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짙은 검은머리로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1월 8일 낮 12시, 잠실구장 앞에서 만난 그는 “평소 머리카락 색깔이 약한 갈색이어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검은 머리칼이 보다 강한 인상을 준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는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이 “장차 두산의 타선을 이끌 재목”으로 점찍고 있는 김현수(20)이다. 김현수는 2006년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 1년 남짓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다가 2007시즌 초반 1군으로 올라간 이후 주전 좌익수로 발돋움한 유망주. 올해 두산 타선에서 가장 눈여겨봐야할 타자이기도 하다.
김현수는 작년 시즌 한국시리즈를 거쳐 상비군에 뽑혀 2008베이징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의 선배들과 맞붙는 경험을 쌓았고, 오는 15일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을 앞두고 체력단련이 한창이다. 그 동안 모교인 신일고 야구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해온 김현수는 최근엔 동네(서울 쌍문동) 헬스클럽에 나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올해 목표는 어찌보면 소박하다. “확실한 주전 확보와 126게임 전 게임 출장”이 김현수가 내세운 목표이다. 노골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두산 중심타선에 들어가는 것 또한 그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희망이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근황을 알려달라.
시즌 때 버릇이 남아 오전 11시께 일어나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점(아침과 점심 겸용)’을 먹고 오후에 운동을 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대개 TV를 시청하는데 무한도전 같은 웃기는 프로그램을 본다. 드라마는 안본다. 슬픈 프로보다는 웃기는 프로를 보면 기분이 좋아 주로 보는 편이다.
-한국시리즈를 치러본 소감은.
관중이 꽉차고 환호소리가 큰 데서 경기를 하니까 너무 좋았다. 계속 나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승은 못했지만 다음에는 꼭 해보고 싶다. 김재현(신일고 선배) 선배가 MVP상을 타는 것을 보니 너무 부러웠다.
-작년에 상비군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다. 박찬호 같은 대선배들과 맞겨뤄 본 느낌은.
박찬호 선배와 3차례 타석에서 맞섰는데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직구는 그런대로 노릴만했으나 변화구는 위력적이었다. 오승환, 나승현 두 투수에게서 홈런을 쳐냈다. 운이 좋았다. 류제국 투수는 처음 봤는데 공이 좋았다. 대표선수들 보면 부럽다기보다 실력이 좋아야 올림픽 같은데를 나가니까 나도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2군에서 올라와 1년간 1군에서 생활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주전으로 뛰어보니 투수들 컨트롤이 좋고 변화구를 잘 던진다.
-올해 목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더 노력해서 주전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수비나, 주루플레이, 배팅 등 모든 면에서 보완해야 한다. 캠프 때 집중보완할 작정이다.
-백인천 전 LG 감독은 작년 한국시리즈 기간 중에 잠실구장에서 “김현수는 야구 센스가 아주 좋은 선수이다. 발도 느리지 않고 앞으로 이승엽 같은 대선수가 될 자질이 있다”고 극찬한 적이 있다. 타격지도는 어떻게 받는가.
너무 과분한 말씀이다. 2군에 있을 때부터 김광림 타격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같은 왼손타자 출신이고, 너무 잘 가르쳐 주신다.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김광림 코치의 덕분이다.
-예전에 양준혁 선배를 본받아야한다고 한 적이 있다. 존경하는 야구선수는.
양준혁 선배는 야구를 너무 잘 하신다. 배워야 될 선배이다. ‘저렇게 되보고 싶다’는 선수는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후쿠도메 고스케이다. 후쿠도메는 강한 어깨, 수비능력, 빠른 발, 뛰어난 배팅 능력을 고루 갖춘 타자이다. 아주 정교하고 갖출건 다 갖췄다. 나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올해 두산 팀내에서 좌익수 자리를 다툴 선수는.
유재웅 선배 등 외야수 모두가 다 경쟁상대이다.
-일본 라쿠텐 이글스의 노장감독 노무라 가쓰야(73)는 선수들에게 ‘어쨋든 뛰고 또 뛰어라’고 늘상 강조하는 지도자이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중심이 잘 잡혀야하고, 그런 면에서 하체 운동이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 때도 스쿼트를 열심히하고 있다. 전지훈련에 가서도 남들보다 더 많은 훈련량을 쌓을 것이다. 그래야 산다.
신일고 3학년 때‘이영민 타격상’을 받았던 김현수는 대학 진학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오로지 프로선수로 입신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먹고 어렵사리 신고선수 신분으로 두산 유니폼을 2006년에 입었다. 첫 해 2군에서 고생한 후 올해 1군으로 올라와 ‘테이블세터’ 노릇을 충실하게 해냈다. 특히 시즌 막판 요긴할 때마다 영양가 만점의 타격으로 팀 승리를 거들었다.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차례 모두 선발 출장, 10타수 5안타, 2타점 1홈런, 2도루로 활약했던 김현수는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들어서도 주눅들지 않고 2번타자 겸 좌익수로 팀 승리에 징검돌을 놓는 좋은 타격을 선보였다. 그의 타격 솜씨는 나날이 진화, 상승 궤적을 그려왔다.
김현수의 배번은 50번이다. 두산에 입단 한 후 등번호를 고를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남는 번호’ 중에서 골라 50번을 달게됐다. 그 50번이 점차 팬의 눈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타격 순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2007시즌 신인왕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던 김현수는 이종욱(28)과 함께 막강한 테이블 세터를 이루며 99게임에 출장, 타율 2할7푼3리(319타수 87안타), 5홈런 32타점, 33득점, 5도루로 반달곰 타선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연봉(2000만 원)도 대폭 인상이 확실하다.
김현수의 사전엔 ‘남들만큼’은 없다. ‘남보다 더 힘들게’가 그의 훈련 모토이다. 그 게 김현수가 프로야구 바닥에서 터득한 생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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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의 사전엔 남들만큼은 없다. 남들보다 더 힘들게 뛰어야한다고 늘 생각한다. /잠실구장=황세준 기자 storkjoo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