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프로야구 FA(프리에이전트) 제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4일 8개 구단 단장회의에서는 FA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KBO 이사회는 오는 19일 열린다. 프로야구선수협회는 FA 제도 폐지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지난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정 명령까지 받은 제도인 만큼 현실적으로 이사회에서 FA 제도 폐지 결의가 나오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8개 구단은 이번 기회에 FA 제도의 거품을 빼자는 의지다. 안건을 상정함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다분히 전략적인 안건 상정이지만 FA 제도가 프로야구에 재앙이 됐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자유가 없는 자유계약제도 FA 제도 도입의 취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선수들의 선택의 자유, 구단들의 전력 강화의 다양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프로야구판을 키우고, 리그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도 거시적인 도입 취지였다. 무엇보다 프로 입단 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당한 선수들에게 보상 차원의 성격이 짙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 9년 이상 뛰며 까다로운 FA 자격 취득조건을 갖출 정도로 기량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선수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FA 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변질됐다. 몇몇 스타 선수들과 몇몇 부자구단들의 ‘돈잔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사실 FA 제도 도입 전에도 프로야구는 만성적인 적자구조였다. 매년 1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봤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FA 제도 시행 이후에는 적자가 150억 원 안팎으로 뛰어올랐다.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 인건비였고 인건비의 상당 부분이 바로 FA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프로야구 최저연봉은 여전히 2000만 원으로 묶여있지만, 최고연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나 몇몇 고액연봉 선수를 탓할 문제가 되지 못한다. 선수는 잘 나갈 때 많은 돈을 모아두어야 하는 일종의 한철 직업이다. 문제는 그 선수들이 시장상황을 고려할 때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는 데 있었고, 그들에게 그 많은 돈을 지불한 이들은 다름 아닌 구단들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계약제도에 자유가 없다는 점이다. FA 제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보상제도다. FA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원 소속구단에 영입선수의 전년도 연봉 450% 또는 연봉 300%+보상선수 1명을 내줘야 한다. 보호선수도 1군 엔트리 26명보다 무려 8명이나 적은 18명밖에 지정할 수 없다. 준척급 FA 영입은 꿈도 꾸지 말라는 선고나 다름없으며, 준척급 선수들에게 FA 선언은 자살과 진배없었다.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보상기준도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웬만한 대어급 선수가 아닌 이상 팀을 옮기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한국식 FA 제도다. 준척급 선수들의 활발한 이동은 FA 시장의 필수조건이지만, 한국 사정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다. 준척급 선수를 데려가는 데에도 보이지 않는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는 곳이 바로 한국 프로야구다. 결국 손해를 보는 건 구단들이었다. 공급은 극히 적은데 수요만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판이다. 몇몇 스타급 선수들에게 영입 과열경쟁이 붙었고 자연스럽게 FA 몸값 인플레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스타선수들의 해외진출이나 이적을 막는 건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준척급 선수들의 이적이 자유롭고 활발하면 굳이 대어급 선수들에게 올인에 가까운 베팅을 할 이유가 없지만, 준척급 선수들의 이동을 사실상 가로막은 한국식 기형적 FA 제도는 결과적으로 스스로 발목을 짓누르는 꼴이다. ▲ 사문화 조항이 제도 망친다 2004년 11월 삼성으로 이적한 심정수의 계약은 야구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4년간 최대 60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초대형 FA 대박이었다. 심정수의 60억 원은 FA 제도의 온상이었다. 심정수의 총액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이 바로 계약금이었다. 60억 원 무려 중 20억 원이 계약금이다. 물론 심정수의 60억 원은 엄연히 부풀려졌다. 옵션을 다 채우지 못할 경우 최소 40억 원으로도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계약금은 무너지지 않는 요새의 성벽처럼 그대로였다. 심정수의 계약조건 가운데 계약금이 절반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비율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최근 투수 최고액 FA 대박을 터뜨린 LG 박명환도 총액 40억 원 중 계약금만 무려 18억 원이었다. 사실 계약금은 프로야구 FA 제도 규약에 없는 사문화된 조항이다. 야구규약 제165조에서는 ‘FA 선수 계약금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금은 매번 버젓이 계약내용으로 공개된다. 선수협에서는 신인선수가 계약금을 받는 것처럼 FA 선수들도 새 팀에서 계약금을 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선수들은 보장된 거금을 일시불로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을 최대한 많이 요구한다. 구단들은 ‘FA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약금을 높였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성적에 눈이 먼 구단들과 선수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바로 ‘FA 거품’이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계약금 성격이 강한 사이닝보너스가 있지만 연봉의 10% 내외에 불과하다. FA 시장의 위축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계약금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효력을 잃고 사문화된 조항은 과감하게 폐기 처분해야 한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FA 제도 폐지가 아니라 FA 제도 개선이다. FA 제도가 프로야구 적자구조의 원흉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FA 제도 폐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과거의 노예계약과 유망주의 해외진출 러시로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프로야구의 위기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제8구단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처럼 도를 넘어선 허리띠 졸라매기는 프로야구의 위상을 해치는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것이다. FA 제도도 프로마인드에 걸맞는 세련된 손질이 절실하다. 사문화된 조항은 뒤로하고 계약금 폐지를 비롯해 사치세·샐러리캡·등급제·차등보상 등 세부적인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 KBO의 역할도 크지만, 이의를 제기한 8개 구단들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문제다. 매년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반복되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8개 구단 스스로가 안건을 상정한 만큼 이번 기회에 재앙이 된 FA 제도를 제대로 뜯어고쳐야 한다. 프로야구는 지금 현재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서있다. KBO 이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