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타령'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
OSEN 기자
발행 2007.12.19 08: 44

[OSEN=이상학 객원기자] 야구는 십시일반 식으로 힘이 모아져야 하는 단체 경기다. 그러나 결코 십시일반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량공세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달 초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 일본전에서 한국은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해결사는 어디에서든 필요하다. 확실한 에이스와 4번 타자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일본에 분패하며 아쉽게 본선 직행 티켓을 놓친 한국대표팀에는 내년 3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최종예선에서 3장의 티켓 중 한 장을 거머쥐어야 하는 지상과제가 주어졌다. 때마침 대표팀에 희소식이 날아왔다. ‘국민타자’ 이승엽(31·요미우리)이 최종예선 참가 의지를 공식적으로 확고히 한 것이다. 이승엽은 지난 17일 소속팀 요미우리로부터 대회 참가 승인을 받아냈다. 대표팀 사령탑인 김경문 감독은 2007시즌 중 대표팀 엔트리를 추리는 과정에서 이승엽의 불참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이 타석에 서는 것만으로도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엽이 4번타자로서 타선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절실했다는 뜻이다. 이승엽이 4번에 서고 앞뒤로 김동주와 이대호가 자리하면 타선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또한 이승엽은 왼손 거포라는 희소성까지 있다. 일본전에서 한국의 클린업 트리오는 이택근-김동주-이대호 등 오른손 일색이었다. 일본도 나루세 요시히사와 이와세 히토키 등 왼손 투수들을 중용했지만 극단적인 단기전이었던 아시아예선과 달리 7경기를 치르는 최종예선에서는 타순의 좌우 조화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승엽의 합류는 대표팀 중심타선에 파급효과를 더할 것이라는 기대다. 대표팀이 이승엽에게 가장 기대하는 대목은 역시 해결사적 능력이다. 모두 5개 국제대회에 참가한 이승엽은 총 30경기에 출장했으나 106타수 30안타로 타율은 2할8푼3리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타점은 무려 30개를 기록했다. 30안타 중 절반인 15개가 장타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장타율(0.575)은 박재홍(0.610) 다음으로 높지만 홈런은 역대 대표팀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7개다.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5홈런·10타점으로 초대 홈런왕 및 타점왕에도 올랐다. 일본·멕시코·미국전에서 모두 역전·선제 결승홈런을 작렬시킬 정도로 영양가 만점이었다. 아시아예선 일본전에서는 1-2로 패색이 짙던 8회말 역전 투런홈런이었고 멕시코·미국전에서는 선제 결승 솔로홈런을 작렬시켰다. 이승엽에게 관대하지 못한 '영양사'들도 WBC 대활약 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WBC의 경우에는 이승엽의 컨디션이 최절정에 달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타격감이 좋지 못하거나 부진을 면치 못하더라도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해결하는 능력이 남달랐다. 1999년 서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이승엽은 5경기 동안 17타수 3안타, 타율 1할7푼6리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대만과의 결승리그에서 2-2 동점이던 6회초 결정적인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승부의 물줄기를 한국 쪽으로 틀었다. 이승엽의 홈런을 발판삼아 한국은 대만을 연장 11회 접전 끝에 5-4로 꺾으며 시드니 올림픽행 본선직행 티켓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더 극적이다. 무릎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이승엽은 당시 대회 9경기에서 28타수 5안타, 타율 1할7푼9리로 극도의 부진을 보였으나 중요할 때 중심타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일본과의 예선에서 6경기·15타석 만에 나온 대회 첫 안타가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시속 152km 직구를 그대로 받아쳐 만들어낸 우중월 투런홈런이었다. 역시 일본과의 3·4위전에서도 3연타석 삼진을 당하고 0-0 동점에서 맞이한 8회말 1사 1·3루 찬스에서 이승엽은 다시 한 번 마쓰자카를 상대로 2-3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 끝에 통렬한 좌중월 결승 2탄점 2루타를 터뜨리며 한국의 동메달을 이끌었다. 이승엽의 해결사·스타본능은 중요할 때마다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한국야구는 아직 엘리트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 몇몇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깊을 수 밖에 없다. 특히 해결사 능력을 갖춘 왼손 거포 이승엽이라는 이름 석 자는 영영 메워지지 않을 존재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승엽 타령만을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한국야구대표팀에는 이승엽만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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