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테이너, 베일 속 ‘신비로움’이 더 좋았나
OSEN 기자
발행 2008.01.09 10: 12

‘아나테이너’, 이 신조어가 연초부터 화두다. 이런 명칭이 만들어 진 것 자체가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이 낱말이 그토록 빨리 식상해 지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좋은 예가 MBC 문지애 아나운서의 ‘웃음 사고’다. 문 아나운서는 지난 7일 저녁 뉴스를 진행한 후에 클로징 멘트를 하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방송사고를 냈다. 방송사에서는 ‘사레 들렸다’고 해명을 했지만 그 파장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진 두드러진 현상 한 가지는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관련 사이트나 기사에 따라붙은 네티즌의 댓글 인심이 여느 때와 달리 사납다. 물론 이날 전해진 뉴스 자체가 경기도 이천 화재 참사였다는 사실이 달리 변명을 할 수 없게 만들기는 했지만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인식이 예사롭지 않음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문지애 아나운서, 최근 MBC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아나테이너’의 한 사람이다. 핵심 예능 프로그램인 ‘지피지기’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면서 얼굴 알리기에 나섰는가 하면 최근에는 ‘행복 주식회사-만원의 행복’의 주인공이 돼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런 문지애 아나운서가 ‘웃음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였다. 댓글에 드러난 민심은 종전의 아나운서를 대하는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아나운서의 인간적인 실수담’이 아닌, 음주나 교통사고 같은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과 동급으로 자리잡고 있다. 만약 문 아나운서가 아나테이너로 주가를 날리고 있는 주인공이 아닌, 보통 아나운서였다면 어땠을까. 방송사에서 전략적으로 ‘아나테이너’를 표방한 순간, 함께 안고 가야 할 업보 같은 건 아니었을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SBS의 모 여자 아나운서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나운서가 예능인이 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다”고. 프로그램 진행자라는 고유 영역이 개그맨이나 탤런트 같은 예능인에 의해 끊임없이 잠식당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나가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논리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이렇다. “우리는 가수보다 노래도 못하고, 개그맨보다 웃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연기자들처럼 타인의 삶을 그럴듯하게 살지도 못한다. 그걸 알면서도 ‘망가질’ 준비가 돼 있다.”
최근의 아나테이너에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이런 딜레마다. 그들은 사리에 맞아 떨어지는 언변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잘 다듬어진 사람들일 뿐이지 결코 빼어난 외모로 어필하거나 남다른 가창력과 연기력, 또는 개그로 승부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의 전략은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 부르면서, 뛰어난 순발력으로 상대방을 웃길 줄도 아는 ‘아나테이너’를 원했다.
사실 아나운서가 가장 매력적일 때는 지금은 은퇴한 KBS 노현정이 그랬던 것처럼 신비로움의 베일을 쓰고 그 베일을 한 꺼풀씩 벗어가던 시절이었다. 근엄한 아나운서(게다가 얼굴까지 엄청 예쁜)가 개그맨의 짓궂은 장난을 재치 있게 받아 넘기는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독특한 매력을 찾았다. 억지로 웃음을 참아내는 모습에서 같이 웃었다.
지금처럼 대놓고 엔터테이너가 되어 달라고 하니, 그들은 말 그대로 “가수만큼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하고 댄서만큼 춤을 잘 추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이들이 되고 말았다. 시청자들이 주문하는 ‘아나테이너’는 아나운서라는 특성을 살린 극히 일부분의 모습이었던 것을 방송사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간과했던 탓이다.
문지애 아나운서에게 내려진 즉각적인 징계 조치도 결국은 방송사가 자초한 아나테이너의 굴레를 서둘러 수습하기 위함은 아닌지 괜스레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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