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이윤열(위메이드)과 '목동' 조용호. e스포츠를 주름 잡았던 두 걸출한 선수의 운명은 한순간에 엇갈렸다. 공교롭게도 스물다섯살 동갑내기 친구인 이들은 2008년을 열자마자 부활과 은퇴로 e스포츠 인생 항로가 결정됐다. 각각 테란과 저그 종족을 이끌던 대표 프로게이머로 자리매김했던 이 둘은 종족별 최강자의 입지 뿐만 아니라 프로게이머 성적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KeSPA 랭킹도 1위까지 올라갔던 거물들. ▲ 황금기 뒤에 찾아온 부진의 그늘 2006시즌 조용호와 이윤열은 프로게이머로서 제 2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용호는 사이언 MSL 우승과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 준우승, KeSPA 랭킹 1위를 넉달간('06. 7 ~ '06.10) 차지하며 이른 바 '목동 체제'의 달인으로 확실하게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2005년 양대 개인리그 탈락으로 하락세를 보이던 이윤열 역시 2006년 7월 양대리그 복귀에 성공하며 2006년 11월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우승으로 대망의 골든마우스를 움켜잡았고 여세를 몰아 12월 KeSPA 랭킹 1위를 탈환, 2006년 최고의 프로게이머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영광의 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6시즌의 화려함 뒤에는 악몽같은 2007시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꾸준함의 대명사로 인정받던 조용호는 통산 열번째 스타리그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을 기점으로 급전직하를 시작했다. 스타리그 3패 탈락 뿐만 아니라 9차례 연속진출로 한 차례도 빠짐없이 개근하던 MSL 마저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리그 부진이 길어지자, 프로리그서도 제자리를 찾지못했다. 전기리그서 5승 5패를 기록하며 예전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는 후기리그서는 아예 로스터에서 빠져 온라인 연습생으로 내쳐지는 비운을 겪게 됐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윤열도 부진의 기나긴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이윤열은 그 어떤 선수보다 강력한 선수지만, 주변 외적 환경의 변화에 약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2007시즌 개막을 앞두고 위메이드의 전신인 팬택 프로게임단이 모기업의 경영악화로 해체위기에 몰렸고, 그 여파는 이윤열에게도 미쳤다. 개인리그 부진에도 꾸준히 활약하던 프로리그서도 5할을 겨우 웃도는 성적을 거뒀고, 양대 개인리그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지만 1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예전 전장을 지배하던 천근같은 중압감도, 재기가 넘치던 칼날같던 경기력 또한 완전히 실종된 모습이었다. ▲ 부활과 은퇴의 기로에서 2007시즌 후기리그 변길섭, 이병민, 김세현 등과 함께 온라인 연습생으로 밀려난 조용호는 꾸준하게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한 번 박힌 미운털은 쉽게 빠지지 못했다. 조용호의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을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인리그 예선의 벽은 높기만 했다.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조용호의 방출설과 이적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KTF 구단도 백방으로 그의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선수생활의 기로에 서게 됐다. 결국 지난 18일 조촐한 은퇴식을 치르며 e스포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목동' 조용호는 무대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됐다. KTF 김철 감독은 "조용호는 함께 온라인 연습생으로 강등된 이 들 중 가장 참여도가 높은 선수였다. 그 점을 높게 평가하고 팀에서는 최대한 기회를 줬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 "갑작스러운 기량 저하는 선수 본인에게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7시즌 후기리그를 앞두고 위메이드에 새둥지를 튼 이윤열은 3년간 총 7억 5000만 원의 대박 계약을 터트리며 최고 연봉 선수로 등극했다. 최고 몸값의 선수로 후기리그 화려한 시작을 했던 그는 변화된 팀 체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자율 훈련을 강조하던 예전 송호창, 성재명 전임 감독들과 달리 김양중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이윤열은 지쳐만갔다. 하지만 이윤열은 변화와 적응으로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지난 1월 4일 치렀던 마재윤과의 일전에서 이윤열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이윤열은 게으르던 천재에서 노력하는 천재로 탈바꿈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탈출구 찾기에 성공했다. 그 결과는 20일 열렸던 MSL 32강전서 나타났다. 전성기 시절 칼날처럼 잘 서려있던 날카로운 공격과 전장을 지배하던 천근같던 중압감을 완벽하게 회복하며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비단 조용호와 이윤열 뿐만이 아닌 부진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힘차고 패기넘치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시간을 투자하는 이들에게 위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탈출구가 없다고 해도 자신의 인생을 프로게이머에 건 만큼 다시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두려워해 시간을 허비한다면 앞날에 밝은 미래는 없다. OSEN 고용준 기자 scrapper@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