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국민들의 귀를 간질이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인내심을 실험하던 ‘나훈아 스캔들’이 25일 분기점을 맞았다. 일파만파 커져가던 스캔들의 주인공 나훈아(61, 본명 최홍기)가 서울 홍제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초지종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날 나훈아가 밝힌 요지는 이렇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매너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나훈아이지만 5,6년 전부터 한계점에 부닥치게 됐다. “꿈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며 재충전의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4년전 연말 공연을 끝으로 재충전 시간을 갖기로 하고 모든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대신 지리산이나 강원도 등 우리나라의 심산유곡을 돌았고 또 외국 대학에서 공부도 했다. 그러던 사이 스캔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재충전 중인 나훈아는 ‘잠적’ 상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훈아는 40년 가수 생활 속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별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명을 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쓰고 싶은 기사만 쓰는 게 언론의 속성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사이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남의 아내를 빼앗은 가정 파괴범이 됐고 후배 여배우와 염문을 뿌린 파렴치범이 됐으며 급기야는 야쿠자의 보복을 받아 신체 일부까지 훼손된 몹쓸 이가 되었다. 나훈아만을 두고 만들어지는 온갖 얘기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으나 결혼도 안 한 후배 연기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나훈아의 기자회견으로 그를 둘러싼 온갖 억측들은 상당부분 의심이 풀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쉬쉬하면서도 가까운 이들에게 소문을 전하던 사람들도 “사실 너무 터무니 없는 얘기였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하지만 나훈아의 기자 회견 내용 중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기자회견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 ‘언론 역할론’이다. 나훈아는 소문의 근원지로 언론을 지목하고 그 무책임성을 지탄했다. 기자회견 중에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나도 쓴 기자는 ‘방조자’이고 나는 한 줄도 안 썼다고 한 기자는 ‘방관자’다”며 연예 언론에 대한 심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나훈아의 종적을 쫓아 다녔는지를 인정하지 않는 말이다. 수많은 기자들이 나훈아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집 앞에서 철야를 하고 제보자를 만나고, 심지어 경찰 수사를 동행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들을 모조리 무시한, 그 긴 침묵의 시간을 “40년 경험에서 얻은 대처법”으로만 돌리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일부 잡지에서 소문을 추적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최근 들어서야(정확히는 1월 17일 싸이더스HQ가 김혜수의 연루설을 부인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나서부터) 나훈아의 실명을 공개했고 그와 얽힌 배우들의 이름 및 스캔들 내용을 정면으로 다뤘다. 그 어떤 경우보다 조심스러웠던 언론이다. 인터넷이라는 무시무시한 네트워크가 없을 때, 즉 일부 스포츠신문과 연예잡지가 연예계 소식의 주 소비 통로였을 때는 모르지만 현재에는 어울리지 않는 ‘언론 책임론’이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소문을 쫓아 사실성을 확인하는 게 오히려 요즘 언론의 업무 형태다. 언론이 소문을 만들고 그 소문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나훈아 스캔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훈아는 언론을 지목하기 전에 인터넷 블로그와 익명의 기사 댓글, 그리고 괜한 의심을 살 만한 소극적 대처 등을 먼저 언급했어야 옳다. 워낙 그 내용이 갖고 있는 파괴력이 강했기 때문에 가십을 중시하는 연예 언론 조차도 되레 조심스러웠던 게 이번 스캔들이다. “기사를 쓰지 않은 기자는 방관자”라고 말하는 나훈아가 진작에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좀더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굳이 백주 대낮에 500여 명의 취재진(그 안에는 나훈아의 딸 같은 여기자들도 수백 명이 있었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바지춤을 푸는 행동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게다. 100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