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안현수, "하늘이 준 6연패 기회 놓치지 않겠다"
OSEN 기자
발행 2008.01.10 08: 23

지난 9일 고요했던 태릉선수촌은 2008년 훈련 개시식으로 굉장히 분주했다. 특히 2008년은 올림픽의 해라 금메달에 도전하는 하계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많은 취재진이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그러나 이렇듯 분주했던 선수촌에서 묵묵하게 훈련에만 열중하던 선수들이 있었다. 바로 스케이팅을 비롯한 동계 종목 선수들. 특히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쇼트트랙 선수들은 조용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쇼트트랙 사상 첫 세계선수권 남자부 6연패에 도전하는 안현수(23)는 피곤한 모습이었다. 평소 오전 5시에 기상해 6시부터 8시까지 스케이팅 훈련을 실시하는 안현수에게 따뜻하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은 오히려 휴식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보였다.
▲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3남 1녀의 장남.
172cm, 63kg의 크지 않은 체구에 곱상한 얼굴을 지녀 막내로 오해받는 안현수는 의젓한 장남이었다. 집안의 큰 아들로 많은 기대와 배려를 받고 지낸 그는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에 태어난 막내를 비롯해 동생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항상 부모님의 관심은 저에게 집중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생들에게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스케이트 끈을 더욱 조여 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완전한 성인이 됐기 때문에 저 혼자만의 스케이팅이 아닌 가족 모두의 스케이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23살 청년의 말치고는 너무 어른스러웠다. 그러나 안현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러한 인식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신목고등학교 1학년 재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안현수는 현재 쇼트트랙 국가대표 중 서열 2위. 쇼트트랙 선수들의 수명이 늘어났지만 양궁과 함께 올림픽 금메달 따내기보다 어렵다는 쇼트트랙 국가대표의 자리는 안현수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했다.
초등학교 시절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을 제치고 꼬마 현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스케이트였다. 특별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꼬마 현수의 마음은 아이스링크로 옮겨갔고 그의 스케이트 인생은 시작됐다.
▲ 23살 그리고 대표팀 서열 2위.
명지중학교를 거쳐 신목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안현수는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당시 김동성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도태되는 한국 쇼트트랙의 현실에 부합되게 17살의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의 쇼트트랙은 세대교체가 굉장히 빠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재능 많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최근 실업팀이 늘어나며 선수 생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도 훌륭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표팀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임무이기 때문에 개인훈련 외에도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생. 안현수의 말처럼 선수 수명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캐나다와 미국 등 쇼트트랙 경쟁 국가에 비하면 연령층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올 2월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는 사회 초년병인 안현수는 대표팀에서 노장 축에 속한다.
"이제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많은 걱정이 됩니다. 그동안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지만 더이상 그것을 바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혼자 극복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하늘이 준 세계선수권 6연패 기회
지난 2007년 3월 안현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5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여자부에서는 이미 중국의 양양A가 연패를 달성한 적이 있지만 5연패도 대단한 기록이었다. 그는 오는 3월 7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서 남자 쇼트트랙 사상 전무후무한 6연패에 도전한다.
"3번째 우승까지는 큰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4번째 대회부터는 부담이 많이 됐습니다. 특히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열린 대회서는 기적과 같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6연패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지난 대회 첫 번째 종목이었던 1500m서 5번째로 들어오며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긴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중간에 링크에 미끄러지는 실수를 했고 이것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습니다. 미끄러진 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끝까지 결승선을 통과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 다섯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먼저 골인한 2명이 실격 처리가 돼 5등으로 들어온 저는 동메달을 획득하게 됐습니다. 그것을 발판삼아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기적과 같이 5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이처럼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관심이 적어진 쇼트트랙을 위해서 꼭 6연패를 달성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동계 올림픽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서 지난 2003년 이후 최고의 자리에 있는 안현수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빙판의 요정' 김연아(18)에 대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올림픽 때를 제외하고 동계 종목이 각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연아의 인기가 높은 것에 대해 저도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부럽기도 하지만 저는 제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입니다. 그것이 쇼트트랙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한 명의 팬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그저 좋을 뿐입니다".
쇼트트랙에도 서포터스가 있다. '블루 히어로즈'라고 명명된 동계종목 서포터스들은 외국 원정까지 따라가며 큰 애정을 보이고 있다. 안현수는 이러한 서포터스들에 대해 많은 인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지도자로 남고 싶다
안현수는 평범한 지도자가 아닌 학문적인 발전을 통해 체육계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한국체육대학교 졸업과 함께 동 대학원에 입학하는 안현수는 성남시청 선수로 두 가지 인생을 살게됐다.
"성남시청의 입단은 많은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이미 많은 학교 선배들이 있던 것도 장점이었고 선수생활을 접은 후에도 여러 가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쇼트트랙 선수 출신은 대부분 후진 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였던 김기훈 코치님을 비롯해 모든 분들이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보다는 좀 더 체육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도 결심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현수에게 최종 목표를 물었더니 대답은 걸작이었다. 바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침이 많았던 쇼트트랙계에서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안현수는 겉모습과는 내면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해왔던 운동으로 허벅지가 굵어져 책상다리도 못하고 멋을 낼 수 있는 스키니진도 입지 못하는 그였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는 이미 '멋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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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준 기자 storkjoo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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