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기'를 찍고나서 문소리는 2007년 가을 내내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했던 이 블록버스터 사극 드라마에 대해 거의 입을 다물었다. 지난 연말 MBC 연기대상 시상식이 '태왕사신기'를 위한 축하잔치나 다름없었음에도 문소리는 그 자리를 멀리 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살짝, 아주 살짝 입을 열었다.
새해 어느 날 새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10일 개봉하는 그녀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실례를 무릅쓰고 '태왕사신기'로 첫 질문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태왕사신기' 일정은 겹쳐있었다. 영화 해외촬영을 위해 그리스를 다녀오고, 사전 제작이라던 '태왕사신기'는 방송 시간에 쫓기면서 잠시 쉴 틈 조차 갖지 못했다.
"8월말에 그리스에 갔다오면서 영화 촬영은 끝났어요. '태왕사신기'는 10월 초에야 마쳤는데 살이 아주 쪽 빠지더라고요. 사극 판타지 대작을 영화에서는 해보기 힘드니까 욕심을 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처음 출연 제의 받았을 때하고는 모든 게 너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그런 캐릭터(문소리의 배역)가 아니었는데 자꾸 수정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거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끝내 안바뀌더라고요."
배용준을 위한, 배용준에 의한, 배용준의 드라마에서는 국내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 칭찬을 듣는 문소리도 자기 목소리를 낼 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라마 초반 촬영 때 100% 집중을 하지 못한게 오히려 죄송했다"며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연기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태왕사신기'를 끝냈다.
친정격인 영화로 돌아와서 문소리는 다시 행복해졌고 말수도 늘어났다. "여자 감독(임순례)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나도 이번에는 감독과 배우의 삶을 동일시한 것같아요. 마치 홍상수 감독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처럼요. 배우라는 직업이 유일하게 좋은 점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한 작업을 마칠 때마다 인생의 한 부분을 더 배우는 거예요. 이번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런 영화입니다." 짧은 헤어컷으로 스타일을 바꾼 문소리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난 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열악한 지원 환경을 딛고 명승부를 펼치며 선전했던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얘기다. 여자핸드볼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미숙이 문소리의 역할. 비인기종목답게 미숙은 소속팀의 해체로 핸드볼을 접고 대형마트 점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한 때의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혜경(김정은)이 위기에 처한 국가대표팀 감독대행으로 복귀하면서 노장 선수들을 하나 둘 불러모으고 미숙도 청춘을 불태웠던 코트로 돌아간다.
이 영화의 재미는 재능있는 여자 연기자들이 진심으로 하나가 됐을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서 비롯된다. 이들은 숙식을 같이하며 동료애를 나눴고 눈에서 눈물이 쏙 빠져나올 정도의 단체훈련을 소화했다. 영화 촬영이 끝났을 때는 끈끈한 선후배와 동료애로 중무장됐고 영화 홍보를 위해 '놀러와' '야심만만' '상상플러스' 등 출연 가능한 예능 프로 모두와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찾아다니는 열성을 보였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다는 얘기다. "요즘 영화는 20대 초반 관객들이 움직여야 뜨는 데, 젊은 사람들한테 핫(HOT)한 아이템이 아니라서 걱정이 됐었다"며 "그래서 평소 예능 프로 출연에 자신이 없었는데 앞장서서 열심히 했다"고 밝게 웃는 문소리, "다행히 정은, 지영 등과 함께 다니니까 생각보다 재밌고 반응도 좋았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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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