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 이영표 믿고 포백 선택
OSEN 기자
발행 2008.02.07 12: 41

스리백과 포백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허정무 감독이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결단을 내렸다. 비록 자신이 선호하던 전술은 아니지만 허 감독은 이영표의 가세를 믿고 포백을 선택했다. 허 감독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1월 30일 칠레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허 감독은 포백이 아닌 스리백을 선호하는 감독이다. 그러나 칠레전에서 공개된 허정무호의 스리백은 '경험부족'과 '파이브백'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더군다나 허 감독의 3-5-2 포메이션은 공격을 풀어가는 과정서 많은 허점을 노출했다. 허 감독이 포백을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선수들에게 익숙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땅한 공격수가 없는 상황에서 해외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포메이션으로 4-3-3밖에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이영표의 존재감이다. ▲ 포백에 익숙한 선수들 역대 한국대표팀 사령탑은 대부분 포백과 스리백의 갈림길에서 숙명처럼 고민했다. 그러나 대부분 선수들이 스리백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포백을 포기했다. 실제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도 포백을 선호했지만, 한국에는 스리백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스리백으로 한국대표팀은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달성했다. 결국 시스템은 시스템일 뿐이며 해당 전술에 대한 수비수들의 숙련도가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수 년간 외국인 감독을 거치며 한국 축구가 이제 스리백보다는 포백에 더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K리그에서도 이미 포백은 대세다. 현재 K리그에서 포백이 아닌 스리백을 쓰는 팀은 허 감독이 이끌었던 전남, 인천, 광주, 울산 포항, 제주 등에 불과하다. 허 감독이 소집한 대표팀의 수비수가 이 팀들에 집중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허 감독에게 이 선수들을 조련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허 감독은 포백과 스리백을 상대에 맞춰 혼용했을 것이다. 공중볼 처리에 능한 황재원, 대인마크에 능한 조용형, 위치선정이 뛰어난 강민수, 수비의 축을 맡길 만한 곽태휘라면 충분히 강력한 스리백을 구축할 수 있었다. 여기에 조성환, 곽희주는 어느 포메이션도 맡길 만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허 감독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상대로 반드시 승점 3점을 얻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 감독이 선수들에게 익숙한 포백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 공격수가 없는 한국 일본이 J리그의 인기를 바탕삼아 '탈 아시아'를 선언했을 때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은 대형 스트라이커의 부재였다. 당시 일본은 '이동국같은 선수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남기며, 한국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 '이동국같은 선수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허 감독의 입에서도 나오고 말았다. 지난 3일 파주 NFC서 열린 대표팀 훈련서 허 감독은 "좋은 공격수 있으면 소개를 부탁한다"고 했다. 이동국이 징계로 빠지고, 정조국, 조재진이 잇달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이탈하며 나온 발언이었다. 허 감독이 믿을 만한 공격수는 박주영뿐이었다. 결국 원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파이브백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스리백보다는 미드필드 장악력이 높은 4-3-3 포메이션이 이상적인 대안으로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4-3-3 포메이션은 박주영을 중심으로 박지성 설기현을 살릴 수 있는 전술이기도 했다. 이들은 허 감독의 기대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허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 이영표의 가세로 견고해진 포백 여기에 이영표의 가세는 결정적이었다. 허정무 호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갑작스러운 대변혁에 따른 경험 부족. 전체적으로 젊다는 느낌이 강한 수비라인은 무게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밀집수비를 뚫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풀백 혹은 미드필더가 문제였다. 스리백에서는 김치우, 조원희를, 포백에서는 박원재, 조원희를 기용하며 고민했지만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부족함이 허 감독에게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다른 감독도 마찬가지겠지만, 허 감독의 공격은 수비에서 시작된다. 허 감독은 공수 간격을 조절하며 수비를 이끌 리더가 필요했다. 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바로 A매치 94회 출전에 빛나는 이영표였다. 마침 오른쪽 풀백을 맡아줄 오범석이 스페인에서 귀국한 것도 허 감독이 자신 있게 포백을 내세울 수 있는 이유였다. 작년 3월 우루과이전 이후 11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영표의 활약에 힘입어 허 감독은 수비라인에 젊음과 노련미의 조화를 꾀할 수 있었다. 이번 결정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역시 짧게는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 길게는 10년까지 한국 축구의 수비전술이 결정된다는 데 있었다. 허 감독은 자신의 취향을 떠나 현실적으로 한국축구에 맡는 전술로 포백을 선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정한 전술을 갈고 닦아 성과를 내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전을 시작으로 허정무호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향하는 긴 항해를 시작했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허 감독이 7년 전 아쉽게 포기해야 했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stylelom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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