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전통', 이대로 그냥 사라지나
OSEN 기자
발행 2008.01.31 09: 40

[OSEN=이상학 객원기자] 현대 유니콘스가 완전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30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제8구단 창단을 발표했다.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현대를 모태로 창단작업을 벌인다. 그러나 박노준 초대 단장은 “인수가 아닌 창단”이라며 완전한 고용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시사했다. 특히 김시진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유임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단장은 “선수단과 프런트는 그대로 안고 간다. 하지만 차차 정리해갈 것은 정리하고, 거품을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탄생한 신생팀인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기는 것은 숙명이 됐다. 그리고 이 같은 구단 슬림화에 따라 자칫 현대의 전통이 사라질 우려가 생겼다. 현대의 힘 지난 1995년 9월, 무려 47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투자해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미 현대는 프로야구에 발을 디디기 전부터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창단해 공격적인 스카웃으로 프로팀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프로야구단을 인수한 뒤에도 공격적인 투자는 계속됐다. 창단 첫해부터 스타선수 출신 김재박 감독을 선임한 현대는 이후 전준호·박경완·조규제 등 내로라하는 특급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창단 3년 만이었던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2000년에는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현대의 투자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2000년 3월 터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2000년 신생팀 SK에 인천·경기·강원 연고권을 내주고 서울로 입성하려다 무산되는 바람에 임시거처였던 수원에 눌러앉는 사태에 이른다. 이후 현대는 무려 6년 동안 신인선수 1차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운을 입었다. 창단초기 거침없는 투자로 반향을 일으킨 현대로서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원래부터 없는 살림이었다면 몰라도, 여유있는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만큼 더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는 달랐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구단에서 이렇다 할 투자가 없었던 2003·2004년 2년 연속으로 페넌트레이스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질시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만, 1998·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막대한 투자의 결실이었다면 2003·2004년 한국시리즈 2연패는 현대가 그저 돈으로만 성적을 낸 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현대는 2006년에도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했고, 마지막 해가 된 2007년에도 매각 실패 후폭풍에도 페넌트레이스 6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승률도 매각되기 직전 팀으로는 가장 높았다. 현대의 전통 모기업에서 투자가 끊긴 이후 현대는 연고지 문제를 제외하면, 프로구단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제시했다. 현대는 여유없는 사정에도 불구하고 매년 꾸준한 성적을 냈다. 팀 시스템이 너무나도 잘 구축된 덕분이었다. 프런트는 확실한 운영제도를 구축해 현장을 뒷받침했고, 현장은 있는 전력을 최대한 극대화해 활용했다. 현대처럼 현장과 프런트의 호흡이 오랫동안 매우 잘맞는 팀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현대는 정민태·이숭용 같은 팀의 얼굴이자 구심점이 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저력을 발휘했다. 전력 구축은 놀라울 정도로 잘 이루어졌다. 현대의 트레이드는 교과서에 등장해도 모자랄 정도로 완벽했다. 현대의 트레이드 사전에는 실패가 없었다. 박종호·심정수·정성훈·송지만 등 우승전력 모두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선수들이었다. 특히 정성훈·송지만의 영입은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트레이드 성공 사례로 등재되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이명수·김동수 등 기량이 거의 다한 것으로 판단된 노장선수들을 데려와 다시 한 번 부활시켰다. SK에서 방출된 김동수의 부활은 말 그대로 극적이었다. '40세 포수' 김동수 역시 정성훈·송지만과 현대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트레이드뿐만이 아니다. 신인선수 수급 및 육성에서도 현대를 따라올 팀이 없었다. 박진만·박재홍·김수경 등 구단 살림이 여유있던 시절 신인왕을 제외하더라도 현대는 조용준·이동학·오재영 등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연속 신인왕을 배출해냈다. 현대에는 매년 젊은 알짜배기들이 등장했다. 가장 최근에는 장원삼·조용훈·황재균 등이 대표적이다. 외국인선수로 눈길을 돌리면 더욱 더 놀랍다. 2001년 이후 외국인선수로 한정해도 마이크 피어리, 셰인 바워스, 클리프 브룸바, 미키 캘러웨이, 래리 서튼 등이 성공했다. 스카우트팀이 선수보는 눈이 좋았고 또 그들을 육성하고 키워낸 코칭스태프가 화려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현대만의 전통이었다. 이대로 사라지나 제8구단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현대라는 이미지를 벗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번째 서울 구단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변화는 불가피하다. 현대가 비인기구단이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현대라는 이미지를 털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김시진 감독의 유임이 유보적인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시진 감독은 투수코치 시절부터 현대에만 무려 11년간 몸담은 인물이다. 현대 색깔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감독은 팀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이미지 제고와 분위기 쇄신을 꾀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하지만 현대의 전통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점은 신생팀의 새로운 팬이 될 현대팬들에게 서글픈 일이 될지도 모른다. 현대가 전통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의 힘이었지만, 그 시스템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김재박 감독 시절부터 현대는 오랜 시간 믿고 의지하는 신뢰가 구축, 돌덩이로 내려찍어도 무너지지 않을 굳건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신생팀은 비용 절감과 이미지 재고를 이유로 사실상 모태가 되는 구단의 전통을 그냥 그대로 뒤로 할 조짐이다. 박노준 단장은 “창단은 완전 분해된 상태에서 새로 필요한 부분만 가져갈 수 있는 상태”라며 일부 선수단과 프런트만 데려가겠다는 모습이다. 현대의 전통은 그냥 이대로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수익창출 및 흑자구조를 목표로 프로야구판에 뛰어들었다. 메이저리그식 단장으로 박노준 단장을 선임한 것도 돈이 되는 야구를 하기 위해서다. 가까스로 공중분해의 위기를 넘긴 현대 선수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구단 운영방안에 대한 우려의 마음이 없지 않다. 현대의 전통이 그냥 이대로 묻힌다는 아쉬움의 마음과 함께 공격적인 투자로 새바람을 일으켰던 종전의 창단구단들과 달리 매서운 찬바람이 변함없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프로야구의 현실이고 현대의 마지막 운명이 되어가고 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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