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우-유도훈, '냉정한 승부'와 '청출어람'
OSEN 기자
발행 2007.12.17 08: 02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 16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안양 KT&G-창원 LG전. 3쿼터 종료 2분35초를 남긴 가운데 주심이 양 팀 감독을 코트 중앙으로 불러모았다. 경기가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자칫 코트를 침범할 뻔한 양 팀 감독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적장으로 서로 한창 열을 뿜다 코트 중앙에서 만난 양 팀 사령탑의 모습은 자못 어색한 그림이었다. 한때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제지간이었기 때문이다. LG 신선우 감독(51)이 스승이고, KT&G 유도훈 감독(40)이 제자다. 제자는 청출어람을 꿈꾸지만 스승은 냉정한 승부를 바라보고 있다. ▲ 만남과 이별 KT&G는 지난 1월26일, LG 코치로 재직 중이던 유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KT&G는 이례적으로 시즌 중 타 팀의 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하며 3년이라는 안정된 계약기간도 보장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 감독이 감독 경력이 없는 코치라는 것을 고려할 때 KT&G의 대우는 파격에 가까웠다. KT&G는 LG 구단의 양해를 얻어 무리해서라도 유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히겠다는 입장이었고 실행으로 옮겼다. 당시 유 감독이 KT&G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데에는 신선우 감독의 배려가 있었다. 오른팔격이었던 유 감독을 시즌 중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프로농구 수장 자리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고 신 감독이 용단을 내렸다. 신 감독과 유 감독의 인연은 1994년 실업 현대전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 감독이 현대전자 사령탑으로 부임할 때 선수였던 유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미 두 감독은 인연이 싹튼 상황이었다. ‘농구명문’ 용산고-연세대를 함께 나온 12년 선후배 사이였다. 신 감독은 유 감독이 1999-2000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하자 곧바로 코치로 선임했다. 감독과 코치로 손발을 맞추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감독과 선수로 정규리그 3연패와 통합우승 2회를 달성한 두 사람은 감독과 코치 관계가 된 후에도 KCC의 우승과 준우승을 한 차례씩 이끌었다. 특히 신 감독이 2005년 KCC에서 LG로 둥지를 옮길 때 유 감독도 함께 자리를 옮기며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다. 신 감독에게 유 감독은 최고의 보좌관이었으며 유 감독에게 신 감독은 배움의 대상이었다. 신 감독과 유 감독은 환상의 커플이었다. 신 감독은 선수관리를 코치인 유 감독에 일임하고 큰 틀에서 팀을 진두지휘했다. 신 감독이 한 집안의 아버지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팀을 이끌었다면, 유 감독은 어머니처럼 코치로서 선수들을 관리하고 신 감독을 옆에서 보좌하는 중간자 역할에 충실했다. 전술적인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유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끊임없는 연구와 분석 자세로 준비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 감독은 ‘공부하는 코치’ 유 감독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용병술을 펼쳤다. 신 감독의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시도에는 유 감독의 브레인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머지 팀 코칭스태프와 달리 신 감독과 유 감독은 나이차가 많았지만 궁합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스승이 제자의 성공을 바라고 보내준 이별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 닮은 듯 다른 신 감독과 유 감독은 무려 14년을 함께 했다. 감독과 선수로 7년, 감독과 코치로 7년씩 한솥밥을 먹었다. 감독과 코치로는 물론 감독과 선수일 때에도 유 감독이 포인트가드였기 때문에 신 감독과는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코트에서 14년을 바늘과 실처럼 지낸 만큼 두 감독의 스타일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의 경우에는 유 감독이 4라운드 막판 팀을 옮겼던 만큼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 여름 오프시즌 동안 충분한 색깔내기의 과정을 거친 후 코트에 나타난 ‘유도훈표 농구’는 ‘신선우표 농구’와 흡사한 부분이 매우 많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스피드를 앞세운 빠른 공수전환이다. 유 감독은 전성기 대전 현대에서 선수로 직접 신 감독의 속공농구를 체험한 경험이 있다. KCC-LG에서도 빠른 속공과 공수전환은 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였다. 올 시즌 유 감독의 KT&G 역시 끈끈한 수비가 바탕이 된 속공 게임과 재빠른 코트 복귀로 놀라운 공수전환을 과시하고 있다. KT&G는 속공이 경기당 평균 5.97개로 이 부문 부동의 1위에 올라있다. ‘속공메이커’ 주희정을 중심으로 선수 전원이 수비 성공 이후에는 육상부처럼 반대편 코트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KT&G 농구의 백미다. 