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의 거장이 무너졌다. SBS TV ‘왕과 나’를 연출했던 김재형 PD가 마지막까지 메가폰을 잡지 못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결국 중도하차 했다. 드라마 준비과정에서 췌장염을 앓는 등 불안한 조짐이 있기는 했지만 김재형 PD의 중도하차는 최근 ‘왕과 나’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들과 겹쳐 아쉬움으로 남는다. ‘왕과 나’는 사극 최초로 내시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소재적 특성과 드라마 초기 아역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이후부터는 계속 악재만 이어졌다. 아역 배우들이 다져놓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성인 배우들에 대한 캐스팅 논란이 일더니 스토리라인이 흔들린다는 핵심적인 비판까지 터져 나왔다. 급기야는 늦은 대본 출고를 둘러싸고 ‘왕과 나’ 출연배우 전인화의 남편 유동근이 스태프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왕과 나’는 후발주자인 MBC TV ‘이산’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채 지리멸렬하고 있다. 김재형 PD의 중도하차가 아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건강 악화라는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경쟁력 약화라는 불명예스러운 사건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사극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재형 PD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왕과 나’가 248번째 작품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SBS 사극의 토양이다. 근래 SBS에서 방송된 사극들의 행보를 보면 그 토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4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연개소문’이나 ‘대장금’의 명콤비 이병훈 감독-김영현 작가를 초빙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한 ‘서동요’ 모두가 기획단계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연개소문’은 초반부에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전투신으로 눈길 끌기에는 성공했으나 후반부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해 결국 용두사미격이 됐다. 지금의 ‘왕과 나’와 너무나 흡사하다. ‘사극 필패’라는 말이 나올 법한 SBS와 달리 ‘사극 불패’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방송사도 있다. 대하사극에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미해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는 ‘대왕 세종’의 KBS다. 직전 작품인 ‘대조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승승장구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불멸의 이순신’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 굳이 손에 꼽기도 벅찰 정도로 대하사극에서만은 대단한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왕과 나’로 사극 거장의 행보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게 된 김재형 PD도 KBS 사극의 기틀을 쌓은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사극의 토양을 말하는 것이 분명 억지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연개소문’에 관여했던 한 SBS 제작 관계자가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경험이 일천한 환경에서 100회에 이르는 대하사극을 이뤄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100c@osen.co.kr 건강상의 이유로 ‘왕과 나’에서 중도하차 하게 된 김재형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