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TV 드라마가 무섭다
OSEN 기자
발행 2008.01.25 09: 44

’이게 영화야 드라마야?’ 판타지 사극 블록버스터 ‘태왕사신기’는 일본의 경우 극장에서도 상영된다. 국내 방송사상 최고액 430억원 제작비를 들인 드라마답게 극장 상영용으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드라마 제작비가 허리끈을 질끈 동여맨 한국영화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TV와 차별화되는 영화의 강점이 바로 스케일과 호화 캐스팅. 그러나 TV 드라마의 대형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오히려 역차별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지난해 한국영화 가운데 800만명 이상을 기록한 영화는 두 편, ‘화려한 휴가’와 ‘디 워’다.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는 김상경 이요원 이준기 박철민 등이 출연했고 제작비 1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심형래 감독의 야심작 ‘디 워’도 순제작비만 300억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마니아가 아닌 요즘 일반 관객들은 모처럼 극장 나들이 때 대형 스크린을 제대로 즐길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파이더 맨’ ‘캐리비안의 해적’ ‘해리포터’ 등 할리우드 인기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눈과 귀가 길들여지면서 이 같은 대작 중독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평균 30~40억원 정도를 들여 제작된 한국영화 대부분은 본전은 커녕 2주일을 못버티고 간판을 내리기 일쑤였다. 소수 대박과 다수 쪽박으로 구분되는 한국영화 흥행은 먼저 그 규모에서 판가름이 시작되는 셈이다. 물론 짜임새 있고 몰입력 강한 이야기와 뛰어난 연출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에는 당연히 제작 규모에 상관없이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순제작비 40억원을 들여 1200만 관객 동원의 신화를 만들었던 ‘왕의 남자’가 단적인 예다. 1000만 관객을 넘은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등 모두 4편의 영화 가운데 제작비 100억원 아래는 ‘왕의 남자’가 유일하다. 또 2006년 봄 로맨틱 스릴러 장르의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달콤 살벌한 연인’은 불과 9억원 남짓 예산으로 만들어서 240만명을 불러모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야기의 힘이 규모의 법칙을 완전히 누른 경우다. 그럼에도 가뜩이나 영화시장과 투자 위축으로 고전중인 한국영화계는 TV 드라마의 대형화 추세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태왕사신기’의 성공과 SBS ‘로비스트’의 실패가 이어진 뒤 바로 500억원대 규모의 드라마 제작이 추진되는 등 TV의 물량 공세가 계속되는 까닭이다. 안으로는 투자사의 제작비 삭감 요구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TV 드라마의 대작 붐에 고전하는 게 최근 한국영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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