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PS제도 변경이 몰고올 효과와 후폭풍
OSEN 기자
발행 2008.02.20 10: 18

[OSEN=이상학 객원기자] 2007년이 전면드래프트 도입이었다면 2008년은 무승부 폐지와 포스트시즌 시스템 변경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지난 19일 KBO 이사회는 기존 페넌트레이스 12회, 포스트시즌 15회 연장전 제도를 폐지한 채 무조건 승부를 가리기로 했으며 포스트시즌도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를 현행 3-5-7차전 시스템에서 5-7-7차전 시스템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프로야구 27년사를 통틀어도 시스템의 대개혁이라 할 만한 조치들이다. 무승부 폐지와 포스트시즌 시스템 변경이 가져올 효과와 후폭풍을 짚어본다. ▲ 무승부 폐지, 진정한 팬서비스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첫 해부터 무승부 제도를 도입했다. 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15이닝에서 승부를 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1984년부터 밤 10시 30분 이후에는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을 넣어 18년간 유지했다. 2003년에야 시간제한 없이 12이닝 내에서 승부를 보는 것으로 제도를 손질했지만 불과 1년 만인 2004년 12이닝 제한을 그대로 둔 채 경기시작 4시간 이후에는 새로운 연장 이닝을 시작할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꿨다. 하지만 2004년 한국시리즈가 무려 3차례 연장승부로 9차전까지 엿가락처럼 늘어지자 이듬해부터 포스트시즌에 한해서만 15이닝까지 시간제한 없이 승부하도록 바꿨다. 야구사를 살펴보면 야구는 처음부터 무승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무승부라는 개념이 없다. 승부가 날 때까지 무제한으로 연장승부를 펼친다. 일본 프로야구는 12이닝으로 연장승부를 제한하고 있지만, 시간 제한은 없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경기수가 140경기로 늘어난 2001년에야 15이닝을 고수하던 센트럴리그가 12이닝 승부로 바꿨다. 그러나 한국 사정에서 무승부 제도는 일종의 필요악이었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와 달리 선수층이 두텁지 못해 '끝장 야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승부 제도 폐지론이 일어날 때마다 야구인들은 줄곧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무승부 제도는 악습들도 낳았다. 시간제한으로 경기가 무승부 기미를 보이면 투수들은 유난이 인터벌이 길어지고, 견제구를 더 많이 던졌으며 심지어는 스파이크 끈을 조여매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승부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 돈과 시간을 투자한 ‘고객’들에게는 우롱이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의 대량 유입으로 야구를 보는 눈높이가 매우 높아진 야구팬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태들이었다. 실제로 지난 26년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연장승부의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프로야구는 어쩌면 그동안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도만 변경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무승부 제도 유지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팬들의 귀가시간이었다. 무승부가 폐지된 만큼 이 부분은 더욱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대중교통이 확충됐고, 승용차 보급률이 증가한 만큼 큰 걱정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구단 차원에서 셔틀버스 무료운행 같은 팬서비스가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제도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수들은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승부를 내고, 구단은 팬들의 편안한 귀가를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팬서비스라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최장이닝 경기는 1984년 5월8일~9일 이틀간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25이닝이다. ▲ 포스트시즌 확대, 이변은 없어지나 포스트시즌 제도도 바뀌었다. 현행 제도는 준플레이오프 3전 2선승제, 플레이오프 5전 3선승제, 한국시리즈 7전 4선승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준플레이오프 5전 3선승제, 플레이오프 7전 4선승제, 한국시리즈 7전 4선승제로 변경됐다. 한 달 가까이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것이다. 포스트시즌에 모아지는 팬들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감안할 때 10월을 ‘야구의 달’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곧 KBO 및 구단들의 수입으로도 이어진다. 포스트시즌은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시기다. 현대 사태를 계기로 돈이 되는 장사를 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한 구단들로서는 포스트시즌 확대가 나쁘지 않은 결정이다. 한국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제도는 그동안 많은 변경과 손질을 거쳤다. 초창기에는 전후기 1위팀들끼리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그러나 1985년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포스트시즌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듬해부터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전후기 중 한 번만 2위에 들면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는 첫 해부터 모순을 드러내고 말았다. 1986년 전후기 모두 2위였던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전기 1위 삼성과 후기 1위 OB가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아이러니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87년에는 삼성이 전후기 모두 1위를 하고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패해 우승에 실패하기도 했다. 결국 1989년부터 전후기 구분이 없어지자 프로야구는 새로운 포스트시즌 방식을 맞이했다. 페넌트레이스 1위팀에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프리미엄이 주어졌고,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됐다. 준플레이오프 제도도 1992년부터 3-4위간 격차가 3.5경기 이상 벌어지면 생략하기로 했다. 1995년이 그랬다. 1999년 드림-매직리그 양대리그제가 도입된 후에는 리그 1위-2위팀들이 크로스매치를 벌인 뒤 승자들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1999년 우승팀 한화는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로 손꼽힌다. 단일리그로 환원된 2001년부터는 승차에 관계없이 4개팀에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제를 택했다. 2005년 준플레이오프가 5전 3선승제로 늘어났다 다시 3전 2선승제로 원상복귀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5-5-7’ 시스템은 역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중 가장 길다. 1999~2000년에는 1차전·2차전을 같은 날 치르는 등 양대 플레이오프를 동시에 진행해 일정을 최대한 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간을 대폭적으로 늘리고, 페넌트레이스 1위팀에 더 큰 프리미엄을 안겼다. 특히 플레이오프 제도의 7전 4선승제 변경은 페넌트레이스 1위팀에 매우 큰 이득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1992년 롯데, 2001년 두산처럼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우승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한국시리즈 우승팀만을 최후의 승자로 기억하는 우리나라 사정에서는 페넌트레이스 1위팀에 이만한 혜택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5년 준플레이오프를 5전 3선승제로 늘렸다 1년 만에 3전 2선승제로 원상복귀시킬 당시 KBO 이사회는 ‘포스트시즌 기간이 너무 길어져 팬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경기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이번 조치는 당시와 비교할 때 더 큰 모험이다. 가을잔치에서 쓰러질 투수들이 늘어날 수 있으며 기간이 너무 길어져 관심도가 떨어질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종전 시스템에서도 페넌트레이스 1위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82.4%였다. 한국시리즈 직행만으로도 1위팀에는 엄청난 프리미엄이었다. 포스트시즌의 가장 큰 매력인 의외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또, 단순히 기간을 늘린다고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바뀐 시스템에서 제2의 1992년 롯데와 2001년 두산이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될 것이고 흥행 대박을 칠 것이지만 그런 팀이 나올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은 확률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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