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에게는 슬픔을 넘어 자칫 절망의 날이 될 수도 있다. 시즌 종료와 함께 얼마 가지 않아 전해지는 방출 명단은 입지가 좁은 선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올해는 그 강도가 더했다. 삼성은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 포함 무려 17명을 방출시키는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단행했고, 나머지 팀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강도 높은 방출을 이어갔다. 시즌 종료 후 1차·2차 포함해 방출된 선수만 해도 무려 86명에 달했다. 베테랑 방출선수들 올해 방출 바람이 더욱 주목받은 것은 왕년을 누빈 스타급 선수들이 적잖게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LG에서 투타를 대표한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 진필중과 마해영은 시즌 종료와 함께 예상대로 방출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이외에도 위재영·강혁·채종국·김태균(SK), 안상준·신재웅·김주호(두산), 조성민·김해님·백재호·김인철(한화), 오상민·김종훈·김대익·박정환(삼성), 안재만·김우석·양현석(LG), 임선동·김기식·서한규(현대), 이상목·박지철·김승관·최경환·허일상(롯데), 조경환(KIA) 등 잔뼈 굵은 베테랑들과 이름이 알려진 유망주들이 대거 방출당해 충격파가 컸다. 전성기라 가정하고 라인업을 짜도 짜임새가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들은 이름값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마해영과 진필중은 각각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던 오른손 거포와 특급 마무리투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이 같은 이미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고액연봉자로서 몸값을 해내지 못한 선수들은 부는 얻는 대신 명예를 잃어버린다. 1990년대 중후반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단골멤버였던 홍현우에는 ‘왕조’ 해태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주역보다는 '원조 FA 먹튀'의 이미지가 더욱 짙게 깔려있다. 마해영과 진필중이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이유다. 마해영과 진필중보다 덩어리가 작은 나머지 선수들도 당장 어느 팀에서든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노련미가 축적돼 있다. 다만 그들에게는 나이가 문제였다. 투수진은 물론 야수진까지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대두된 한화는 유독 베테랑들의 방출이 두드러졌다. 이는 마찬가지로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조련한 젊은 선수들이 이제는 주축으로 올라서고 있는 롯데도 베테랑들을 정리해고했다. 베테랑들에게는 오직 실력만이 방출을 피할 길이다.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안전망이 없는 선수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좋은 기억에 대한 망각의 시간이 빠른 프로세계에서는 오직 실력밖에 없다. 이적과 구직 그리고 은퇴 방출된 후 곧바로 새로운 팀을 찾은 선수들은 많았다. SK에서 방출된 채종국은 지난해까지 현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재박 감독의 LG로 부름을 받았다. 채종국의 건실한 내야수비는 실수가 적고 기본이 되는 야구를 추구하는 김재박 감독에게 딱이다. 반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사활이 걸린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책을 저지른 LG 김우석은 시즌 후 곧장 방출돼 주위로부터 안타까움을 샀으나 삼성의 마무리훈련에 참가해 계약을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김우석의 전임자라 할 수 있는 박정환은 삼성에서 방출된 후 SK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LG-삼성-SK를 둘러싼 채종국-김우석-박정환의 연결고리가 묘해졌다. 세 선수 모두 주로 2루를 맡는 내야수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대목이다. KIA는 최경환과 안재만을 테스트를 거쳐 입단시켰다. 2년 만에 다시 최하위로 처지며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큰 KIA는 경험이 많은 최경환과 안재만 같은 베테랑들을 영입해서라도 강력한 내부경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삼성도 롯데에서 방출된 이상목을 연봉 1억 원이라는 방출선수에게는 비교적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영입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마운드에 신구의 조화를 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상목의 삼성행을 지켜보는 마해영의 마음은 착잡해진다. 이상목이 무려 14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지만, 마해영의 친정팀 롯데는 아직 그의 영입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마해영과 마치 바늘과 실처럼 엮인 진필중도 아직 새로운 구매자를 찾지 못한 형편이다. 아직 새팀을 알아보고 있는 유명 방출선수들이 많은 가운데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은 선수들도 속출했다. ‘전설의 92학번’ 임선동과 조성민은 나란히 은퇴를 선언했다. 조성민은 해외연수 후 지도자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고, 임선동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도자로 나설 마음이 서지 않는다”며 야구와의 작별을 고했다. 조성민과 임선동 외에는 아직 은퇴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자의든 타의든 프로의 생리에 따라 향후 조용히 유니폼을 벗는 선수가 하나둘씩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일 OSEN이 처음으로 제기한 ‘스프링캠프 초청선수제’가 방출선수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시행하고 있는 스프링캠프 초청선수제는 방출된 선수들이 초청선수로 스프링캠프에 합류, 구단으로부터 테스트를 받은 이후 계약 여부를 결정짓는 제도다. 방출된 선수들에게는 현역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구단들에게는 최소비용으로 재기를 노리는 노장이나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마해영-진필중-이상목-최경환(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