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런던, 이건 특파원] 세계 어느 언론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영국 언론, 특히 스포츠와 연예 쪽의 극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파파라치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인해 전 왕세자비가 파리의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죽는가 하면 매해 크리스마스 파티 때마다 여러 가지 스캔들로 신문들은 도배가 된다. 이렇게 방정맞고 극성스런 영국 언론에 파비오 카펠로 신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데뷔전을 하루 앞두고 아주 좋은 먹잇거리를 던져준 것 같다. 바로 '영어' 였다. 발단은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오후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오는 7일 새벽 웸블리에서 열릴 스위스와의 친선 평가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카펠로 감독은 기자들의 첫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연신 귀만 두드려댔다. 바로 통역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 영국 기자들은 통역이 도착하자마자 이를 어김없이 지적했다. 카펠로가 지난해 12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다음에는 영어로 말하도록 노력하겠다" 고 했던 그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 통역 없이 한 마디도 못하는 카펠로 감독의 모습은 감독을 '길들이려는' 영국 언론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일단 카펠로 감독은 영국 기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 "내가 여러분들의 단어와 구절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때 영어로 기자회견을 갖겠다" 면서 정확한 뜻 전달을 위해 통역을 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카펠로 감독은 "선수들과는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 며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에는 전혀 문제가 없음을 밝혔다. 그는 "그라운드에서는 '볼', '패스' 등 간단한 영어로도 충분하다" 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국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동반한다. 특히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영어를 쓰지 못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영국인들에게 '영어를 하지 못하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처음이다. 사상 최초 외국인 감독이었던 스웨덴 출신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일단 영국 언론은 영어를 못하는 감독에게 '만약 그의 성적이 신통치않을 경우 영어를 빌미로 비판을 가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물론 이는 성적이 좋고 좋은 능력만 보여준다면 영어 못하거나 혹여 발음이 좋지 않거나 하는 것을 그리 문제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어를 둘러싸고 살짝 신경전을 펼친 카펠로 감독과 영국 언론. 과연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bbadagun@osen.co.kr 카펠로 감독의 '영어 문제' 를 보도한 한 영국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