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손끝에서 공이 날아가는 순간 5000여 관중은 일순간 침묵했다. 잠시라 할 틈도 없는 정적이 지난 후 전주 KCC 추승균(34·190cm)은 포효했다. 이 순간만큼은 소리없이 강한 남자가 아니라 요란하게 강한 남자였다. 지난 13일 전주실내체육관은 ‘추사마’ 추승균의 한 방에 들썩거렸다. 수비수를 달고 쏜 슛은 높은 포물선을 그리더니 림을 건드리지도 않고 그물을 갈랐다. 종료 2.1초 전 터진 추승균의 극적인 역전 결승포로 KCC는 숙적이 된 서울 삼성을 82-81로 따돌렸다. 지난 4경기서 1승 3패로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터뜨린 한 방이라 더욱 값졌다. 추승균은 역시 KCC를 지키는 고목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 추승균, 왜 빛나는가 추승균은 올 시즌 33경기에서 평균 11.97점을 올리고 있다. 국내선수 가운데 전체 8위에 해당하는 득점이다. 그러나 추승균이라는 이름에는 미치는 못하는 기록이다. 지난 시즌까지 추승균은 평균 15.3점을 기록한 주득점원이었다. 부상으로 고생한 지난 시즌에도 평균 13.3점을 올렸던 선수가 바로 추승균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올 시즌 추승균의 활약을 놓고 ‘부진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태초부터 서장훈이 207cm 신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슈팅력을 타고 났다면, 추승균은 득점에만 매몰된 반쪽짜리 득점원이 아니라 공격과 수비 그리고 경기 조율까지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팀플레이어로 타고 났기 때문이다. 서장훈과 임재현이 새로 들어온 KCC는 시즌 초반에만 하더라도 조직력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외국인선수 브랜든 크럼프와 제이슨 로빈슨도 수준급 기량을 갖추고 있었지만, 팀원들과 융합되지 못해 공격에서 잦은 혼선을 빚었다. 특히 장신 라인업을 구성하는 추승균-로빈슨-서장훈-크럼프 라인의 호흡 불일치는 KCC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한 이가 바로 추승균이었다. 자신의 공격 비중을 낮추는 대신 서장훈·로빈슨 등 자신과 공격범위가 겹치는 선수들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추승균은 올 시즌 데뷔 후 가장 적은 경기당 평균 9.7개의 야투밖에 시도하지 않고 있다. 평균 득점이 내려가는 건 당연했다. 추승균은 오히려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슛을 아끼면서까지 조직력 상승에 온힘을 기울였다. 포인트가드 임재현과 함께 볼 운반과 경기운영을 분담했다. 특히 세트오펜스에서 가드들보다도 더 많이 볼을 소유하며 공격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서장훈·크럼프와 2대2 플레이를 펼치며 높이를 살리고 있다. 게다가 2대2 플레이에서 수비가 붙지 않을 때는 주저없이 중거리슛을 쏘고 있다. KCC에서 골밑으로 볼을 가장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선수도 다름 아닌 추승균이다. 또한 코트를 가장 넓게 활용하며 반대편을 봐줄 정도로 매우 드넓은 코트비전을 과시하고 있다. 뻑뻑했던 KCC 공격도 추승균의 윤활유 역할로 윤기가 반지르르해졌다. 비록 득점은 줄었지만, 공격에서 추승균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졌다. 물론 필요할 때에는 득점도 올려주는 선수가 또 추승균이다.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직접 포스트업과 1대1 공격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오래된 트레이드마크’ 중거리슛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림을 깨끗하게 가르고 있다. 11일 대구 오리온스전에서 경기 막판 역전을 노리는 슛을 너무 성급하게 쏴 자충수를 둔 추승균은 삼성전에서 보란듯이 위닝샷을 작렬시키며 승부처에서 마지막 슛을 던질 수 있는 강심장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마지막 슛이라 해도 별로 부담도 없었다”는 게 추승균의 말. 또한, 추승균은 여전히 수비에서도 변함없이 남다른 집중력과 노하우로 팀 디펜스를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다. 추승균이 경기당 평균 33.5분으로 KCC에서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해야만 하는 이유들이다. ▲ KCC를 지키는 고목나무 지난 여름, KCC 팬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가슴을 쳤다.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민이 FA로 영입된 서장훈의 보상선수가 되어 삼성으로 이적하게 된 것이다. KCC 팬들은 마치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도넛처럼 공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민이 떠난 이후에도 전주체육관에는 연일 관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상민이 떠난 빈 자리에는 ‘새로운 영웅’ 서장훈이 들어왔지만 추승균이라는 또 하나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팬들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추승균은 마지막까지 KCC라는 산을 지키는 고목나무이며 마지막 보루와 같은 존재가 됐다. 추승균은 김병철(오리온스)과 함께 프로농구에 몇 안 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아 있다. 추승균은 프로에 데뷔한 지난 1997-98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전신 대전 현대 시절부터 쭉 KCC에 몸담고 있다. 김병철이 1997년 원년멤버로는 유일하게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아있다면, 추승균은 프로농구에서 유일하게 무려 11시즌째 한 팀에서만 활약하고 있는 선수다. 김병철은 군복무로 2년간 팀을 떠나있었다. 게다가 추승균은 현대 시절 포함 통합우승 2회, 정규리그 우승 3회, 플레이오프 우승 3회, 플레이오프 준우승 2회, 플레이오프 진출 8회 등 화려한 업적을 자랑한다. 지난 시즌 최하위로 추락할 때에도 함께 했다. KCC의 역사가 곧 추승균의 역사다. 누적기록에서도 추승균은 차차 프로농구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정규경기 개인 통산 7698득점으로 이 부문에서 팀 동료 서장훈(9527점)과 서울 SK 문경은(8676점)에 이어 역대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순 수 득점기계가 아니었던 추승균이 이처럼 통산 득점에서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데에는 변함없는 꾸준함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추승균은 안양 KT&G 주희정(529경기)에 프로농구 역대 2번째로 많은 511경기를 뛴 선수다. 지난 시즌 발목 부상으로 14경기에 결장했지만 그 전에는 이렇다 할 부상조차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완벽했다. 추승균은 주희정과 함께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철인이자 진정한 꾸준함의 대가라 할만하다. KCC 허재 감독은 추승균에 대해 “감독으로나 농구선배로나 항상 고마운 선수”라고 표현했다. KCC 팬들에게도 추승균이라는 이름과 존재는 언제나 KCC라는 산을 든든히 지키는 고목나무로 기억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