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은 23일 새벽(한국시간)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토튼햄 핫스퍼에 9년 만의 패배를 경험했다. 1999년 11월 7일 이후 22경기 만의 패배였다. 그러나 패장 아르센 웽거 감독은 "고통스럽지만, 어느 정도 의도된 패배였다"고 말하며 패배의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까. 분명히 지역 라이벌 토튼햄에게 당한 5-1의 대패는 재앙에 가깝다. 다만 그 패배가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내린 '운영의 묘'라면 그 이유는 3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바로 '부상', '칼링컵의 가치' 그리고 '빡빡한 스케줄'이다. ▲ 아스날의 얇은 선수층과 부상의 두려움 최근 몇 년간 아스날의 고민은 얇은 선수층이었다. 아스날에 언제나 두려운 것은 상대보다 부상이었다. 그런 아스날에 일주일에 2번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곤욕에 가깝다. 특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주축 수비수인 콜로 투레, 엠마누엘 에보우에, 알렉산더 송이 차출된 상황에서 칼링컵까지 노리는 것은 무리였다. 비록 첼시에 패해 우승컵을 품에 안지는 못했지만 결승까지 올랐던 2007년과는 분명히 상황이 다르다. 더군다나 아스날은 포워드와 미드필드 라인에 대체요원이 전무에 가깝다. 로빈 반 페르시(14경기 7골)가 부상으로 무너진 상황에서 아데바요르 한 명으로 모든 경기를 치를 수는 없다. 웽거 감독은 세스크 파브레가스, 알렉산더 흘렙, 토마시 로시츠키 중 한 명이라도 부상당한다면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점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 칼링컵의 '영양가' 만약 칼링컵에 큰 상금 혹은 메리트가 부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칼링컵은 오직 트로피, 메달, 상금(100만 파운드, 약 18억 원) 그리고 UEFA컵 출전권이다. 중위권 팀에는 매력적인 조건일지 몰라도 유럽챔피언스리그가 '기본'인 아스날에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아스날이 결승전에 올라갔다고 쳐도 상대는 만만치 않은 첼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첼시는 그동안 칼링컵에는 2군이 출전하던 관례 아닌 관례를 깨뜨렸던 전력이 있다. 작년의 복수를 노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선택은 100만 파운드의 상금보다는 라운드 별로 지금까지 받은 상금(준결승전 약 5억 원, 결승전 약 16억 원)에 만족하는 것이 옳다. ▲ 빡빡한 스케줄 아스날의 빡빡한 스케줄도 문제다. 당장 아스날은 3일, 4일 간격으로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2연전(26일 FA컵 4라운드, 29일 EPL)에 들어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으로 승점 1점이 아쉬운 아스날은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안배해야 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 출전한 주전 선수는 선발로 출전한 윌리엄 갈라스, 교체 투입된 파브레가스, 아데바요르뿐이었다. 이 점은 최근 스페인의 컵대회인 코파 델 레이에서 마요르카에 패해 탈락한 뒤 내심 기뻐한 레알 마드리드의 행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코파 델 레이의 상금도 90만 유로(약 11억 원)에 그친다. 두 팀이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린다는 것과 상금이 3700만 유로(약 44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칼링컵 결승전이 예정된 2월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이 일정상 비슷하게 겹치는 시기다. 물론 이런 이유로 토튼햄 핫스퍼의 값진 승리를 폄훼할 수는 없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환상적인 승리"라는 짧은 외침에도 관중은 환호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웽거 감독은 단지 두 팀의 목표와 방향이 달랐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stylelomo@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