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투수는 일종의 소모품이다.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닳고 팔꿈치는 누더기가 되기 일쑤다. 경우에 따라서 허리도 다치고 무릎도 고장난다. 부상없이 선수생활을 마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행운은 없을 것이다. 투수들에게 부상과 재활은 어색한 일들이 아니다. 프로에 데뷔하지도 않은 아마 선수들도 수술하고 재활을 거칠 정도로 수술이 일반화됐다. 오승환(삼성)이나 류현진(한화)이 대표적이다. 올해에도 부상과 재활을 뒤로 하고 마운드에서 재기를 꿈꾸는 투수들이 많다. 배영수(삼성)·이승호(SK)가 선두주자들이다. 1년 넘게 재활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들에게 재기는 목표이자 꿈이다. ▲ 화려한 재기 또는 추락 투수들이 수술을 받고 재활훈련을 위해 한 시즌을 통째로 버리는 것은 과거에도 심심찮게 있었던 일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투수가 바로 정민태(현대)다. 1992년 계약금 1억6000만 원을 받으며 태평양에 입단한 정민태는 전반기를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뒤 꼬박 1년간 재활에만 몰두했다. 1993년 7월 마운드에 다시 올랐으나 5경기만 던지고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1994년부터 팔꿈치 통증에서 벗어나 풀타임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1996년 현대의 창단과 함께 명성에 걸맞는 활약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었다. 수술을 받을 당시 정민태의 나이는 겨우 22살이었고, 충분한 재활기간을 거친 후 재기했다. 정민태와 같은 날 함께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정명원도 재활로 1993년에는 6이닝만 던지고, 1994년 마무리투수로 재기했다. 그러나 2005년 9월 35살의 나이로 어깨 수술을 받으며 1년간 재활하고 돌아온 정민태는 더이상 과거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손민한(롯데)도 오랜 시간 재활에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한 투수다. 1997년 계약금 5억 원이라는 특급대우를 받고 롯데에 입단한 손민한은 그러나 아마시절 혹사 탓인지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이상이 찾아왔다. 결국 그 해 10월 선수생명을 걸고 어깨 수술을 받았다. 당시 손민한의 나이는 정민태와 마찬가지로 22살이었다. 1년 반 넘게 재활에 힘을 기울인 손민한은 1998년을 통째로 쉬고 1999년 9월에야 복귀했다. 대포알같은 강속구는 잃었지만 2000년대 이후 8년 연속 100이닝 이상 던지며 꾸준하게 롱런하고 있다. 손민한 역시 충분한 재활기간을 거친 후 완벽한 상태에서 복귀한 것이 롱런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문동환(한화)의 기나긴 재활 스토리는 더욱 더 눈물겹다. 실업 현대 피닉스 때부터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던 문동환은 롯데 시절이었던 2000·2001년 두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000·2001년 2년간 25경기밖에 나오지 못했고, 2002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17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다. 결국 2003년에는 1년을 통째로 쉬었다. 당시 문동환의 나이는 31살. 재활과 재기에 회의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4년 한화로 이적한 뒤 1년간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과거 명성을 회복하며 재기했다. 그러나 지난해 고관절 부상이 허리디스크로 이어져 다시 한 번 고비를 맞았다. 문동환은 이번에는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정민철(한화)도 재기에 성공한 경우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2003년 10월, 31살이라는 나이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정민철은 이듬해 1승도 못 올리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2005년 9승을 기록하며 부활의 가능성을 내비치더니 2006년에는 방어율을 3점대로 낮췄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10년 만에 2점대 방어율과 더불어 두 자릿수 승리를 회복했다. 강속구를 버리고 기교파 투수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2006년 막판부터 팔꿈치 통증이 사라진 것도 부활의 한 이유였다. 통증이 사라졌다기보다는 통증에 익숙해졌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팔꿈치 수술은 통증과 친해지는 것이 하나의 과제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수술과 재활 이후 재기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수술 이후 재기에 실패한 투수들도 수두룩하다. 1989년 19승 투수로 신인왕을 차지했던 태평양 박정현은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악화되며 1989년 근사치의 활약을 재현하지 못했다. 