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송진우, 그는 고장나지 않았다
OSEN 기자
발행 2008.02.09 15: 58

[OSEN=이상학 객원기자] 대전구장 입구 외벽에는 큼지막한 걸개사진들이 질서정연하게 걸려있다. 한화의 주축 선수들이 차례대로 나열된 걸개사진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사진이 있다. 나머지 사진들보다 족히 4배 정도는 더 큰 대형 걸개사진은 외벽의 가장 앞에 자리하고 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팬들을 맞이하는 첫 사람이 바로 그다. ‘최고령 투수’ 송진우(42)가 그 주인공이다. 송진우는 어느덧 20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한국프로야구에서 20번째 시즌을 치르는 선수는 송진우가 유일하다. 그 이전에는 역시 한화 소속 장종훈이 19번째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바 있다. ▲ 송진우, 고장나지 않았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개인통산 200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송진우는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다. 200승도 200승이지만 1966년생으로 우리나이 마흔셋에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과연 전설이다. 그렇다고 송진우가 선수생활 연장에 대한 욕심으로 현역을 고집한 것 또한 아니다. 1990년대 말부터 송진우는 노장 소리를 귓속에 박히도록 들었지만 팀 공헌도는 매년 웬만한 젊은 선수들을 능가했다.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간 송진우는 연평균 163이닝을 던져 11.9승, 방어율 3.54라는 화려한 성적을 냈다.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투구이닝을 소화한 투수가 바로 송진우였다. 그런 송진우에게 2007년은 제동이 걸린 한 해였다. 정확하게는 2006년 포스트시즌이 그 시작이었다. 2006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송진우는 팔꿈치 통증으로 던지지 못했다. 김인식 감독은 송진우의 부재를 한국시리즈의 결정적 패인으로 꼽았다. 애석하게도 송진우의 부상은 더욱 도졌다. 전지훈련 막판 팔꿈치 통증이 재발됐고 결국 시즌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4월말에는 통증완화를 위해 일본에서 윤활주사를 맞는 등 부단히 애를 썼다. 5월말 1군 복귀전을 가졌으나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허벅지 통증으로 전열에서 제외되는 등 부침이 많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몸에 고장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송진우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7월 이후 30경기에 등판해 2승9홀드 방어율 2.96으로 호투하며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한 몫 단단히 했다. 이 기간 동안 송진우는 중간계투로 최고의 위용을 뽐냈다. 피안타율은 겨우 1할9푼5리밖에 되지 않았고,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0.99에 불과했다. 9이닝당 볼넷은 2.59개로 변함없이 짰고, 9이닝당 탈삼진은 무려 7.77개에 달했다. 중간계투로도 송진우는 빠르게 적응했다. 하지만 송진우는 200승 투수이기에 앞서 100세이브 투수였다. 송진우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개인통산 200승-100세이브 투수이기도 하다. 100승-100세이브를 달성한 투수도 선동렬·김용수·임창용까지 단 3명밖에 없다.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최종 3차전에서도 중간계투로 등판, 2⅔이닝을 1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투수가 된 송진우는 41세7개월6일로 포스트시즌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또 다시 늘렸다. 삼성 선동렬 감독은 “역시 베테랑다운 커리어가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송진우는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팀에도 포함됐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에 일궈낸 일이었다. 비록 대표팀에 최종 승선하지 못했지만, 최고령 대표선수로서 야구뿐만 아니라 타스포츠 노장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송진우는 시즌 막판 자신이 고장나지 않았음을 몸소 입증했다. ▲송진우, 도전은 계속된다 송진우는 매년 정기검진을 받는다. 노장인 그에게 정기검진은 필수적이다. 다행히 올해에는 이상무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그의 발목을 잡았던 팔꿈치 상태도 좋다. 올초에는 베테랑 후배들과 함께 일본에서 재활프로그램을 소화했고, 하와이 전지훈련에서도 좋은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송진우는 “처음에는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름 중간계투 보직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매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선발이 되지 않으면 은퇴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을 바꿨다. 승부욕은 송진우가 마흔이 넘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젊은 시절 송진우는 대포알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다. 그러나 1996년 15승을 찍은 후 2년간 6승씩 올리는 데 그쳤다. 송진우에게 빠른 공을 빼앗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송진우는 한화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해였던 1999년 15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클체인지업의 계발과 함께 제구력을 정교하게 기르며 타자들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송진우의 야구인생 결정적 터닝포인트였다. 지난해도 송진우에게 또 다른 터닝포인트의 해가 될 공산이 크다. 송진우는 연습의 양보다 러닝·웨이트로 근력을 강화하고 유연성을 기르는 데 중점을 뒀다. 송진우는 지금도 군살없는 몸매를 유지하며 롱런의 이유를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화도 송진우의 활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한화의 선발진에서 믿을 만한 투수는 류현진과 정민철밖에 없다. 지난해 류현진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세드릭 바워스와는 재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들어오는 브래드 토마스는 마무리투수로 기용된다. 불과 2년 전까지 류현진과 원투펀치를 형성했던 문동환은 고관절 부상과 허리디스크 후유증으로 재기를 확신할 수 없다. 3년차가 된 유원상도 풀타임 선발투수로는 검증되지 않았다. 송진우가 선발진으로 진입하기에 좋은 상황이다. 이미 지난해 후반부터 송진우는 리그 톱클래스 중간계투로 위력을 떨쳤고, 이제 다시 선발진 진입을 노리고 있다. 송진우의 20번째 시즌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불혹이 넘은 송진우에게 지난해는 엔진에 고장이 났음을 알리는 경보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라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를 시점에서도 송진우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아직 송진우의 몸과 열정은 고장나지 않았고, 그의 살아있는 전설신화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