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어린 남자' 후안데 라모스를 위한 변명
OSEN 기자
발행 2008.01.13 09: 24

후안데 라모스(54). 지난해 10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찾은 한 사내의 이름이다. "축구에는 국경이 없다"는 열정 하나로 약속된 성공을 포기한 그는 최근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폴 로빈슨(29), 저메인 데포(26), 앤서니 가드너(27), 웨인 루틀리지(23), 대런 벤트(24), 파스칼 심봉다(29), 이영표(31), 호삼 갈리(27) 등을 토튼햄에서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살생부였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그는 많은 이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더욱이 그 비난이 성적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에 라모스는 억울하다.
▲ 전임자가 남긴 빚
명가 재건 혹은 명문 도약을 위해 영입된 감독들의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기존의 선수를 가지고 최대한의 성적을 내거나 새로운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감독은 당연히 후자를 원한다. 특히 자신만의 고유 전술로 성공을 이룬 감독들이 그렇다. 어떤 감독은 자신이 이끌었던 팀에서 선수를 데려오기도 한다.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거스 히딩크(62)와 조세 무리뉴(45) 감독이 그랬다. 그들이 데려온 선수들은 요구르트 맛을 결정짓는 유산균처럼 감독이 원하는 전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라모스는 그러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먼저 주식 상장에 성공했던 토튼햄이지만 이미 그들의 지갑은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임자였던 마틴 욜(53) 감독이 마음껏 선수를 영입한 대가였다. 토튼햄은 지난 여름 팀 역사상 가장 많은 4000만 파운드(약 540억 원)를 들여 전력을 보강했다. 덕분에 라모스는 자신의 롤 모델 무리뉴 감독과 같은 여건에서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전임자가 남기고 간 빚을 해결해야 했다. 자신의 전술과는 전혀 맞지 않는 선수들과 함께 강등권으로 떨어진 팀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격 쪽에 편향된 팀 구성은 유독 수비 전술에 약점을 보이는 라모스를 괴롭혔다. 라모스가 원하는 팀은 측면 공격이 강하고 역동적인 팀이었지, 거칠고 빈 틈이 많은 팀은 아니었다.
▲ 라모스의 결단 그리고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모스의 토튼햄은 선전했다. 세비야 시절 '한 골을 내주면 두 골로 갚는다'는 라모스 스타일은 토튼햄에서도 빛났다. 연승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연패도 하지 않았다. 블랙번과의 칼링컵 16강전 승리를 시작으로 토튼햄은 감독 교체의 효과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수비 불안이 문제였다. 올라가면 돌아오지 않는 미드필더, 경험이 부족한 중앙 수비수, 왼발 크로스가 불가능한 풀백, 불안한 골키퍼로는 부족했다. 거듭 늘어나는 실점 속에 라모스의 실망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지난 6일 레딩과의 FA컵 무승부(2-2)는 그에게 개혁의 칼을 빼들게 했다. 기준은 세 가지였다. 포지션 중복, 나이 그리고 경쟁력이었다.
폴 로빈슨을 밀어낸 골키퍼 라덱 체르니(34)를 제외하고 팀 내 최고참인 이영표가 그 대상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이영표의 최근 모습이 그의 전부가 아니란 점에서 이 결정은 아쉬웠다. 다니엘 알베스(25), 헤수스 나바스(23) 같은 화려한 공격력은 없지만, 이영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영표는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와 함께 뛸 때 더욱 빛나는 선수였다. 필립 코쿠(38), 에드가 다비즈(35)가 그런 선수였다. 당시 그들과 함께 보여준 오버래핑은 부족한 크로스 능력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런 선수가 없을 뿐이다.
물론 라모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천문학적인 이적료(1000만 파운드, 약 180억 원)를 주고 영입한 개러스 베일(19)을 키워야 하는 라모스의 입장이 문제였을 따름이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어쨌든 라모스의 토튼햄은 리빌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탕은 팀의 잉여자원을 팔아 마련될 것이다. 저메인 데포, 파스칼 심봉다처럼 뛰어나지만 감독의 취향이 아닌 선수가 떠난 빈 자리에는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가 들어올 것이다. '역동성'과 '측면 공격'을 테마로 하는 후안데 라모스의 토튼햄이 탄생하는 것이다. 동시에 성적에 대한 책임도 모두 라모스 감독에게 이어질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빅4를 위협했던 토튼햄에 12위의 성적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물론 팀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마틴 욜의 책임이 크지만, 그 마틴 욜이 지난 몇 년간 보여준 결과도 잊어서는 안 된다. 4년 간 2500만 파운드(약 450억 원)의 좋은 계약 조건으로 부임한 라모스는 이제 마틴 욜, 그리고 조세 무리뉴의 성과를 뛰어 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토튼햄과 라모스 본인이 원하는 결과일 것이다.
후안데 라모스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www.juanderamos.com)에 이런 말을 남겼다. "축구에는 국경이 없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의사소통의 경계도 무너졌다. 인터넷은 축구를 사랑하는 우리를 더욱 가깝게 한다. 나는 홈페이지를 통해 축구에 대한 경험을 나누거나 조언을 듣고 싶다".
이런 라모스에게 아직은 비난보다는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열정, 노력 그리고 헌신을 중요시하는 겸손한 사내 라모스는 팬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다.
stylelomo@osen.co.kr
후안데 라모스 개인 홈페이지 도입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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