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맨' 서재응의 새로운 도전
OSEN 기자
발행 2007.12.18 10: 37

[OSEN=이상학 객원기자] 강속구 투수는 타고나는 법이다. 공이 빠르지 않은 선수를 강속구 투수로 만들 수 없다. 볼 스피드를 빠르게 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제구력도 말처럼 쉽게 기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제구력 역시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강속구 투수에게는 제구력, 컨트롤 투수에게는 스피드가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다. 그 대척점을 넘나든 선수가 있다. 바로 국내로 복귀한 메이저리그 출신 서재응(30)이 그 주인공이다. 한때 150km 강속구를 밥 먹듯 뿌리다 팔꿈치를 다친 후 컨트롤 아티스트로 변신한 서재응. 이제는 KIA 유니폼을 입고 2008년을 벼르고 있다. ▲ 정통파에서 기교파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재응은 기교파 투수에 가깝다. 서재응의 이름 앞을 수식하고 있는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별칭은 기교파 투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다. 하지만 서재응이 아마 시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로부터 표적이 된 것은 컨트롤이 아니라 강속구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아시아에서 굳이 컨트롤을 무기로 하는 투수를 찾을 리가 없었다. 광주일고-인하대 시절 서재응은 파워피처였다. 박찬호처럼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지, 그렉 매덕스처럼 상하좌우 코너워크를 이용하며 컨트롤로 승부하는 투수는 아니었다. 여전히 김병현과 류제국 다음으로 많은 계약금 135만 달러는 뉴욕 메츠가 전적으로 강속구를 보고 준 금액이었다. 그러나 미국 진출 후 서재응에게 시련이 닥쳤다.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때까지만 하더라도 빠른 공을 던지는 파워피처였던 서재응은 그러나 이후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결국 그 유명한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1999년부터 2000년까지 2년간 철저하게 재활훈련에만 매달렸다. 2년의 공백기는 서재응에게 공포였다. 그가 머물렀던 메츠 산하 더블A 빙햄튼은 많은 유망주들이 그냥 그대로 묻힌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수술 이후 서재응은 볼 스피드를 상실했다.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선수들 중 다수가 수술 전보다 구속이 빨라지는 경우가 있지만, 딱딱하고 경직된 투구 폼의 서재응은 오히려 볼 스피드가 느려졌다. 부상에 대한 공포도 있었다. 하지만 서재응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볼 스피드를 잃은 파워피처가 일어선 데에는 컨트롤이 있었다. 강속구를 상실한 서재응은 대신 컨트롤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제구력을 길렀다. 파워피처의 기억은 과거의 흑백사진으로 치부했다. 포수 미트 어느 곳에든 자유자재로 공을 꽂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기교파로 변신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5년간 28승을 올렸다. 파워피처가 기교파로 변신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고 28승을 올렸다. 아쉽지만 만족한다”는 서재응의 말은 아마 노력에 대한 자부심일 것이다. ▲ 터닝포인트, 2007년 총액 15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KIA행을 확정지은 서재응은 지난 17일 공식 입단식을 가졌다. 이제는 공식 KIA맨이다. 이날 서재응의 입단식은 그룹 고위층만 사용하는 KIA자동차 의전관에서 열려 서재응에 대한 대우와 예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케 했다. 서재응은 외국인선수를 통틀어서도 가장 경력이 돋보인다. 2002년 처음으로 빅리그에 입성한 뒤 6년간 통산 118경기에서 28승40패 방어율 4.60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풀타임 선발로 9승을 올렸고 2005년에는 14경기에서 8승·방어율 2.59를 기록했다. 불과 2년 전 일이다. 그러나 최근 잦은 이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고 심리적인 부담도 커졌다. 물론 한계도 있었으나 서재응은 올 시즌 가장 기대를 모은 한국인 빅리거였다. 스프링캠프를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소화해냈고 시범경기에서도 연일 호투를 거듭했다.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도 일찌감치 서재응을 제2선발로 낙점하며 신뢰를 보냈다. 시범경기 때만 하더라도 서재응은 새로 교정한 투구폼이 위력을 발휘했다. 와인드업에서 한 번 멈칫했던 동작을 없애자 부드러운 팔스윙과 함께 볼 스피드가 살아나고 구위도 좋아지는 이중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정작 시즌 돌입 후 완벽하게 무너졌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11경기에서 52이닝을 던져 3승4패 방어율 8.13이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겼다. 