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에서 전설적인 타짜 평경장으로 분했던 백윤식,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의 신하로 분한 장항선. 중견 배우들의 스크린 속 재발견이었다. 충무로에서 중견배우들의 활약은 젊은 피로만 수혈될 수 없는 다양한 역할로 새로운 영화를 가능하게 하고 그들의 탄탄한 연기력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근간이 된다. 즉, 그들의 활약은 한국 영화 소재의 다양성과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다. 후덕한 옆집 아저씨 아줌마의 뻔한 역할은 가라. 늘 똑같이 인자한 이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상도 가라. 연기가 되는 중견배우들이 목마르게 기다렸던 것은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도전과 변신이었다. 올해 초부터 그 변신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성숙하게 연기해낸 두 배우가 있다. 배우 김해숙과 변희봉이다. TV 속에서 인자한 어머니상을 주로 그렸던 김해숙(53)의 변신이 눈길을 끈다. 그녀는 영화 ‘무방비도시’(이상기 감독)에서 전과 17범인 전설적이 소매치기 강만옥으로 분했다. 극중 형사 역을 맡은 김영민의 어머니. 소매치기 어머니와 형사 아들이라는 관계는 시작부터 비극적이다. 김해숙은 소매치기 전과범으로서는 그 누구보다 거칠고 독기 넘치지만 아들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마음 약해지는 강만옥으로 훌륭히 변신했다. 극의 막판 김명민의 수사망에 걸려들었을 때 아픈 몸으로 빗속에서 아들을 피해 도망가는 김해숙의 연기는 절정이었다. 과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와 아들에게 엄마 노릇 한번 재대로 하지 못한 채 다시 소매치기로 아들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 아들의 손에 체포되는 비극적인 장면에서 김해숙의 지난 34년의 연기 인생이 압축적으로 묻어났다. 그야말로 매 장면마다 인생의 질곡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31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더 게임’(윤인호 감독)에는 변희봉(42)이 있다. 금융계의 큰 손 강노식 회장으로 분했다. ‘인생은 도박이야’라는 모토로 거리의 화가로 분한 신하균을 내기에 끌어들여 자신의 죽어가는 몸과 신하균의 싱싱한 몸을 바꾼다. 변희봉은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 인생의 막장에 왔지만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단 한번의 내기로 한 청년의 인생을 비극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악마적인 강노식으로 훌륭히 변신했다.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의 이미지에 영화 ‘괴물’(2006)에서는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장렬한 최후를 맞는 희봉 역을 맡았지만 이번 ‘더 게임’에서는 180도 변신했다. 노쇠한 악마의 화신으로 관객들을 섬뜩하게 몰아넣었다. 신하균과 한치 양보 없는 접전으로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crystal@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