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런던, 이건 특파원] '우리에게는 데이빗 베컴의 오른발이 있습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국 수상으로 나온 휴 그랜트가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던진 말이다. 오만방자한 미국에 영국 수상은 '데이빗 베컴' 을 예로 들며 자국의 자존심을 세웠고 국민들은 이런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기는 했지만 축구가 영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축구는 노쇠한 제국 영국의 자존심을 표출하는 몇 안되는 통로인 것이다. 그러나 이랬던 것도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그 상황이 변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돈이 되면서 외국인 갑부들이 하나둘씩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접수하기 시작한 것.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말콤 글레이저에게 넘어갔고 첼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소유가 됐다. 리버풀은 조지 질레트 주니어와 톰 힉스의 자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맨체스터 시티는 태국 수상이었던 탁신의 품에 안겼다. 영국인들이 자랑하는 축구도 외국인들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구단주들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서포터들을 존경하는 구단주에게는 극찬이 돌아가는 반면 그렇지 못한 구단주에게는 차가운 멸시의 눈초리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반된 반응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스톤 빌라와 리버풀이다. 아스톤 빌라는 1874년 창단된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는 팀이다. 우승 역사에서도 네 번째로서 첼시보다 우승 횟수가 많다. 또한 맨유, 리버풀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경력을 보유한 팀이다. 이런 팀이 지난 2006년 미국의 갑부인 랜디 러너에게 인수된 것이다. 미식축구팀을 소유하고 있는 러너는 구단주가 된 후 막대한 투자를 통해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마틴 오닐 감독도 데려오고 그가 원하는 선수를 사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런 투자는 돈많은 구단주라면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러너가 영국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는 이유는 바로 축구를 바라보는 그의 행동에 있다.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러너는 경기가 끝난 후 집에 가는 길에 한 술집 앞에 멈춰섰다고 한다. 거기에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서포터들의 뒷풀이가 한창이었는데 러너는 그 자리에서 서포터들의 의견을 들으며 맥주를 샀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러너는 구장 근처에 있는 유서 깊은 펍을 재정비하는 데 400만 파운드의 돈을 투자한 것이다. 전혀 득이 될 것이 없을 것 같은 일을 하면서도 러너는 즐거워했고 이런 그를 보며 서포터들도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마틴 오닐 감독도 "러너 구단주는 클럽을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며 구단주의 클럽 사랑에 감탄했다. 반면 리버풀은 구단주들 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리버풀을 인수한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 주니어는 많은 돈을 투자해 페르난도 토레스 등 좋은 선수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팀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자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과 설전을 벌였으며 사퇴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또한 차익을 남기기 위해 다른 인수자를 알아보고 있는 등 축구팬들의 눈에 가시같은 일들만 벌이고 있다. 이에 안필드의 서포터스석인 '더 콥' 에서는 '두바이여 도와 달라, 양키들은 나가라(DUBAI S.O.S. YANKS OUT)' 같은 걸개가 걸렸다. 또한 서포터들의 대규모 시위도 계획되어 있는 등 팬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영국 언론들 역시 연일 리버풀의 상황을 전하며 초점을 두 명의 구단주에게 맞추며 압박하고 있다. 많은 외국인 갑부들이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을 사모으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클럽의 오너가 된 그들 중 영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을 이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에겐 데이빗 베컴의 오른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선수들이 마음껏 뛰게 해준 ○○○ 구단주도 있습니다'. bbadagun@osen.co.kr 톰 힉스 리버풀 공동구단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