데뷔 후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던 ‘잠수함의 대명사’ 이강철도 1999년 무릎 부상으로 1년을 통째로 쉰 이후에는 더 이상 10승 투수가 되지 못하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박정현의 경우에는 허리 부상이 고질적이었다는 점, 이강철의 경우에는 33살의 나이에 무릎에 칼을 댄 점이 치명적이었다. 롯데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염종석·박지철·박석진도 팔꿈치·어깨 등을 다친 이후 좀처럼 옛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며 선수생활 말년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형편이다. ▲ 재기를 꿈꾸는 투수들 가장 최근 수술과 재활을 거친 후 재기에 성공한 선수로는 권혁(삼성) 이대진(KIA)을 꼽을 수 있다. 2005년 8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그 해 시즌-아웃됐던 권혁은 2006년 8월에 복귀했고, 지난해 풀타임 시즌을 무난하게 치렀다. 왼손 파이어볼러로서 시속 150km 안팎의 위력적인 강속구를 변함없이 포수 미트에 팍팍 꽂아넣고 있다. ‘재활의 대명사’ 이대진도 절반의 재기에 성공했다. 처음으로 시즌-아웃된 1999년을 시작으로 3차례나 어깨 수술을 받고 무려 6년이라는 재활기간을 거친 후 지난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한 시즌을 치렀다. 올해 이대진은 나머지 절반의 재기를 향해 또 다시 도전한다. 지난해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아웃된 배영수는 2008년을 그 누구보다 기다려왔다. 삼성 팬들은 ‘푸른 피의 에이스’의 화려한 재기를 기대하고 있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지난해 배영수의 나이는 26살이었다. 수술 후 배영수는 기대 이상으로 빠른 재활속도를 보였다. 2008년 5·6월쯤에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 복귀 시기는 이제 개막전으로 앞당겨졌다. 선동렬 감독은 2008년 개막전 선발로 배영수를 일찌감치 내정했다. 배영수는 “160km에 도전하겠다”며 몸 상태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삼성에는 오승환과 권오준 등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후 성공적으로 재기한 선수들이 많아 배영수에게는 적잖은 득이 되고 있다. SK 이승호도 재기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이승호는 2006년 10월 어깨 수술을 받고 1년 가까이 재활에 몰두했다. 지난해에는 재활을 위해 임의탈퇴 신분으로 묶여 자연스럽게 시즌-아웃됐다. 하지만 임의탈퇴 신분만 아니었더라면 지난해 시즌 후반부터 등판이 가능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이승호의 경우에는 박명환(LG)이 모델이 된다. 1999년 어깨 수술을 받고 2년 가까이 쉰 박명환은 재활기간을 거쳐 재기에 성공했다. 어깨 부상 후에도 불같은 강속구를 유지하며 구위를 잃지 않고 있다. 이승호 역시 왼손 파이어볼러로서 구위를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박명환처럼 얼마나 잘 관리를 받느냐가 재기의 관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 외에도 조용준(현대)·이용훈(롯데)·이동현(LG)·엄정욱(SK) 등도 부상에서 벗어나 재기를 꿈꾸고 있다. 조용준은 정민태와 같은 날 같은 수술을 받았다. 지난 2005년 9월 어깨 수술을 받았지만 정민태와는 달리 재활 속도가 너무 느리다. 2006·2007년 2년간 단 한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했다. 김시진 감독은 올해를 데드라인으로 잡고 있다. 2005년 전반기 깜짝 활약을 펼쳤던 이용훈도 어깨 수술을 받은 이후 재활을 마쳤으나 과거 위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번째로 팔꿈치에 칼을 대고 재활에 들어간 이동현은 올 시즌 안으로도 복귀가 회의적이다. 2005년부터 사실상 개접휴업에 들어가 지난해 이승호와 마찬가지로 임의탈퇴 신분으로 묶였던 엄정욱은 2006년 10월 어깨 수술과 2007년 5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차례로 받아 재활과 기량 회복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편 올해 현해탄을 건너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장을 던진 임창용(야쿠르트)도 부상 후유증을 얼마나 털어냈는지가 관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임창용은 2005년 10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고, 꼬박 1년간 재활에 올인한 뒤 2006년 10월 복귀했다. 지난해 풀타임으로 시즌을 치렀으나 5승7패3홀드 방어율 4.90으로 기대를 밑도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임창용의 구위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임창용은 팔꿈치 통증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며 일본무대에서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지난 1년이 부상 후유증에 대한 적응의 시간이었다면, 일본 진출 첫 해가 되는 올해에는 부상 후유증을 완전히 떨치고 몸과 공에 자신감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조용준-배영수-이승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