 컨디션을 찾고 선수의 장점을 파악하기 위해 주문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2위권 그룹이 불과 2.0게임차로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전 감독은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여유를 가졌다. 어느덧 6번째 풀타임 정규시즌을 맞이하는 베테랑 감독다운 모습이었다. 전 감독은 과거 중요한 단기전에서도 이 같은 사석작전을 자주 쓰는 배짱을 과시한 바 있다. 2002-03시즌 챔피언 결정전 3차전 포기, 2004-05시즌 챔피언 결정전 4차전 포기가 대표적이었다. 물론 결과는 모두 우승이었다. 그런 전 감독에게 정규리그 한 경기에서의 사석작전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딕슨의 재발견을 통해 동부는 조금 더 다양한 패턴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동부가 흔들린 데에는 가드진에 과부하가 걸린 영향이 컸다. 표명일-강대협의 백코트가 집중견제에 시달리며 시즌 초반만큼 기민함을 보이지 못했다. 특히 표명일은 무릎 부상으로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볼 운반이나 배급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삼성전에서 딕슨은 국내선수들을 상대로 한 1대1 아이솔레이션 공격은 물론 날카로운 패스워크도 선보였다. 볼을 다루는 솜씨도 투박한 렌보다 나았다. 표명일에게 기울어진 볼 운반의 부담을 딕슨이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 아직 높이를 활용하는 팀컬러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다. 전창진 감독은 “(딕슨의 합류가) 팀이 더 발전적이고, 옵션이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렌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공헌했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속공을 제외하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이는 곧 동부가 승부처에서 표명일이나 강대협의 슛이 터지지 않으면 고전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비록 수비와 높이에서 렌보다 못하지만, 딕슨에게는 다양한 공격루트와 농구센스가 있다. 확실한 1대1 플레이어가 없었던 동부에서는 딕슨이 그 적임자다. 공격의 강약을 조절하는 완급조절 능력 배양과 수비 조직력에 녹아드는 것이 향후 딕슨의 관건이다. 1·2라운드에서 1~2경기를 벌어놓는 데 성공한 동부는 딕슨에게 충분한 적응의 시간을 줄 요량이다. 수비가 탄탄한 동부인 만큼 부족한 공격을 메우는 것이 팀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전에서 동부는 딕슨뿐만 아니라 이광재·손규완·이세범·김봉수 등 벤치멤버들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며 연패를 끊는 데 앞장섰다. 표명일이 3점·3어시스트로 부진했지만 승패에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나머지 선수들이 공백을 잘 메웠다. 또한, 김주성은 코트에서 짬짬이 쉬는 시간을 확보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큰 형님’ 전창진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직 살인일정의 2경기가 더 남아있지만 최강군단답게 동부는 위기를 슬기롭게 잘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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