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곰은 평온하게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허슬 곰’ 두산은 매년 씁쓸한 겨울을 보내며 제대로 된 겨울잠도 자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해야 했다. 올 겨울에는 더 심했다. MVP를 차지한 ‘22승 투수’ 다니엘 리오스가 일본으로 훌쩍 떠났고, FA 김동주도 아직 계약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주장 홍성흔마저 포수를 고집하며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졸지에 주축 간판선수 3명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두산은 언제나처럼 잘 되는 집안이다. 오히려 올 겨울에는 예상치 못한 소득을 올리며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게리 레스(35)와 김선우(31)의 동시 영입으로 단숨에 최강 마운드를 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2007년 두산 마운드는 강했나
투수력은 안정된 팀 전력의 기반이 된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2007년 두산 마운드는 팀 방어율 부문 전체 2위(3.44)에 올랐다. 안정된 마운드의 기반은 선발진이었다. 선발진 방어율이 전체 2위(3.51)였다. 선발투수가 5회 이전 강판된 경우는 33회로 한화(19회) 다음으로 적었다. 선발진 투구이닝도 총 697⅔이닝으로 역시 한화(744⅔) 다음으로 많았다. ‘외국인 원투펀치’ 다니엘 리오스와 맷 랜들은 각각 33경기·28경기씩 선발등판했다. 두 선수가 페넌트레이스 126경기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무려 61경기에 선발등판한 것이다. 리오스와 랜들만큼 1·2선발이 많이 가동된 팀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9월4일 이후 치른 우천 연기 15게임 중 리오스와 랜들이 선발로 등판한 경기만 해도 9게임이나 됐다. 이 9경기에서 두산은 6승3패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2위 지키기에 성공했다. 6승 가운데 5승이 리오스의 것이었다. 9월15일부터 25일까지 6연승을 거둘 때에는 리오스의 선발승이 3승이나 포함돼 있었다. 우천 연기 여파에 따른 여유있는 경기일정 덕분이었다. ‘우천 연기 효과’를 톡톡히 본 셈. 실제로 두산은 시즌 내내 적절한 때 경기가 연기돼 투수력을 아낄 수 있었다. 윤석환 투수코치는 “솔직히 비 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리오스-랜들-비-비-비’의 힘이었다.
그러나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마운드는 한계를 절감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최초로 1·2차전 2연승을 하고도 역전패한 팀이 되고 말았다. 투수력이 문제였다. 4인 선발 로테이션을 가동한 SK와 달리 두산은 플레이오프 때부터 3인 선발 체제로 승부하다 변을 당했다. 한국시리즈 패배 후 김경문 감독은 “큰 경기에서 에이스 2명만으로는 안 된다. 선발이 불안정해 순간순간 임기응변으로 여기까지 왔다. 선발을 받쳐줄 2번째, 3번째 투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2007년 두산 불펜은 팀 방어율 3위(3.36)였지만, 신인 임태훈이 101⅓이닝을 던져야 했을 정도로 빈약한 편이었다.
리오스 대체재 레스와 김선우
두산은 시즌 종료 후 일본구단들과의 머니게임에서 패하며 리오스를 빼앗기고 말았다. 머니게임을 벌이기에는 FA 김동주 등 두산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많았다. ‘22승 투수’ 리오스의 공백은 쉽게 메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준급 외국인 투수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오래 전부터 러브콜을 보내온 김선우에게 추파를 보내는 중이었다. 결국 두산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지난 10일 기존 랜들과 총액 31만 달러에 재계약한 두산은 레스를 총액 23만 달러에 재영입하자마자 김선우까지 총액 15억 원에 영입을 확정지었다. 리오스의 대체재로 레스와 김선우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레스는 지난 2001·2002·2004년 3년간 국내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검증된 왼손 투수. 2002년 두산에서 16승을 거두며 일본으로 진출한 레스는 2004년 다시 한국으로 복귀해 당당히 다승왕(17승)에 올랐다. 두산에서 2년간 60경기에 선발등판, 총 403이닝을 소화하며 33승16패 방어율 3.24로 맹활약했다. 지난해에는 대만 라뉴에서 12승5패 방어율 3.52를 기록했다. 레스는 평균 구속이 시속 135km 내외밖에 되지 않지만, 다양한 구종과 안정된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다. 특히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고 서클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썼다. 그러나 레스가 뛸 당시 스트라이크존은 좌우가 넓고 상하가 좁았다. 레스는 좌우 코너워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투수였다. 상하가 넓어지고 좌우가 좁아진 현재 스트라이크존에서 예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996년 두산 전신인 OB에 고졸우선 지명된 뒤 1997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김선우는 이후 몬트리올(워싱턴)-신시내티-콜로라도-샌프란시스크 등을 거치며 미국에서만 11년간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118경기 337이닝 13승13패 방어율 5.31. 마이너리그에서는 189경기에 등판, 1039⅔이닝 75승56패 방어율 4.77을 기록했다. 두산은 김선우에게 토종 에이스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김선우의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성적은 여타 외국인 투수들과 비교할 때 평균 이상 수준이다. 다만 어느덧 만 서른 살을 넘겼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지난해 트리플A에서 8승8패 방어율 4.87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시속 140km대 중후반 공으로 승부하는 우완 정통파 투수라는 점에서 한국리그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관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양적·질적 마운드 강화 성공
‘리오스 대체재’ 레스와 김선우는 완벽한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몫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과 더불어 안정감이 있다. 비록 일본에서 실패했지만 레스는 한국-일본-대만을 두루 거칠 정도로 동양야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다양한 리그를 거친 만큼 그의 말마따나 ‘현명한 투구’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선우 역시 구종이 단조롭고 줄곧 미국에서만 던졌으나 기본적으로 좋은 스터프를 지녔고 슬라이더라는 특급무기가 있다. 김선우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연륜이 쌓이면서 성숙미도 쌓였다.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스로어(thrower)에서 피처(pitcher)로 거듭난 것이다.
이로써 랜들-레스-김선우로 구성된 외국인 원투펀치와 토종 에이스를 보유하게 된 두산은 선발진으로나 불펜으로나 양적·질적으로 마운드를 다양화하고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선발진은 랜들-레스-김선우에 이어 4~5선발 대결에 더욱 치열할 전망. 4~5선발 자리를 놓고 김명제·이승학·이혜천 그리고 1차 지명 신인 진야곱이 경쟁을 벌일 전망. 여기에 내년 2월 공익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200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숨은 주역이었던 ‘중간계투 듀오’ 이재우-이재영이 성공적으로 복귀할 경우에는 임태훈의 선발 전환을 꾀할 수 있다. 또한 두산은 지난해 임태훈과 함께 1차 지명으로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아웃된 이용찬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다.
당장 두산은 내년 시즌 1군에서 가용할 투수인원만 해도 15명 안팎에 이를 정도로 양적으로 마운드가 풍부해졌다. 지난 몇 년과는 다르게 레스·진야곱·이혜천의 가세로 왼손 투수에 대한 갈증도 씻을 수 있게 됐다. 마무리투수 정재훈이 성장통을 딛고 일어난다면 두산의 마운드는 선발과 불펜 가리지 않고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경우지만 양적으로는 분명 지난해보다 나아졌다. 질적으로만 보완한다면, 두산 마운드는 단숨에 8개 구단 최강 마운드로 거듭날 수 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지난해 준우승했는데 올해 목표가 4강이겠나”며 “마운드가 지난해보다 더 강해졌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레스-김선우-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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