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와 최민식은 어디로 갔을까
OSEN 기자
발행 2008.01.28 09: 26

3년 공백은 배우에게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한창 연기에 몰입할 절정의 나이라면 긴 세월을 까먹는 셈이다. 이영애와 최민식이 그렇다. 여자 한류스타 가운데 첫 손가락 꼽히는 이영애와 대표적인 연기파로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최민식, 최고의 남 녀 배우 두 사람은 2005년 이후 나란히 작품 활동을 쉬고 있다. 그럼에도 이 둘의 인기와 지명도는 여전하다. 사실은 여전한 듯 보이면서 조금씩 식어가는 중이다. 이영애는 지난해 MBC TV ‘해피타임’이 실시한 설문조사 ‘여자 탤런트 부문 대한민국 NO. 1 올드&뉴’ 에서 ‘여자 탤런트 뉴 부문 ’ 최고 탤런트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영애와 경합을 벌였던 후보 명단에는 한류열풍의 또 다른 여자 주역 최지우, ‘황진이’로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던 하지원, ‘주몽’의 연인 한혜진 등 쟁쟁한 후보들이 포진했다. 이영애는 30대 남성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압승을 거뒀고 이는 전세계를 휩쓴 ‘대장금’의 단아하고 청초한 이미지가 아직까지 많은 남성들 가슴에 남아 있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연달은 성공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문소리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최민식 선배를 마음속에 품고 다녔다”고 말하는 등 최민식의 영화계 카리스마도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르고 있다. 충무로 영화 제작자들이 캐스팅을 고려할 때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배우가 바로 그다. 그러나 두 배우는 약속이라도 한 듯 3년여 세월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이영애는 30대, 최민식은 40대로 배우로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시기고 전작들에서 물 오른 연기력을 선보였던 터다. 이영애는 2003년 MBC ‘대장금’으로 아시아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뒤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냉정한 복수녀를 열연, 자신의 진가를 확인했다. 이후 그녀의 활동은 주요 영화제 참가 등의 공식석상과 CF 활동에 국한돼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가장 잘 연기할 수 있었을 배역 기회들은 한번 떠나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독보적인 위치도 조금씩 흔들리는 중이다. 한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스타들의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이영애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상상할수 없던 일이 일어난 셈이다. CF퀸이라는 별명이 무색해지는 결과였다. 최민식은 영화 '주먹이 운다' 후에 연극 무대에 잠시 올랐을 뿐이다.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와 반FTA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공백기가 생겼다. 고정 팬이 확고했던 그에게 안티가 생기는 등 주변이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면서 본업인 연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소홀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앞에서 이끌었던 그의 파워와 열정은 자타가 공인하기 때문. 1990년대 후반 '넘버 3' '조용한 가족' '해피 엔드' 등으로 뚜렷한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2001년 '파이란'에서 생애 최고의 연기를 뽐냈다. 전혀 연기 같지 않은 연기, 3류 양아치 강재 역으로 나온 그는 강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는 카피에는 아직도 연기에 푹 빠져있던 최민식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다. '취화선'(2002) 에 이어 2003년 박찬욱 감독과 함께 한 '올드 보이'로 그는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연기에서의 정점은 '파이란', 배우로서 명성은 '올드 보이'로 이룬 셈.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혹시 머리카락이라도 보일까,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멀리한 채 숨어버린 두 스타 연기자의 빠른 복귀를 팬들은 기다리는 중이다.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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