피안타율은 무려 3할7푼2리였다. 결과적으로 투구폼 교정은 서재응의 생명줄과도 다름없는 컨트롤을 잃어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볼 스피드가 소폭이나마 상승하며 구위가 좋아졌으나 제구력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서재응이 구위가 아닌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라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더 뼈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제구력이 불안하니 ‘공이 긁히지 않는 날’에는 배팅볼이 되기 십상이었다. 52이닝 동안 피홈런 10개를 맞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 올 시즌 유독 경기력에서 기복을 보인 것도 결국에는 제구력 상실이 문제였다. 하지만 서재응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투구 폼의 교정을 통해서라도 구위를 조금 더 끌어올리는 것이 몇 년째 그저 그런 투수로 답보 상태에서 올라가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보다 좋지 않았고, 서재응은 미련없이 한국으로 왔다. 서재응에게 2007년은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다. ▲ 국내서 새로운 도전 메이저리그에서 서재응의 입지는 탄탄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잦은 이적으로 심리적인 부담이 커진 것도 같은 이유였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 메이저리그에서는 그저 그런 투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그런 투수와 거리가 너무 멀다. 서재응의 볼 스피드는 한국에서는 충분히 위력적이다. 컨트롤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던지는 볼은 시속 140km대 초중반이지만 볼 끝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서재응에게는 정교한 제구력과 체인지업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몸 상태도 좋다. 부상을 당하며 하향세를 보인 이후 국내로 돌아온 봉중근(LG)과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최근 몇 년간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으로 국내 타자들의 능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볼을 맞히는 능력이나 끈질기게 볼을 고르는 면은 나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장타가 예전처럼 많이 나오지 않고 있을 뿐이다. 탬파베이 류제국은 “국내 타자들은 상대하기 까다롭다. 미국 타자들은 공격적이지만, 국내 타자들은 기다릴 줄 안다. 인내심이 좋다”고 평가했다. 구종이 단조롭고 빠른 승부를 고집하는 강속구 투수들이 국내 타자들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서재응은 원하는 곳으로 볼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이 있으며 타자의 헛스윙 또는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체인지업이 있다. 서재응의 제구력과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에서 나름 성공할 수 있었던 큰 밑바탕이었다. 국내에서는 더욱 위력을 떨칠 수 있다. 여전히 국내 타자들은 상대적으로 체인지업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이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서는 볼 스피드의 한계를 절감했으나 국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서재응의 볼 스피드는 국내에서는 결코 느리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과제 중 하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활용하는 서재응에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 체인지업 외에도 투심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등 레퍼토리가 다양하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또한, 올 시즌 중 복귀한 선수들과 달리 충분히 몸을 만들고 적응기를 거쳐 데뷔할 수 있다는 점도 내년 시즌 서재응을 기대케 만드는 대목이다. 입단식에서 서재응은 “한국 프로야구는 처음이다. 몇 승보다는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팀을 위하다 보면 성적도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단순히 개인의 활약이 아니라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서재응의 리더십은 투수로서의 활약만큼이나 주목받는 대목이다. KIA 조범현 감독도 “본인보다는 팀의 1승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길 바란다. 본인의 경험을 젊은 투수들에게 전수해주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서재응의 역할은 비단 개인의 활약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재응은 그만한 그릇을 갖춘 레벨이 다른 투수이기 때문이다. KIA 타이거즈 제공.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