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대하사극 ‘대왕 세종’(윤선주 극본, 김성근 김원석 연출)이 벌써부터 인기다. 5, 6일 단 이틀 방송됐을 뿐이지만 이미 시청률 20%를 돌파해 동시간대 경쟁작들을 따돌리며 화제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왕 세종’에는 최근의 사극과는 달리 ‘전쟁’이 없다. 전작이었던 ‘대조영’을 비롯해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주몽’ 등 근래 인기를 끌었던 사극들은 대부분 칼과 화살, 그리고 피가 난무하는 큰 전쟁이 배경에 깔려 있다. 하지만 ‘대왕 세종’에는 이런 전쟁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외교적 마찰이 있고 왕조 교체기의 어수선한 혼돈이 있다. 최근의 사극들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영웅과 긴장감 때문이다.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반드시 영웅이 탄생했고 그러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진행된다. 그렇다면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대왕 세종’에는 긴장감이 떨어져야 옳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대규모 전쟁 못지 않은 팽팽한 긴장감이 초반부터 유지되고 있다. 행여나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제왕의 인간적인 모습이라도 훔쳐볼까 가슴 졸이는 형국이다. 연산군과 폐비 윤씨, 인현왕후와 장희빈 등과 같이 드라마로 만들어 내기에 딱 좋은, 익히 알려진 조선시대의 대형 스캔들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되레 조선의 기틀과 안정을 다지는 시기를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왕 세종’ 속 인물들은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고 때로는 살벌하기까지 하다. 이 같은 결과는 결국 대하사극을 진화시킨 KBS의 힘이다. 보통 한 드라마가 끝나고 후속작품이 등장하면 판도가 출렁이는 게 상례다. 그 예외적인 분야가 바로 KBS의 대하사극이고 일일-주말 가족드라마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노하우를 끊임없이 전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매너리즘이 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대하사극 분야에서는 아직까지는 진화하고 있다. 그 흐름이 ‘대왕 세종’에서 느껴지고 있다. ‘대왕 세종’이 지금의 기세를 몰아간다면 하나의 전기로 기록될 듯하다. 전쟁이 없이도, 또는 눈에 띄는 정쟁이 없이도 성공한 대하사극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마치 MBC TV의 공화국 시리즈,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제5공화국’을 보는 듯 우리에게 친밀한 역사로 재인식 된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비교적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라고 여겨지던 세종대왕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은근한 충격이다. 장자인 양녕이 아우인 충녕에게 왕위를 양보하게 된 정치적 배경, 왕조 교체기의 사회 혼란을 안정시킨 바탕, 중국의 신흥왕조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 등 현대 정치 이론을 적용해도 하등의 하자가 없는 요소들이 이 드라마에 있다. ‘대왕 세종’은 대형 사건이 주는 흥미위주의 사극에서 역학관계의 이해로 진화하는 KBS 사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0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