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대망의 2008년 무자년(戊子年) ‘쥐의 해’가 밝았다. 쥐는 십이지의 맨 앞자리는 차지한다. 농구로 치자면 1번, 포인트가드다. 프로농구계에도 쥐의 해를 맞이한 포인트가드가 있다. 바로 서울 SK ‘매직키드’ 김태술(24·183cm)이 주인공이다. 약삭빠르고 가볍지만 위기상황에 대한 예지력을 상징하는 쥐의 모습은 얼핏 김태술의 플레이와 닮았다. 김태술은 쥐의 해를 맞아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 성공적인 데뷔 SK는 2002-03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5시즌 연속으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997-98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한 나산-골드뱅크-코리아텐더(현 KTF)와 함께 최다기간 플레이오프 진출실패 기록으로 남아있다. 특히 ‘미스터 빅뱅’ 방성윤이 가세한 지난 2시즌 모두 6강 플레이오프에 좌절한 것은 SK에게 크나큰 아픔이었다. 고비 때마다 방성윤이 큰 부상을 당해 전열에서 제외됐고, 공격성향이 강한 선수들이 가득한 팀을 제어할 수 있는 포인트가드가 없다는 점도 SK에게는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그런 SK에게 김태술의 지명은 하늘이 내린 선물과 다를 바 없었다. SK는 올 초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내는 행운을 잡았고, 주저없이 연세대 출신 특급 포인트가드 김태술을 호명했다. 시즌 전 기대대로 김태술은 프로에 빠른 적응속도를 보이며 SK의 오래된 고질병들을 하나씩 치유해갔다. 시즌 초반 김태술은 마치 김승현(오리온스)의 데뷔 시절을 연상시키는 파급력을 일으켰다. 소속팀 SK도 2라운드까지 상위권을 지키는 등 예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김태술 개인적으로도 대학 시절 약점이었던 체력과 수비를 보강하며 프로무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해갔다. 그러나 2라운드 말미를 기점으로 김태술에게도 한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2라운드에서 3라운드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SK는 특별한 이유없이 4연패에 빠졌고 김태술은 팀을 구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부터 SK는 김태술을 원가드로 세우는 농구를 했다. 김태술이 잠시라도 부진할 경우 팀 전체가 난조에 빠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것이 공격에서든 수비에서든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경기 막판 승부처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플레이로 팀 패배를 부르기도 했다. 4연패 중 3패가 3점차 이내 또는 연장 접전 끝에 한끗 차이로 무너진 경기들이었다. 그 사이 함지훈(모비스)과 정영삼(전자랜드) 같은 특급신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김태술의 대항마로 떴다. ▲ 재조명받는 김태술 골밑을 ‘비비는’ 대체 외국인선수 자시 클라인허드의 합류로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SK는 그러나 지난달 21일 KCC전에서 방성윤을 또 다시 부상으로 잃고 말았다. 2시즌 연속 방성윤과 SK를 괴롭힌 부상악령이 다시 한 번 더 덮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2시즌과 달리 SK에는 김태술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물론 방성윤은 김태술의 패스를 가장 잘 받아먹는 주득점원이었고 그 공백이 쉽게 메워질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방성윤이 부상을 당한 KCC전부터 SK는 3연패를 당했다. 3경기 모두 3점차 이내 한 골이면 뒤바뀔 수 있는 접전 승부였다는 점에서 해결사 방성윤의 존재가 더욱 그리웠다. 하지만 3연패 과정에서도 SK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3연패 이후 2연승으로 2007년을 장식했다. 김태술이 그 중심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김태술은 방성윤이 부상을 당한 KCC전 포함 최근 5경기에서 무려 경기당 39.9분을 소화하며 평균 19.0점·7.6어시스트·4.8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무엇보다 프로 데뷔 후 꽁꽁 감춰둔 공격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최근 5경기에서 평균 10.6개의 야투를 시도하는 등 야투성공률 56.6%라는 고감도 슛 감각을 과시 중인 김태술은 3점슛도 경기당 2.0개를 터뜨리며 3점슛 성공률 50.0%(10/20)를 기록하고 있다. 방성윤이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김태술은 딱 한 경기만 20점대 이상 고득점을 올렸다. 방성윤뿐만 아니라 나머지 팀원들에게 득점 찬스를 봐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방성윤이 빠지자마자 연세대 고학년 시절처럼 더욱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최근 5경기 중 무려 4경기에서 20점대 이상 고득점을 기록했다. 승부처에서 던지는 중장거리슛은 방성윤의 슛 못지않게 상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렇다고 득점에만 매몰돼 포인트가드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학 시절 볼 수 없었던 골밑 패스 능력까지 향상된 느낌이다. 12월30일 인천 전자랜드전 승리의 결정타가 된 2차 연장전 래리 스미스의 골밑 바스켓 카운트도 김태술의 정확한 롭패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태술이 있어 방성윤 공백도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 김태술은 “나 자신이 흔들리면 팀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항상 냉정하게 플레이한다”고 말할 정도로 타고난 천상 포인트가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원주 동부 레지 오코사는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성공하는 선수가 정말 좋은 선수”라고 말했다. 김태술은 이제 포인트가드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팀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능력이 있음을 직접 입증해내고 있다. 리그에서 3번째이자 국내선수로는 LG 이현민(36.6분) 다음으로 많은 경기당 평균 36.1분이라는 출전시간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지친 기색 없이 팀을 지휘하고 있다. “경기하는 모습이 피곤해 보여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하는 생각들을 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태술의 말이다. 방성윤의 부상은 매우 큰 불운이었지만 김태술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재조명받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김태술로서는 함지훈과 정영삼의 대약진으로 위기를 맞았던 신인왕 레이스에서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