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6강 가는 길목 '첩첩산중'
OSEN 기자
발행 2008.01.24 10: 23

[OSEN=이상학 객원기자] 4시즌 만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인천 전자랜드가 좋지 못한 스타트를 끊었다. 전자랜드는 대구 오리온스와 이틀간에 걸쳐 사실상 3대3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리온 트리밍햄·정재호·주태수를 영입했지만, 첫 경기였던 지난 23일 창원 LG와의 원정경기에서 83-105, 무려 22점차로 대패했다. 올 시즌 전자랜드의 최다점수차 패배였다. 어느덧 6위 서울 SK(20승17패)와의 승차도 2.0경기로 벌어졌다. 이적 후 하루도 손발을 맞추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야 할 부분이었지만 최희암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상태가 풀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자랜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하다. ▲ 가드 문제는 미봉책 올 시즌 전자랜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말할 것 없이 가드진이다. 가드의 수는 많다. 황성인·정영삼·조우현·정선규·정병국·김태진 그리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정재호까지 풍부하다. 그러나 확실한 포인트가드가 없다는 것이 전자랜드의 너무 오래된 고민이다.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황성인은 힘있는 수비와 궂은 일에서 힘을 쏟고 있으나 전성기 시절의 경기 조율능력이나 패싱력을 상실한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전자랜드에는 외국인선수들과 국내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적절한 역할 분담으로 경기 자체를 부드럽게 이끌어나갈 리딩가드가 없다. 오히려 하나같이 패스보다 슛이 좋은 선수들이라는 점도 전자랜드에게는 걸림돌이다. 정영삼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외곽슛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장단점이 중첩되는 바람에 장점은 장점대로 희석되고, 단점은 단점대로 드러나고 있다. LG전에서도 전자랜드는 무려 31개의 3점슛을 던져 9개밖에 넣지 못했다. 3점슛 31개 중 20개를 가드진에서 시도한 것이었다. 골밑으로 과감히 돌파해 레이업슛을 넣거나 외곽으로 볼을 빼주는 플레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외곽에서 서성대다 던지는 3점슛이 다수였고 자연스럽게 3점슛 성공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전자랜드는 원주 동부처럼 시스템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팀이다. ‘전체 1순위’ 테런스 섀넌은 올 시즌을 기준으로 할 때 특급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팀 동료들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준의 타짜가 되지 못한다. ‘떠오르는 에이스’ 정영삼은 전자랜드에 단비와도 같은 골밑 돌파로 팀 공격을 다양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나 코트밸런스를 조절해주며 어시스트를 공급해 줄 수 있는 포인트가드의 부재로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트레이드로 정재호를 다시 영입했지만, 궁극적으로 포인트가드 문제는 여전히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 전자랜드의 현실이다. ▲ 섀넌과 트리밍햄 조합 전자랜드는 카멜로 리를 대체 외국인선수로 영입한 이후 23경기에서 13승10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리의 합류와 함께 3연승을 달렸고, 올 시즌 최다 4연승도 한 차례 달성했다. 특히 리가 결정적인 3점포로 팀을 구해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리의 합류로 전자랜드는 섀넌에게 집중된 공격루트를 다양화하고 외곽 공격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폭발력을 더할 수 있었다. 그러나 13일 울산 모비스전에서 무득점에 그친 것처럼 기복이 심했고, 골밑을 사수하지 못했다. 결국 전자랜드는 오리온스에서 트리밍햄을 데려와 득점력과 골밑을 보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첫 경기였던 LG전에서 트리밍햄은 19점·5리바운드를 올렸다. 1쿼터에만 10점을 올렸지만, 이후에는 득점포가 잠잠했다. 반면 트리밍햄과 함께 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섀넌은 후반에만 23점을 집중시켰다. 첫 경기였던 탓인지 섀넌과 트리밍햄 조합은 기대보다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공격범위가 겹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팀 시스템과 코트 밸런스가 자리 잡히지 않은 전자랜드에서 이것을 해결할 카드가 없었고, 경기 내내 1대1 개인기와 단발성 외곽슛에 의존하는 답답한 농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섀넌은 시종일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트리밍햄이 확실한 센터가 아니라는 점도 궁극적으로 전자랜드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냈다. 트리밍햄은 5개 리바운드 중 수비 리바운드는 겨우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속공의 시작점이 되는 수비 리바운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트리밍햄이 속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또한, 트리밍햄은 오리온스에서부터 수비에 약점을 보인 선수다. 트리밍햄은 LG 오다티 블랭슨의 스핀무브에 속절 없이 당했다. 고질적인 속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섀넌과 트리밍햄의 조합은 세트오펜스에서 공격 확률을 높이는 방안밖에 없다. 그러나 “트리밍햄에게 공격을 미루는 모습은 절대 고쳐야 할 문제”라는 최희암 감독의 지적은 문제를 하나 더 늘린 듯하다. 트리밍햄이라는 공격무기를 얻었지만, 그에 따라 국내선수들의 움직임은 더욱 둔화될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전자랜드에게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 전자랜드는 LG전을 끝으로 9일간 휴식기를 맞이했다. 휴식기 동안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의 호흡 및 조직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휴식기를 이용해 후반기 반전의 서막을 열어젖힌 팀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전자랜드의 경우에는 한꺼번에 3명의 선수가 영입됐다는 점에서 기존 선수들과 융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9일간의 휴식기가 더없이 반갑다. 게다가 전자랜드에게는 조우현과 김성철이라는 ‘히든카드’도 남아있다. 올 시즌 조우현과 김성철은 나란히 9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출장시간은 조우현이 평균 8.3분, 김성철이 평균 10.1분에 불과하다. 팀내 연봉 1·2위 김성철(2억6200만 원)과 조우현(2억5000만 원)이 이렇다 할 공헌을 하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6강 플레이오프 고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자랜드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하지만 고액연봉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된다. 정영삼-이한권이 주전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조우현-김성철이 치고 들어올 자리가 여의치 않지만 가용인원을 최대한 늘린다면 승부수가 될 수도 있다. 전자랜드는 지난 2003-04시즌 정규리그 4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4강까지 진출한 전력이 있다. SK 빅스를 인수한 첫 해부터 호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후 프로농구 최초로 2시즌 연속 최하위로 추락했고, 지난 시즌에도 10개 구단 중 9위에 그쳤다. 하지만 최희암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시즌부터 패배 의식을 조금씩 지우고 있다. 4시즌만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한 길목은 여전히 첩첩산중이지만, 전자랜드에게는 이같은 첩첩산중마저 반갑다. 과연 전자랜드가 9일간의 휴식기 이후 반전의 서막을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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