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프로야구, 모두의 책임
OSEN 기자
발행 2008.01.12 09: 42

[OSEN=이상학 객원기자]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해체 위기의 현대 유니콘스를 모태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추진하던 KT가 지난 11일 창단 추진 백지화를 공식 발표했다. KT는 ‘다른 구단들의 반대와 한국야구위원회(KBO)와의 협상 갈등’을 이유로 프로야구에 발을 뺐다. 이로써 프로야구는 지난 1990년 이후 18년 만에 다시 7개 구단 체제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에서 현대의 회생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잊혀질 만하면 궂은 날씨와 함께 엄습하는 신경통처럼 다 해결된 줄 알았지만 결국 재발하는 암세포처럼 현대 문제는 프로야구의 지긋지긋한 악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이제 기득권은 없다
KT는 ‘KBO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KBO는 협상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KT에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종전 농협과 STX에 이어 KT에까지 3연타석 삼진을 당함으로써 KBO의 협상력은 이제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KBO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은 가는데 확실한 대안이 없었다. 협상에서 조정력을 발휘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물론 절차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한 것은 분명 KBO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KT를 끌어들인 후 구단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하지만 KT가 창단 추진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구단들의 반발이었다. 반발이 가장 심했던 구단은 역시 KT의 ‘서울 무혈입성’에 기를 쓰고 반대한 두산과 LG였다. 두산과 LG는 나머지 5개 구단들과 함께 ‘8개 구단 체제’라는 프로야구의 대전제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서울 연고권 및 영업권이 문제였다. 두산과 LG는 신상우 총재가 KT의 프로야구단 창단 추진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에 함께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KT 입성 반대’라는 수위 높은 공동 성명서를 함께 발표했다. 서울이라는 빅마켓을 양분하고 있는 구단으로서 기득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까지 다분히 포함된 발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KT가 완전하게 발을 뺌으로써 향후 두산과 LG의 기득권이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매우 불투명해졌다. 두산과 LG는 KT가 철수한 뒤 KBO의 일 처리를 문제 삼으며 ‘서울 입성금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이제 프로야구단은 공짜로 주려해도 거절하는 매력없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재계서열 7위의 대그룹 KT를 협상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두산과 LG의 기득권을 넘어선 이기주의가 결국 발목을 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과연 향후에도 두산과 LG가 기득권을 내세울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 비이성적인 프로야구
하지만 두산과 LG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프로야구가 처한 궁극적인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비단 두산과 LG뿐만 아니라 나머지 구단들 입장에서도 순수하게 실리라는 면에서 KT의 서울 무혈입성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8년 전만 하더라도 SK는 250억 원을 투자해 프로야구에 뛰어들었고, 그 이듬해 KIA도 21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5년 현대는 태평양을 무려 47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2008년 1월 현재, 프로야구단 가치는 60억 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연간 150억~200억 원에 가까운 적자 폭은 경제원리에 입각할 때 매우 비이성적이다.
구단들은 자산 가치가 깎이는 동안 적자 폭을 줄이고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창출하려는 움직임보다는 당장 눈앞에 떨어진 성적에 눈이 멀어 암을 키우고 말았다. 프로야구 시장 몰락은 신경쓰지 않고 제 배 불리기에만 급급했다. 특히 구단 운영비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결국에는 암덩어리가 됐다. 스타급 선수들은 대박에만 혈안이 됐고, 선수협의회는 어느덧 그들의 이익단체로 변질돼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희생하려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정년이 짧은 만큼 젊을 때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한탕주의에 물들어 있다. 돈에만 매몰될 뿐 선수로서 정년을 길게, 롱런하겠다는 의지는 차후의 문제다.
그러나 몇몇 스타급 선수들의 몸값이 이렇게 비대해진 데는 각 구단들의 비이성적인 영입 경쟁이 근저에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공중분해 위기에 놓인 현대가 그 시발점이었다. 게다가 이후 도입된 FA 제도는 당초 취지와는 또 다르게 엉뚱하게 악용되고 말았다. 두산은 FA 김동주에게 당초 4년간 62억 원에서 50억 원선으로 제시안을 급히 낮췄지만 여전히 60억 원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김동주의 몸값을 대폭 낮출 경우 지금 당장이라도 김동주를 사겠다고 나설 구단들이 줄을 서는 것이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이미 프로야구는 이성을 잃어버렸고, 수술과 치료로도 건드릴 수 없는 들추고 싶지 않은 환부가 되고 말았다.
▲ KT는 과연 떳떳한가
프로야구를 구해줄 구세주가 될 것으로 보였던 KT는 결국 잠깐 스쳐가는 바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KT도 창단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KT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지만, 야구계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의 무리한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 잠실구장을 공동사용하고 있는 두산·LG와 함께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게 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목동구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것이다. 두산과 LG의 반발에는 이 같은 보이지 않는 무리한 요구가 자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다가 KT는 협상과정 내내 KBO와 7개 구단을 압박하려는 고자세를 유지했다. 두산과 LG가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 이후에는 곧장 ‘프로야구단 창단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고 반격했다. 결국 이는 현실화됐다. KT는 외국인 주주들이 회사합병, 이사해임, 영업양도 등 중대 결정사항을 단독 의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이 크다. 외국인 주주 지분이 47%나 된다. 그런 KT가 프로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인 것은 결코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KT는 협상 내내 마치 어쩔 수 없이 등떠밀려 프로야구단을 창단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KT는 모든 일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체제다. 총수가 프로야구단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STX와는 다르게 프로야구단 인수 같은 일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때문에 애초부터 협상에서 KT에 융통을 기대하기란 어불성설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는 협상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한편 겉으로는 마치 프로야구 구세주가 되려고 행세했다. 아무리 가치가 떨어진들 프로야구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창단 백지화와 함께 KT가 서둘러 야구계와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들이 그만큼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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