게다가 속공 허용도 경기당 평균 2.17개로 가장 적다. 물론 신 감독의 LG도 다르지 않다. 올 시즌에도 LG는 속공이 경기당 평균 4.78개로 이 부문 3위에 올라있고 속공 허용도 KT&G 다음으로 적은 경기당 평균 2.74개밖에 불과하다. 이뿐만 아니다. 잦은 선수 교체와 다양한 선수 활용도 빼다 박았다. 신 감독의 LG는 선수 교체 부문에서 전체 2위인 평균 25.0회를 기록 중이고 유 감독의 KT&G 역시 평균 23.6회로 이 부문에서 4위를 달리고 있다. 경기당 평균 25회 이상의 부지런한 선수 교체로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닮았다. 이 같은 선수 교체의 바탕에는 벤치멤버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LG와 KT&G는 벤치의 영향력이 큰 몇 안 되는 팀으로 평가된다. 전술적으로도 LG와 KT&G는 코트 위 5명의 선수가 활발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지면서 손쉬운 득점 찬스를 노리는 모션 오펜스를 펼친다는 점이 닮았으며 모든 선수가 외곽슛을 던지며 코트를 넓게 활용한다는 점도 닮았다. 올 시즌 외국인선수 2명을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공통점이다.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은 건 아니었지만, 팀컬러와 지명순위를 고려할 때 두 감독 모두 외국인선수 농사도 잘 지었다는 평이다. 물론 유도훈표 농구가 신선우표 농구의 아류는 아니다. 설령 아류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팀에 성공적으로 입혔다는 것 자체가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유 감독은 다양하고 끈끈한 수비전술을 탑재시키며 체화되고 진화된 팀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 감독은 벤치에서 근엄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선수들을 이끄는 신 감독과 달리 경기 내내 코트에서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휘하고 독려하는 스타일이다. 프로농구 최연소 감독이다보니 패기도 넘친다. 반면 신 감독은 프로농구에서 유일하게 원년부터 지금까지 지휘봉을 놓지 않고 있는 최장수 사령탑답게 베테랑의 노련미가 물씬 풍긴다. 닮은 점이 많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스타일은 대척점에 놓여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 청출어람과 승부 지난 2월9일은 신 감독과 유 감독이 적장으로 처음 만난 날이었다. 당시 유 감독은 KT&G 사령탑에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2연패를 당해 그야말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던 시점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유 감독의 KT&G는 신 감독의 LG를 99-88로 물리쳤다. ‘스승’ 신 감독이 유 감독의 감독 데뷔 첫 승의 제물이 순간이었다. 일각에서는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제자에게 준 스승의 선물이 아니냐는 소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LG도 3위 부산 KTF에 2.5경기 차로 쫓기는 아슬아슬한 2위였다. 신 감독이 제자에게 첫 승을 선물할 정도로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실제로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도 유 감독의 KT&G가 LG를 63-58로 또 꺾어 신 감독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LG는 당시 패배로 3위 KTF에 0.5경기차로 쫓겨야 했다. 올 시즌 첫 대결에서도 KT&G는 86-78로 LG를 제압했다. 제자 유 감독이 스승 신 감독을 상대로 3전 전승을 거둔 것이다. 스승의 체면이 말이 서지 않았는지 이후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2라운드 대결에서 신 감독의 LG는 KT&G를 98-88로 눌렀다. KT&G의 5연승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3라운드 경기에서도 LG는 2차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친 끝에 KT&G에 90-89로 신승, 다시 한 번 KT&G의 5연승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최근 10경기에서 KT&G가 기록한 2패 모두 LG에게 당한 것이었다. 유 감독은 사령탑 데뷔 후 첫 5연승에만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스승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신 감독으로서는 이제야 스승의 체면을 세운 셈이다. 스승과의 맞대결에서 3연승 이후 2연패를 당한 유도훈 감독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청출어람을 꿈꾸고 있다. 적을 넘지 못하면 내가 죽는 프로세계에 몸담고 있는 한 유 감독의 목표는 청출어람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선우 감독은 “승부세계에서는 명암이 엇갈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베테랑다운 냉정함이 서려있다. 올 시즌 KT&G는 15승8패로 단독 2위에 올라있고, LG는 13승10패로 전주 KCC와 함께 공동 3위에 랭크돼 있다. LG와 KT&G의 승차는 불과 2.0경기. 5차례 맞대결에서 서로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사제지간’ 신선우 감독과 유도훈 감독의 향후 대결은 순위싸움과 함께 더욱 흥미롭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도훈 감독이 LG 코치 시절 신인 드래프트서 신선우 감독과 상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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