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응의 이유있는 '손민한 벤치마킹'
OSEN 기자
발행 2007.12.25 08: 34

[OSEN=이상학 객원기자] 롯데 손민한(32)은 현재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오른손 선발투수로 손꼽힌다. 페넌트레이스 MVP를 차지한 2005년을 기점으로 손민한은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손민한은 83경기에 등판, 524이닝을 던지며 41승25패2세이브 방어율 2.89를 기록했다. 최근 3년을 통틀어 손민한보다 더 많은 투구이닝과 승수 그리고 방어율을 기록한 선수는 딱 한 명밖에 없다. 다름 아닌 다니엘 리오스다. 바꾸어 말하면 손민한은 지난 3년 동안 최고의 토종 선발이었다는 뜻이다. 내년 시즌부터 KIA에서 뛰는 메이저리그 출신 서재응(30)이 손민한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일 것이다. 강속구는 '액세서리' 손민한은 부산고-고려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7년 계약금 5억 원이라는 특급 대우를 받고 롯데에 입단했다. 2004년 김수화가 계약금 5억3000만 원을 받고 입단하기 전까지 7년간 깨지지 않은 롯데의 신인 최고 계약금이었다. 그러나 아마 시절 눈부신 연투는 프로 무대에서 부진과 부상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어깨를 지나치게 혹사당한 것이다. 결국 1997년 10월 선수생명을 걸고 어깨 수술을 받았다. 1999년 시즌 막판 복귀하기 전까지 재활에만 몰두했다. 부상 후유증으로 심심찮게 뿌렸던 시속 150km 이상 강속구는 더이상 구경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손민한에게는 강속구의 상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손민한은 ‘타자를 다루는 법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 투수였다. 유연한 투구 폼에서 나오는 직구는 평균 시속 140km대 초중반으로 힘은 있지만, 타자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정교한 제구력 그리고 절묘한 두뇌 피칭은 손민한이 왜 최고의 선발투수인지를 입증한다. 힘을 앞세운 위력적인 직구는 없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몸쪽으로 찌를 수 있는 평범한 직구가 더욱 위력적인 법이다. 또한, 왼손·오른손 타자를 가리지 않으며 스트라이크존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도 손민한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서재응도 이 같은 손민한의 강점을 그대로 빼다박았다. 서재응도 지난 1999년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2년 가까이 재활훈련에 매달린 아픔이 있었다. 부상 전까지 서재응은 전형적인 파워피처였다는 점에서 팔꿈치 부상이 매우 치명적일 수 있었다. 서재응은 딱딱 끊어지는 투구 폼과 부상에 대한 공포로 예의 강속구를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재응은 강속구를 뒤로하고 제구력을 길렀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서재응은 어느덧 제구력을 앞세워 스트라이크존을 활용하는 기교파 투수가 되어 있었다. 서재응도 손민한과 같은 강속구가 없는 선발투수의 교본을 실행했다. 다만 메이저리그의 벽이 너무 높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변화구, 체인지업 손민한은 2000년부터 서서히 입단 전 기대치에 어울리는 위력을 드러냈으나 ‘진짜’ 위력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손민한이 수준급 선발투수에서 정상급 선발투수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바로 체인지업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363승에 빛나는 워렌 스펀은 ‘타격이 타이밍 싸움이라면 피칭은 타이밍을 빼앗는 싸움’이라고 규정지었다. 체인지업은 특정한 구질이 아니라 포크볼·스플리터·서클체인지업 등을 통칭한 구종의 계열이다. 체인지업은 말 그대로 구속의 가감과 각도의 조절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유행이 불어 세계야구의 대세가 되고 있다. 체인지업을 가장 잘 던지는 투수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손민한은 스플리터에 가까운 그립으로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손민한은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질 때 투구 폼에 변화가 거의 없다. 손민한의 특급 완급 조절 능력의 요체는 다름 아닌 체인지업이다. 이는 곧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6회 이상을 꾸역꾸역 막아내는 힘으로 이어진다. 비록 150km 이상 강속구는 던지지 않지만 슬라이더와 커브 같은 제3의 구종들이 위력을 배가 될 수 있는 힘도 체인지업에서 비롯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전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3구 삼진으로 처리할 당시 공 3개도 모두 체인지업이었다. 서재응은 자타가 공인하는 체인지업의 고수로 평가된다. 서재응이 메이저리그에서 28승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도 바로 체인지업의 힘이 자리하고 있었다. 왼손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다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서클체인지업, 오른손 타자에게는 직구와 똑같이 날아오다 종으로 떨어지는 스리핑거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사용한다.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체인지업이 유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체인지업에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 타자는 많지 않다. 서재응의 두 가지 체인지업은 많은 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거나 맥없는 땅볼로 처리할 것이다. 이외에도 서재응은 투심·커터·커브·슬라이더 등 변화구의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다양한 구종을 볼카운트에 관계없이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은 어쩌면 손민한 이상일지도 모른다. 서재응의 역할 지난 22일 신변정리와 훈련을 겸해 미국으로 출국한 서재응은 “아직 국내타자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딱히 몇 승을 하겠다는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와 스타일이 비슷한 손민한 선배만큼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재응의 기본 역할은 손민한과 같이 제1선발이자 에이스로서의 활약이다. ‘전국구 에이스’로 불리는 손민한처럼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실제로 손민한은 최근 3년간 23승15패, 방어율 3.27를 거둔 홈경기보다 18승10패, 방어율 2.51을 기록한 원정경기 성적이 더 좋았다. 괜히 전국구 에이스가 아니었다. 게다가 손민한은 롯데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된다. 올해에는 팀 주장까지 맡았다. 그동안 롯데 주장들은 이유모를 부진에 빠지곤 해 선수들이 기피했지만 손민한은 비교적 큰 부진 없이 팀을 잘 이끌었다는 평이다. 손민한은 언제나 팀 내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후배들을 이끄는 선참 노릇을 잘 수행했다. 열렬한 지지만큼 때로는 강한 비난을 아끼지 않는 롯데팬들도 손민한에게 만큼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에이스이자 리더에게 보내는 일종의 예우다. 시즌 후에는 압도적인 지지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신임회장으로 선출될 정도로 구단 안팎에서 신망이 두텁다. 서재응도 손민한처럼 부드럽지만 강한 리더십으로 군기가 빠진 호랑이군단에 기를 불어넣어야 할 역할이 있다. 벌써부터 KIA 구단은 서재응에게 성적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 서재응에게 손민한은 더없이 적합한 롤-모델이다. 이는 곧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콧대 높은 꼬리표를 떼고 낮은 자세로 한국프로야구에 잘 적응하겠다는 겸손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 . . .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