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2007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최대격전지’ 3루수 부문은 결국 김동주의 승리였다. 김동주는 지난 11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총 유효투표수 397표 가운데 171표를 획득하며 159표를 얻은 이현곤을 불과 12표 차이로 따돌렸다. 타격왕과 최다안타왕을 차지한 이현곤으로서는 그야말로 불운이다. 이현곤은 타격왕 포함 다관왕에 오르고도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한 역대 4번째 선수로 등재됐다. ① 교타자의 비애 이현곤은 올 시즌 126경기 전경기에 출장, 타율 3할3푼8리·153안타를 기록했다. 타격과 최다안타 1위. 그러나 홈런은 겨우 2개에 불과했고 타점도 48개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김동주는 올 시즌 119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2푼2리·123안타를 기록, 타율과 안타는 이현곤에 뒤졌지만 19홈런·78타점으로 이 부문에서 이현곤을 압도했다. 김동주의 장타율(0.534)-출루율(0.457)도 이현곤의 장타율(0.419)-출루율(0.393)을 크게 앞섰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에서는 0.179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타율과 안타를 제외한 타격성적 전 부문에서 김동주는 이현곤을 눌렀다. 김동주의 골든글러브 수상이 타당할 수 밖에 없는 근거들이다. 그러나 이현곤은 교타자다. 교타자는 홈런과 장타에서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타점 기회도 중심타자를 맡는 거포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김동주는 대타로 출장한 4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115경기에 4번 타자로 선발출장했다. 반면 이현곤이 3번 타자로 출장한 경기는 65번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이현곤의 득점권 타율은 2할9푼6리로 나름대로 준수했으나 김동주(0.359)와 비교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현곤은 3번 타자로 나선 65경기에서 득점권 타율 3할5푼7리를 기록하며 41타점을 올렸다. 이현곤은 올 시즌 4번과 8번 타순을 제외한 나머지 7개 타순을 차례로 모두 다 순방했다. 비록 타점 생산이 떨어졌고 타율과 안타를 제외한 나머지 전 부문에서는 김동주에 뒤졌지만 이현곤이 교타자라는 것은 충분히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교타자에게는 타율과 안타가 최고의 기록이다. 현대야구에서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으뜸으로 치며 타율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그렇게 된다면 교타자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사라지게 된다. 홈런과 타점 그리고 OPS가 타자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골든글러브는 거포들의 전유물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올 시즌의 경우에는 김동주의 성적이 여러 면에서 너무 화려했다. 이현곤으로서는 한 자리밖에 없는 3루에서 김동주를 만난 게 불운이었다. ② 꼴찌팀의 비애 골든글러브는 포지션별 최고선수를 뽑는 상이다. 페넌트레이스 MVP는 팀 성적이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되지만 골든글러브는 그래도 팀 성적에 대한 엄격함이 훨씬 줄어든다. 오히려 한국시리즈 우승팀에서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SK에서 배출한 수상자는 포수 부문에서 조인성을 32표차로 따돌린 박경완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정은 아무래도 우승팀보다 꼴찌팀서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이현곤이 김동주에게 뒤진 것은 비단 타율과 안타를 제외한 타격성적이 전부가 아니었다. 김동주의 두산이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일궈낸 반면 이현곤의 KIA는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수비율로 시상한 1982년 원년을 제외한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꼴찌팀에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해낸 경우는 겨우 8차례밖에 되지 않는다. 1983년 롯데 김용희(3루수), 1984년 삼미 정구선(2루수), 1985년 청보 정구선(2루수), 1992년 쌍방울 김기태(지명타자), 1994년 쌍방울 김기태(지명타자), 1994년 쌍방울 박노준(외야수), 1995년 쌍방울 김광림(외야수), 1998년 롯데 박정태(2루수)가 바로 그들이다. 특히 1995년 김광림은 타율 3할3푼7리를 치며 타격왕에 등극, 당당히 외야수 부문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현곤으로서는 자리가 하나밖에 없지만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3루 자리가 야속하게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꼴찌팀에서 배출된 타이틀홀더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92년 출루율(0.461), 1994년 홈런(25개)-장타율(0.590) 타이틀을 차지한 김기태와 1995년 타격왕 김광림은 비교적 무난하게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5년 최태원은 최다안타왕(147개)에 올랐지만, 한국시리즈 우승팀 2루수 이명수에게 패했다. 2001년 펠릭스 호세는 장타율(0.695)-출루율(0.503)을 석권하고도 지명타자 부문에서 양준혁에게 밀렸다. 호세의 경우에는 시즌 막판 ‘주먹질’이 치명타였다. 이현곤은 사상 3번째 꼴찌팀에서 나온 다관왕이지만 1994년 쌍방울, 2001년 롯데와 달리 시즌 전 KIA가 최하위로 추락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물론 이현곤의 타격왕 등극은 더 예견하기 어려웠지만, 이현곤이 꼴찌팀의 비애를 맛본 것은 분명하다. 1998년 박정태 이후 완전히 명맥이 끊긴 꼴찌팀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그것을 입증한다. ③ 인기도의 비애 프로야구 골든글러브는 결코 인기상이 아니다. 하지만 골든글러브는 ‘공격, 수비, 인기도를 똑같은 비중으로 평가하는 상’으로 선정 기준에 명시돼 있다. 성적이 가장 중요하지만 인기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실제로 골든글러브에서 인기도에 희비가 엇갈린 경우는 의외로 빈번했다. 투표인단이 많기 때문이다. 시즌 내내 프로야구를 취재하는 현장 기자들뿐만 아니라 연관된 언론인들 모두가 투표인단에 포함된다. 종종 고개를 갸웃 거릴 만한 결과가 나오거나 같은 값에서 스타선수들이 선정되는 것도 이 같은 인기도의 요인이 크다. 이현곤의 경우에는 성적에서도 김동주에 밀렸지만 인기도에서도 김동주에게 밀리고 말았다. 올 시즌 중반부터 리딩히터 자리를 고수하며 언론 노출이 잦았던 이현곤이었으나 팀 성적 탓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이현곤 역시 2002년 KIA 입단 당시에만 하더라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그해 신인야수 중 가장 많은 계약금(3억5000만 원)을 입단한 특급 유망주였으나 지난해 중반까지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해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했었다. 반면 김동주는 배명고 시절부터 유명한 스타였다. 1998년 프로 데뷔 후 꾸준하게 제 몫을 하며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보였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산 소속이라는 점도 플러스요인이었다. 하지만 이현곤은 갖은 악재 속에서도 무려 159표를 받으며 마지막까지 김동주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타이틀홀더에 대한 배려의 의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만큼 이현곤의 인기도가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아쉬운 탈락자가 됐으나 이현곤의 지명도도 조금 더 올라갔다. 내년에는 한층 막강해진 팀 전력과 함께 개인 성적과 이름값을 높여 올 시즌 활약이 반짝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이현곤의 과제다. 이름값으로 만들어지는 인기도도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