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한국야구는 혹사에 민감하다. 많은 투수들이 젊은 날 혹사로 조로했다. 팬들은 더 이상 대투수를 일찍 떠나 보내기가 두렵다. 그러나 오히려 지나친 보호로 젊은 투수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즌 200이닝은 혹사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물론 안정된 로테이션에서 꾸준하게 등판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여전히 200이닝은 마의 벽처럼 받아들여진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모두 10명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5명은 외국인 투수였다. 최근 5년으로 좁히면 단 3명밖에 없었다. 토종 투수로는 류현진(한화)이 유일하다. 그런 점에서 한화 정민철(36)의 한 시즌 200이닝 도전이 반갑게 다가온다. 정민철은 지난해 26경기에서 12승5패 방어율 2.90이라는 화려한 성적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고질적인 팔꿈치 통증에서 벗어났고 기교파 투수로도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러나 정민철은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기쁨보다는 아쉬움을 먼저 표했다. “올해 예상보다 잘 던졌다. 하지만 200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것이 정민철의 말이었다. 지난해 정민철은 155⅓이닝을 던졌다.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인 지난 1999년(201⅔이닝) 이후 가장 많이 던진 것이었다. 물론 과거 정민철은 무려 4차례나 한 시즌 200이닝을 기록한 이닝이터였다. 정민철은 3년차였던 1994년 218이닝을 던지며 처음으로 200이닝을 돌파했고, 1996년(219⅔)~1997년(208⅔)에는 2년 연속 200이닝을 기록했다. 그리고 일본 진출 직전이었던 1999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한 시즌 200이닝을 던지지 못했다. ‘타고투저’가 횡행했던 1999년 정민철은 현대 정민태와 유이하게 200이닝을 넘긴 투수였다. 통산 한 시즌 200이닝 4회 돌파는 윤학길(6회) 최동원 정민태(이상 5회) 다음으로 많다. 전성기 때 정민철은 투구의 질도 좋았지만 투구의 양도 엄청났다. 에이스는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하다. 요즘 젊은 투수들은 류현진을 제외하면 강인한 투수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와이에서 한창 전지훈련 중인 정민철은 2008시즌 목표로 200이닝 돌파를 세웠다. 지난해보다 무려 200개를 올린 1700개 투구를 전지훈련 과제로 삼은 것도 200이닝 돌파를 위해서다. 사실 정민철은 지난해에도 많이 던진 투수였다. 투구이닝은 전체 12위였지만, 선발등판시 평균 투구이닝은 5.97이닝으로 평균 6이닝에 육박했다. 지난해 정민철보다 선발등판시 투구이닝이 많은 투수는 리오스 류현진 손민한 3명뿐이었다. 선발등판 경기가 더 많아진다면 더 많은 투구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정민철의 생각. 많은 경기에 선발등판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던지는 내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2003년 말 팔꿈치 수술 이후 정민철은 철저하게 코칭스태프의 보호를 받는 투수였다. 내구성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후반기부터 팔꿈치 통증이 말끔히 사라진 정민철은 과거 같은 이닝이터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만 36세의 나이에 한 시즌 200이닝을 넘긴 투수는 지난 2002년 만 36세였던 한화 송진우가 유일하다. 그 해 송진우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220이닝을 소화했다. 우완 투수로서 송진우가 걸었던 길을 하나씩 따라 밟아가고 있는 정민철이 송진우처럼 만 36세의 나이에 200이닝을 돌파하며 혹사를 이유로 보호막에 둘러싸인 젊은 투수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농약을 너무 쳐 도리어 자생력을 잃어버린 식물이 된 대다수 젊은 투수들에게는 만 36세 베테랑 정민철의 한 시즌 200이닝 돌파 선언만으로도 놀라운 일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