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삼성 선동렬 감독에게 외국인 타자는 사치였다. ‘방망이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선 감독에게 외국인 타자는 탐탁치 않은 대상이었다. 2005년 사령탑으로 부임한 후 3년간 선 감독이 뽑은 외국인선수 6명 모두가 투수였다. 하지만 그 선 감독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노쇠되고 약화된 팀 타선을 보강하기 위해 내년 시즌 외국인 타자와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은 29일 한화와 재계약에 실패한 제이콥 크루즈(34)를 총액 37만 5000달러에 영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미 검증된 크루즈는 선동렬 감독의 첫 외국인 타자가 됐다. 한화의 크루즈 올 초 한화가 7년간 팀에서 근속한 제이 데이비스와 재계약을 포기한 후 크루즈를 영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데이비스가 7년간 기록한 연평균 성적이 타율 3할1푼3리·23.8홈런·84.4타점이었다. 타율 3할-20홈런-80타점은 신입 외국인 타자가 첫 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기록이 아니었다. 더욱이 프로야구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대였다. 검증된 외국인 타자를 포기한 한화의 도박은 일견 무모해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크루즈는 이 모든 평가를 지워버렸다. 기대 이상의 적응력으로 데이비스의 그림자까지 없앴다. 2007년 크루즈는 121경기에서 타율 3할2푼1리·22홈런·85타점이라는 데이비스의 7년간 연평균에 딱 맞는 성적을 냈다. 더욱이 올 시즌에도 프로야구가 대체적으로 투고타저 양상을 보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보여지는 수치보다 조금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크루즈는 타격 전체 6위, 홈런·타점에서 공동 4위에 올랐으며 장타율(0.550)-출루율(0.422)에서 각각 3위와 5위에 올랐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는 0.972로 전체 5위였다. 6위 김태균(0.903)과도 차이가 꽤 난다. OPS를 기준으로 삼을 때 크루즈는 이대호(1.053)-양준혁(1.019)-김동주(0.991)-클리프 브룸바(0.973)와 함께 다섯 손가락에 드는 타자였다. 사실 크루즈는 부상만 아니었더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크루즈는 전반기 막판 왼쪽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올 시즌 전반기 77경기에서 크루즈는 타율 3할4푼1리·18홈런·52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고생한 후반기 44경기에서는 타율 2할8푼3리·4홈런·19타점으로 전반기만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반기 막판부터 외야수가 아니라 지명타자로 출장한 것을 고려할 때 더욱 아쉬운 성적이었다. 포스트시즌 6경기에서도 크루즈는 타율 1할7푼4리·무홈런·무타점으로 침묵하는 등 마지막까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수비가 되지 않는 지명타자로 한정할 경우 크루즈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한화의 판단이었다. 삼성의 크루즈 한화와 재계약에 실패한 크루즈는 직접 삼성 구단에 입단 의사를 타진했다. “삼성은 꼭 한 번 뛰고 싶었던 구단”이라는 것이 크루즈의 말이다. 삼성 구단은 크루즈의 왼쪽 아킬레스건 부상에 대해 메디컬 체크를 면밀하게 거친 후 최종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크루즈는 “올 시즌 후반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지금은 완벽히 나은 상태다. 외야 수비도 문제없다. 내년 시즌 최고의 활약으로 팀 우승에 이바지하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 크루즈는 내년 시즌 3번 양준혁과 4번 심정수를 뒷받침하는 5번 타자로서 ‘양-심-크 클린업 트리오’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크루즈 영입은 삼성 입장에서 잃은 것이 없는 장사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가 돌아오는 내년 시즌에는 굳이 외국인선수를 투수 2명으로 고집할 필요가 없다. 마무리캠프에서 삼성은 윤성환·정현욱·차우찬을 내년 시즌 선발 후보로 새로 발굴했다. 또한, 2차 1번으로 지명한 신인 최원제도 타자를 포기하는 대신 투수로 가닥을 잡았다. 선동렬 감독이 수석코치로 부임한 2004년부터 삼성의 마운드는 거듭된 세대교체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야수진이다. 야수들의 노쇠화는 지난 1997년 백인천 감독 시절 못지 않은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김한수의 은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삼성의 야수진 세대교체는 내년부터 탄력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군에서 제대하는 박석민·최형우·곽용섭, 신인 우동균·김경모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선수들이다. 올해 LG 김상현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2군 타자들의 성적은 믿을 것이 못 된다. 고졸신인 야수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프로 적응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내년 시즌에도 성적을 내야하는 삼성 입장에서는 확실한 카드가 필요했고, 크루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2007년 삼성은 1·2번 테이블세터들이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타선의 중심이 3~5번 클린업 트리오에만 쏠린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크루즈가 5번에 들어감으로써 ‘3할 타자’ 박진만을 중·하위타순의 뇌관으로 박아놓을 수 있을 전망. 전체적인 타선을 보다 짜임새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크루즈의 해결사 능력도 삼성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올 시즌 삼성의 득점권 타율은 2할3푼8리로 8개 구단 최하위였다. 하지만 심정수(19개)·양준혁(13개)이 각각 결승타 부문 1위와 3위에 랭크됐다. 심정수(0.303)·양준혁(0.283)은 득점권 타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승부처에서 필요할 때마다 꼭 해결해주었다. 그렇다면 크루즈는 어땠을까. 올 시즌 크루즈의 득점권 타율은 3할3푼3리였으며 결승타는 심정수와 양준혁의 중간선상인 15개였다. 2008년 삼성은 2007년 결승타 부문 1~3위를 차지한 타자들을 모두 다 보유하게 된 것이다. 다만 수비 범위가 좁아 중견수로든 우익수로든 외야 수비에서 큰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점이 ‘지키는 야구’를 표방하는 선동렬 감독에게는 분명 위배되는 부분이다. 올 시즌 심정수처럼 경기 종반 리드 시점에서 선수교체 타이밍도 크루즈 영입 성공의 관건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