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슈퍼 스타들이 대거 몰려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그 중에서도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관전거리가 있으니 바로 '더비 매치'다. 팬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특히 토튼햄 핫스퍼와 아스날의 북런던 더비는 어지간한 수식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고언(古言)에도 불구하고 토튼햄과 아스날의 관계는 쉽사리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다. 아스날의 홈구장인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토튼햄 핫스퍼의 화이트 하트 레인까지는 고작 10여 분 거리. 지리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서로 잡아먹지 못해 늘 으르렁거린다. 작년 말 런던 근교 치그웰 토튼햄 연습구장서 만났던 크리스 휴튼 전 수석코치는 "아스날만 이길 수 있다면 악마에게 혼이라도 팔 수 있다는 팬들이 있을 정도"라며 "양 팀의 적대의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럼에도 토튼햄은 또 졌다. 지난 22일(이하 한국시간) 밤 에미리츠 스타디움서 벌어진 2007-2008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경기에서 토튼햄은 이길 수도 있던 내용이었음에도 아스날에 1-2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말 훌륭한 경기를 펼쳤기에 더욱 아쉬웠던 승부였다. 토튼햄은 아일랜드 출신 주장 로비 킨이 후반 16분 시도한 슈팅이 크로스바에 맞았고 후반 27분 베르바토프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역시 킨이 찼지만 아스날 골키퍼 알무니아의 선방에 걸렸다. 쓰라린 패배. 2000년 이후 토튼햄은 아스날전 20경기에서 8무12패의 절대 열세에 놓이게 됐고, 토튼햄 팬들은 또다시 하늘을 원망해야 했다. 토튼햄의 사령관은 경질된 마틴 욜 전 감독에 이어 10월 말 새로이 지휘봉을 잡은 후안데 라모스(5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클럽 세비야를 UEFA컵 2연패에 올려놓았던 탁월한 지도력의 소유자다. 한참 강등권을 헤맸던 토튼햄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조련하는 라모스 감독이 부임한 뒤 아스날전 이전까지 7승3무1패의 훌륭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지긋지긋한 무승 고리를 이번에야말로 털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토튼햄은 패배의 멍에를 끝내 떨칠 수 없었고, 라모스 감독 역시 징크스의 악몽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아련한 아스날전 승리의 기억. 토튼햄은 1999년 11월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2-1로 아스날을 제압한 뒤 벌써 8년간 이긴 적이 없다. 당시 감독은 아스날 출신의 조지 그래엄. 그러나 이후 토튼햄 지휘봉을 잡았던 데이빗 플랫과 글렌 호들, 자크 상티니, 마틴 욜 감독은 단 한 번도 아스날에 이기지 못했고 씁쓸한 징크스를 유지했을 뿐이었다. 누군가 불멸의 기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허나 토튼햄 입장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남기고 있는 가슴 아픈 발자취는 단순히 기록이란 차원을 넘어 악몽이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올해도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내년 1월 아스날과 또 만날 칼링컵 준결승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yoshike3@osen.co.kr 에미리츠 스타디움 입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