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아줌마들, 극장으로 돌아왔다
OSEN 기자
발행 2008.01.13 10: 09

[손남원의 강추비추]새해 벽두부터 40, 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끄는 한국영화가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감독의 복귀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이다.
12일 오후 10시40분 서울 용산 CGV. 최근 볼만한 영화들이 우후죽순으로 개봉한 덕분인지 한동안 한산했던 극장 안은 늦은 시간에도 인파로 북적거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주말영화 예매율 조사에서 42.92%로 압도적인 1위를 달렸던 '우생순', 이 때까지 전 회 매진에 이어 심야 상영분들조차 몇 좌석 남지않을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
여성과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가 국내에서 대박 흥행을 기록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만큼 흥행에 취약한 장르를 섞은데다 상업성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임 감독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생순'에 관객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는걸까?
영화를 보니 그 답이 나왔다. 상영관 안에는 세대의 구별이 모호했다. 젊은 연인부터 중년 부부들, 저녁 나들이를 함께 나온 듯한 아줌마 단체까지. 막이 올라가고 필름이 돌아갔다. 스포츠 영화답게 첫 장면부터 여자핸드볼큰잔치 결승전 모습을 담고 있다. 세계최강의 전력을 갖고도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온 몸으로 안고 살았던 바로 그 여자핸드볼이다.
임 감독 영화답게 영화는 초반 몇 분의 경기 장면을 맛보기로 보여주더니 각각의 출연 인물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조은지 등등. 미모로 유혹하기 보다 연기로 승부하는 여배우들이 떼로 주 조연을 맡아서인지 쉽게 이들의 모진 삶에 몰입되기 시작한다.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아프고 힘든 인생 때문에 눈물이 났을까? 아니 이 영화, 웃겨도 너무 웃긴다. 객석에서는 쉬지않고 작은 웃음에 이어 큰 웃음, 다시 작은 웃음으로 웃음 파도가 이어진다. 관객을 웃기려고 작정한 코미디 영화들이 불러내는 짜증과 달리 배꼽부터 터져나오는 웃음이다. 훌륭한 감독과 뛰어난 연기자들, 좋은 시나리오의 3박자가 호흡을 맞췄기에 가능했다.
물론 스포츠 영화이면서 휴먼 드라마이기에 감동도 충분하다. 이 역시 코미디로 일관하다 억지 눈물을 쥐어짜게 만들려는 3류 영화들과의 차별성이 충분하다.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투혼으로 결승에 진출,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화에는 늘 감동이 따르기 마련이고 여기에 임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를 따라 허구를 가미하면서 재미를 배가시켰다.
온 국민이 지켜봤던 올림픽 결승전이었기에 영화의 결말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마지막 10분 동안 손에는 땀이 흐른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뒷머리를 찌르르 울리는 그 무엇이 바로 '우생순'의 힘이었다.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관객들의 얼굴 표정에서 만족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썩 괜찮은 한국영화 한 편을 봤다는 생각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발끝에 못미치는 예산으로 만들었더라도, 할리우드 톱스타의 손톱 하나에 못미치는 출연료를 받은 배우들일지라도, '우생순'은 관객에게 호소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만족감을 살수했다. 바로 여기에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숨은 공신 아저씨 아줌마들도 발길을 한 것이 아닐까.
추신: 스포츠를 소재로 했던 한국영화들이 어설픈 경기 장면으로 지적을 받았던데 비해 '우생순'은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여기에는 3개월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며 땀을 흘린 여배우들의 고생이 큰 몫을 했다.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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