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강한 남자', 소리없이 강하게 은퇴하다
OSEN 기자
발행 2008.01.08 15: 14

[OSEN=이상학 객원기자] 지난해 6월22일 대구구장. 홈팀 삼성은 연장 10회말을 앞두고 1-2로 한화에 뒤지고 있었다. 한화 마운드에는 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 구대성이 서 있었다. 패배의 그림자가 짙어졌지만, 삼성은 대타 김종훈의 안타를 시작으로 2사 만루 역전 찬스를 만들었다. 타석에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그가 들어섰다. ‘소리없이 강한 남자’ 김한수(37)였다. 김한수는 구대성의 초구를 받아쳐 좌익선상 끝내기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는 입가에서부터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이는 선수 김한수의 마지막 미소가 되어버렸다.
▲ 소리없이 은퇴
삼성 베테랑 내야수 김한수가 은퇴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삼성 선동렬 감독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시즌 중에도 “박수칠 때 떠나라”며 우회적으로 베테랑들의 은퇴를 종용했다. 삼성은 지난 1997년 이후 대대적인 야수진 세대교체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공교롭게도 1997년 당시 신진세력으로 떴던 김한수는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르자 용퇴 대상이 되고 말았다.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바뀐다고 했다. 김한수의 입지도 세월의 흐름을 꺾지 못하며 점점 좁아들고 있었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주위에서는 “김한수가 내년 시즌까지 현역으로 뛰길 원한다”는 소리가 나돌았지만, 결국 김한수는 스스로 유니폼을 벗었다.
김한수의 은퇴 과정은 그의 선수생활처럼 요란함없이, 소리없이, 조용하게 그리고 큰 잡음없이 진행되고 결정됐다. 과연 김한수다운 은퇴 과정이었다. 많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은퇴과정에서 구단과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구단은 구단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마음만 상했다. 그 과정에서 팬들은 스타의 초라한 말미에 가슴 아파하고, 구단의 야박한 대우에 성토했다. ‘아름다운 은퇴’라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김한수의 경우에는 지난 2004년 말 구단과 맺은 4년짜리 FA 계약이 1년 남아있었다는 점에서 은퇴를 두고 무성한 잡음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김한수는 소리없이 순탄하게 은퇴했다.
김한수는 삼성에서 매우 특별한 선수로 남게 됐다. 광영고-중앙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4년 삼성에 입단해 지난해까지 줄곧 삼성에서만 활약했다. 삼성에서 데뷔해 삼성에서 은퇴한 것이다. 삼성의 역대 프랜차이즈 스타 중에서는 류중일이 유일하게 삼성 한 팀에서만 활약한 뒤 은퇴식까지 치렀다. 이만수는 은퇴 과정에서 구단과 마찰을 빚다 결국 은퇴식없이 쓸쓸하게 물러났다. 삼성 구단은 은퇴를 결심하고 코치로 변신한 김한수를 위해 은퇴식을 열 계획이다. 김한수는 류중일에 이어 삼성 구단 사상 두 번째로 삼성에서만 활약하고 은퇴식을 갖는 선수가 될 전망이다. 김한수는 FA 제도가 도입되며 프로야구에 본격적인 자본화 바람이 분 시점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선산의 고목나무처럼 삼성을 지켰다.
▲ 최고의 3루수
김한수는 순전히 삼성이 발굴하고 키워낸 몇 안 되는 순수혈통 선수였다. 특히 ‘핫코너’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만 무려 6차례나 수상했다. 1998·1999년 2년 연속 수상에 이어 2001·2002·2003·2004년에는 4년 연속으로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독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 한 해를 빼놓고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자리는 아예 김한수가 전세내고 독점했다. 김한수는 현재 삼성 수석코치로 있는 한대화와 함께 한국야구 최고의 3루수로 기억될 만하다. 타격도 좋았지만, 수비만 놓고 볼 때는 3루수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연한 글러브질, 강한 어깨, 빠른 판단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김한수를 수비만 잘하는 수비형 3루수로 치부하기에는 그의 타격이 너무 아깝다. 김한수의 프로 14년 통산 타율은 2할8푼9리다. 이는 역대 통산 19위에 해당하는 고타율이다. 여기에 1998년(0.300)·1999년(0.340)·2001년(0.311)·2002년(0.311) 등 무려 4시즌이나 규정타석을 채우며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할9푼대 이상 고타율도 7시즌이나 마크했다. 또한, 주전으로 활약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타율 2할9푼4리·13.4홈런·71.1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한 타자였다. 주로 5~7번 타순에서 묵묵히 안타를 생산하면서 심심찮게 장타를 터뜨렸고, 중요할 때마다 해결사 노릇을 해내기도 했다. 게다가 프로야구 통산 사구 부문에서도 역대 2위(148개)에 랭크될 정도로 신사 같은 겉모습과는 또 다르게 몸도 사리지 않았다.
전성기 김한수는 다른 선수들이 많아야 3~4개에 불과하다는 타격 포인트가 무려 10개에 이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타격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어떤 공이든 정확한 타점에서 맞혀 나가는 재주가 있었다. 배트 컨트롤도 훌륭했고, 배트 스피드도 빨랐다. 스윙 매커니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받았으나 타고난 타격 감각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처럼 타고난 수비와 타격을 겸비한 ‘최고의 3루수’ 김한수를 국가대표에서도 외면할 수 없었다. 1999년 서울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등 한국야구 영광의 순간에는 김한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대회 전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영광을 함께 할 수도 있었다.
▲ 강한 은퇴
지난 7일 삼성은 2008년 첫 훈련을 가졌다. 이날 삼성은 13년 만에 교체한 유니폼을 새로 발표했다. 진부한 스타일이 된 기존 박스형을 벗어던지고 세련된 스타일의 버튼형으로 유니폼 상의를 산뜻한 블루색상으로 바꿨다. 선수들도 새로운 유니폼과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다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훈련이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김한수였다. 선수라는 직함을 뗀 김한수는 이제 코치가 됐다. 이날 훈련은 김한수가 코치로 나서는 첫 훈련이기도 했다. 우리 나이로 불혹이 된 2년 선배 양준혁이 힘차게 타격훈련을 하는 동안 김한수는 선수들의 티배팅을 돕는 코치가 되어있었다.
올 시즌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하게 된 김한수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굳은 각오였지만, 이날 훈련장에서는 그간의 마음고생을 떨친 듯 환한 모습을 보였다. 선수 김한수에게서 미소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야구를 위한 수도승처럼 그라운드 안에서 김한수의 표정은 언제나 결연했다. 하지만 코치로는 달라진 모습을 예고했다. “후배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도한다면 잘 될 것”이라며 애정을 지닌 지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선수로 남긴 미련을 뒤로하고 이제는 경쟁자가 아닌 제자가 된 후배들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지였다. 소리없는 은퇴지만 대의를 위한 강한 은퇴가 맞는지 모른다.
김한수는 팬들에게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성원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들은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활약하고 소리없이 강한 은퇴를 선언하며 영원한 삼성맨으로 남은 김한수가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삼성이 경산 볼파크에서 2008시즌 첫 훈련을 가진 지난 7일 김한수 코치가 실내 훈련장 내 안전망을 옮기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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