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미풍이 아니다. 돌풍도 아니다. 이제는 오래 가는 태풍이 됐다. 안양 KT&G가 명실상부한 우승후보로 발돋움했다. KT&G는 지난 12일 공동 2위 전주 KCC와의 맞대결에서 시종일관 주도권을 놓지 않으며 78-70으로 승리, 맞대결 2연패 후 첫 승과 함께 전구단 상대 승리를 기록했다. 최근 11경기에서 무려 9승을 쓸어담았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KT&G는 14승7패, 승률 6할6푼7리를 마크하며 단독선두 원주 동부(16승5패)를 바짝 추격 중이다. 공수 양면에서 시즌을 거듭할수록 탄력이 붙고 있는 KT&G다. ▲ 조직력, 속공, 팀워크 시즌 전만 하더라도 KT&G는 ‘잘해야 6강 플레이오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우승후보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KT&G는 우승후보가 갖춰야 할 필수요소들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한 포인트가드와 정통슈터 그리고 위력적인 골밑 높이와 탄탄한 벤치멤버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물론 주희정이라는 특급 포인트가드가 있었지만, 외곽슛이 없는 포인트가드는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외국인선수도 마퀸 챈들러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골밑을 지키는 T.J. 커밍스가 구멍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의 KT&G는 이 모든 것을 극복했다. 오직 조직력으로 승부한 결과였다. KT&G의 조직력은 매우 유기적이다. 주희정의 안정된 볼 운반과 무리없는 볼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선수와 외국인선수가 모두 쉴 새 없이 스크린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정교한 슈팅력을 앞세운 득점력과 개인기가 좋은 챈들러는 주희정과 2대2 플레이에 능하고, 커밍스도 국내선수들에게 활발하게 스크린을 걸고 있다. 여기에 주희정-은희석-황진원-양희종-이현호 등 국내선수들 역시 볼을 주고 스크린을 거는 플레이가 일상화됐다. 그만큼 상대 수비에서 빈 공간이 많이 생기고 이것을 정확한 패스워크와 날카로운 컷인으로 놓치지 않고 있다. 확실한 정통빅맨이 없는 KT&G가 2점슛 성공률 1위(57.3%)에 오른 비결 중 하나다. 수비 조직력도 마찬가지다. KT&G의 물샐 틈 없는 수비 조직력은 트레이드마크인 속공의 시작점이다. KT&G 국내선수들의 1대1 수비력은 리그 최정상급이다. 하지만 비단 1대1 수비뿐만 아니라 도움수비와 지역방어에도 능하다. 특히 도움수비 이후 이어지는 로테이션은 KT&G가 얼마나 많은 수비연습을 하고 나오는 팀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외국인선수 챈들러와 커밍스도 수비 조직력에 무난하게 녹아들며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KCC전에서도 KT&G는 과감하게 더블팀에다 트리플팀까지 펼치며 골밑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고, 숱한 에어볼을 이끌어냈다. 이날 KCC는 겨우 70점을 올리는 데 그쳤고, 팀 야투성공률도 44.1%로 형편없었다. 수비 성공은 곧 KT&G의 가장 확률 높은 공격, 속공으로 이어진다. 올 시즌 KT&G의 속공은 경기당 평균 5.95개로 부동의 전체 1위다. 2위 서울 삼성(4.86개)과도 격차가 꽤 난다. 게다가 KT&G는 속공허용도 경기당 평균 2.05개로 가장 적다. 그만큼 자기 진영 복귀가 빠르다. 빨리 되돌아와 곧바로 수비 대형을 취하는 것도 KT&G만의 강점. 유도훈 감독은 “어느 팀이든 1쿼터부터 4쿼터까지 흐름이 있기 마련이다. 선수들이 나쁜 흐름에서 좋은 흐름으로 가기 위해 서로 대화하고 의사전달을 하며 팀플레이하는 것이 잘되고 있다”고 말한다. KT&G만의 조직력 강점, 이는 곧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상호 교완하는 팀워크의 힘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공격 강화, 십시일반의 힘 단테 존스와 양희승이라는 원투펀치를 한꺼번에 잃은 KT&G에게 공격력 약화는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KT&G는 올 시즌 평균 84.7득점으로 이 부문 전체 2위에 올라있다. 수비력으로 부족한 공격력을 벌충하는 것이 아니라 팀 공격 자체도 좋은 것이다. 야투 성공률까지 감안하면 KT&G는 가장 안정된 공격의 팀이다. 그 중심에 챈들러와 커밍스, 두 외국인선수가 있다. 평균 24.9점으로 득점랭킹 2위에 랭크돼 있는 챈들러는 내외곽에서 언제든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해결사이자 팀 조직력을 망치지 않는 팀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커밍스도 평균 17.9점으로 득점랭킹 전체 12위에 랭크, 챈들러의 뒤를 잘 받치고 있다. KT&G는 외국인선수 득점 의존도가 49.2%로 전체 1위다. 하지만 KT&G의 공격강화를 비단 외국인선수의 힘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다. 챈들러를 제외하면 KT&G에서 개인기로 득점을 올리는 선수는 전무하다. 종종 주희정이 1대1 공격에서 개인기를 선보이지만 팀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에만 한한다. KT&G는 확실한 정통슈터가 없지만 선수 전원이 슈터다. KT&G는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12명 중 커밍스·윤영필·김태완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이 3점슛을 기록했다. 커밍스도 3점슛을 던지지 않고 있지만 정확한 중거리슛에서 나타나듯 슛감각이 나쁜 선수는 아니다. 활발한 스크린 플레이와 반대편을 놓치지 않고 패스하면서 만들어내는 오픈 찬스가 많다는 것은 KT&G만의 차별화된 강점이다. 그만큼 체력적인 소모도 많지만 점차적으로 확률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 5경기에서 3점슛 성공률이 41.1%로 시즌 기록(35.2%)보다 훨씬 상승했다. 이같은 KT&G의 활발하고 유기적이며 부지런한 공격에는 유도훈 감독의 효과 적절한 선수 기용도 빼놓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팀은 체력적인 문제가 달처럼 따라다닌다. 시즌 전체로 봐서도 문제지만 한 경기 내에서 놓고 봐도 경기 종반부터 체력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KT&G에 체력적인 적신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후반전 득점이 평균 43.1점으로 전체 2위에 올라있다. 유도훈 감독은 리그에서 4번째로 경기당 평균 23.7회의 선수교체를 통해 다양한 선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함과 동시에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내고 있다. 외국인선수 챈들러와 커밍스도 2~3쿼터에 서로 번갈아가며 뛰고 있다. 십시일반의 힘은 비단 체력적인 부분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느 한 선수도 욕심을 내지 않고 팀플레이에 자신을 철저하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의 경우에는 단테 존스 덕분에 이긴 경기도 많았지만 존스가 그릇친 경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외국인선수 챈들러와 커밍스는 모두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로 KT&G 팀플레이에 무난히 녹아들었다. 국내선수들도 마찬가지. 황진원-은희석, 양희종-이현호-김일두 등 각각의 포지션에서 경쟁구도를 구축한 선수들이 많지만 지나친 경쟁의식보다는 팀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더욱 강하다. 황진원은 “많이 뛰고 싶은 욕심은 없다. 1분을 뛰든, 10분을 뛰든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정도다. 십시일반의 힘으로 공격력까지 강화한 KT&G. 조직력과 속공 그리고 팀워크로 똘똘 뭉친 그들은 이제 명실상부한 우승후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