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이자 MC로서 강호동의 15년 끊임없는 인기를 어떻게 설명할까? 호감과 비호감으로 확실히 구분되는 그에게는 안티팬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진행 또는 출연하는 프로마다 고정 시청률을 유지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천하장사 출신이라 힘이 좋아서일까.
민속 씨름이 인기 절정이었던 시절, 모래판에서 강호동은 최연소 천하장사였다. 그러나 그가 정상에 섰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늦게나마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을 꿈꿨다"는 이유로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모래판을 차고 나오더니 엉뚱하게 이경규의 꼬임(?)에 넘어가 개그맨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승승장구 15년 세월이다.
지난 연말 강호동은 SBS 방송연예대상을 받았다. '야심만만' '스타킹' 진행의 공적을 인정받아서다. 그렇다고 그의 활약이 SBS에 국한됐던 건 절대 아니다. 지상파 TV 3사 모두가 주요 예능 프로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 의존하고 있다. 다만 톱 MC 서너명이 지상파 예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나눠먹기 식으로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을 뿐이다.
해마다 히트작 한 편씩은 꼭 나온다
'X맨'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 했던 강호동은 지난해 초 양쪽 볼에 연지 찍은 강무릎팍 도사로 다시 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스타, 유명인사들이 그의 점집에 들어갔다가 하얀 속살을 쿡쿡 찌르는 질문들에 무방비로 당했다. 각종 TV 오락, 교양 프로들에서 왕처럼 떠받들어지던 유명 게스트들을 역으로 혼내고 진실게임을 시키는 강호동의 새로운 필살기가 돋보였던 프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무릎팍 도사'에 이어 MBC '무한도전'이 독주하던 리얼버라이어티쇼 분야에도 진출했다.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코너다. '무한도전을 표절했다 아니다' 논쟁과 상관없이 '1박2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시청률도 올라가고 고정팬이 늘어나는 중이다.
자신을 비롯해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 MC몽 김C 등 6명으로 멤버를 꾸렸다. 초반 캐릭터 설정에 고전하나 했더니 몇 차례 멤버 교체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포맷 자체는 분명히 '무한도전'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1박2일'은 후발주자로서 차별화 된 무엇을 선보였다. 그것은 바로 메인 MC 강호동의 별난 카리스마다.
유재석과 달리 강호동은 멤버들을 윽박지르고 온갖 심술, 잔꾀를 부리는 악역이다. 꽥꽥거리는 듯한 하이톤 목소리에 도저히 방송형으로 볼수없는 사투리 억양이 여전하지만 쉬지않고 뿜어져나오는 입담과 행동으로 제각각의 멤버들을 끌어가고 있다. 강호동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시청자들이 히히대거나 구시렁거리면서 채널을 고정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다.
업어치기 한판으로 무대를 제압하다
강호동의 개그 인생은 곧게 뻗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구비구비 돌아가는 산길을 닮았다. '행님아'로 그 옛날 향수를 자극하며 돌풍을 일으키나 했더니, 어느 새 연예인 마담 뚜('강호동의 천생연분')로 타고난 입심을 자랑했다. 이어 '야심만만' '뷰티풀 선데이' '실제상황 토요일' 'X맨 일요일이 좋다' 등 숱한 출연 프로에서 타고난 순발력과 재치로 무대를 제압했다. 업어치기 한판이다.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던 개그맨과 MC들 가운데 상당수가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감췄거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본인이 자신의 컴플렉스로 얘기하는 '대학 전공도 아니고 정통 개그맨 출신이 아니'면서 그를 버티게 만든 건 바로 씨름을 하며 배운 근성과 체력이다. 그는 "MC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라며 "긴 방송 촬영 도중에 MC가 지쳐버리면 누구를 웃길수 있겠느냐"고 강조한다.
먼저 얼굴 생김과 산만한 덩치 부터가 위압적이다. 천하장사 출신 답게 가끔 힘 쓰는 모습만 봐도 기가 질린다. 박명수가 방송 중에 "예전에 강호동이 한번 싸우는 걸 봤는데 정말 무섭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예능 프로 MC로는 마이너스 요건들이다. 또 늘 힘으로 해결하는 듯한 그의 진행 방법도 안티팬을 양산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강호동은 자신의 이같은 단점을 근성과 체력, 돌격정신으로 이겨내 왔다. 어느 프로에서건 그는 온몸을 던져 웃음을 유발한다. 자신을 모르모트(실험용 쥐)와 우스갯 거리로 기꺼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변신에 능하다
강호동은 시류를 읽고 변신할수 있는 몇 안되는 MC 가운데 한명이다. 올해 38살,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젊은 층의 감각에 맞춰야하는 오락 프로 MC로서 늘 손색이 없다. 바뀌는 유행에 따를 줄 알고 그 때 그 때 시청자들이 원하는 액션과 재담을 쏟아낸다. 폭 넓은 연령층의 연예계 지인들과 친분을 쌓아 얘깃거리를 늘리고, 임기응변 유머의 토대가 될 교양 공부 등 자기 개발에 게으르지 않은 덕분이다.
그의 이같은 생존 노력을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 바로 '무릎팍 도사'다. 이 코너에서 만큼은 게스트는 왕이 아니다. 일단 무릎을 꿇어 앉아야 한다. 그들은 꺼내고 싶지않지만, 시청자가 듣고 싶은 가슴 속 얘기들을 꺼내야한다. 곤란해서 얼굴이라도 찡그릴라 치면, 그 얼굴이 그대로 방영된다.
시청자들이 지치고 짜증날 때였다. '게스트는 왕'이란 소리가 나올 만큼 그동안 지상파 3사의 오락, 교양 프로는 스타 섭외에 목을 맸다. 그러다보니 탤런트 가수 영화배우 등 뭔가 홍보에 목적이 있는 스타들을 초청해서는 이들의 신변잡담 듣기에 바빴다. 제사보다 젯밥이 먼저였다.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는 이처럼 시청자의 가려운 욕구를 긁어준 덕분에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굵고 길게 사는 MC 강호동, 그의 끊임없는 변신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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